Opinion :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건설업에 드리운 환경파괴 그림자 지우고 싶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08 00:38

업데이트 2021.07.0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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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건설사 이름 버린 SK에코플랜트 안재현 사장

SK건설 사명 바꾸고 환경업 도전
폐기물업체 적극 인수하며 변신
"ESG는 생존의 길…외면 땐 추락
환경기술 연결·육성이 우리 역할"

안재현 SK에코플랜트 사장은 "흩어져 있는 유망한 환경 기술을 엮어 주는 '연결 리더십'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사진 배경은 회사 로비에 마련된 개방 회의 공간. 김상선 기자

안재현 SK에코플랜트 사장은 "흩어져 있는 유망한 환경 기술을 엮어 주는 '연결 리더십'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사진 배경은 회사 로비에 마련된 개방 회의 공간. 김상선 기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시대다. 기업들은 저마다 환경을 생각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투명한 지배구조를 지닌 '착한 기업'임을 내세운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분위기가 됐다. 소셜 미디어(SNS)의 발달로 소비자들에게 '찍힌' 기업들은 순식간에 휘청이고, '나쁜 기업'들은 투자받기도 힘들어졌다. ESG는 이제 기업의 생존 화두가 됐다.

이 와중에 건설업계의 고민은 여느 산업보다 깊다. '건설'이라는 용어 자체에 환경 훼손, 자연 파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 있기 때문이다. 건설 현장의 안전사고도 부담이다. 이런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하고자 건설사들은 ESG 경영에 힘을 쏟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기업의 존재 이유인 수익 창출과 ESG를 어떻게 조화시킬지도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흐름 속에서 국내 도급순위 10위 대형 건설사인 SK건설은 아예 회사명에서 '건설'을 지우고 '환경'을 붙였다. 지난 5월 임시주총에서 사명을 SK에코플랜트로 변경했다.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다. 폐기물 처리 및 수처리 업체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사업 방향도 틀었다. 환경 사업뿐만 아니라 주택·인프라·엔지니어링·에너지 등 사업 부문마다 '에코'라는 단어를 집어넣었다. 이런 변신에는 건설업의 고민과 희망이 녹아 있다. 5일 서울 인사동 사옥에서 만난 안재현(55) 사장은 "SK에코플랜트라는 이름에는 지구를 위한 친환경(Eco) 아이디어와 이를 실현할 혁신 기술을 심겠다(Plant)는 의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주력이 건설에서 환경으로 바뀌는 건가.
주력은 여전히 건설이다. 다만 건설의 내용이 바뀐다. 전통적인 건설업이 환경을 파괴하고, 지역 사회에 공헌하지 않고, 생태계를 이롭게 이끌지 못한다는 지적이 아프게 다가왔다. 고민은 2017년부터 시작됐고, 변신은 내가 CEO로 취임한 2019년 본격화했다. 생존을 위해서는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세상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해 존경받는 기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 정한 모토가 '미래를 위한 선한 영향력'(Good Impact For Tomorrow)이다. 줄이면 후세대를 위한 선물(GIFT)라는 의미도 있다.
회사 이름을 바꾸는 게 쉽진 않았을 텐데.
내부 구성원을 설득하는 데 3년 걸렸다. 1년 반 동안 핵심 임원들끼리 매일 새벽 6시에 모여 회의를 했다. 가장 어려운 일은 뺄셈이었다. 의미 없는 주문은 받지 말자, '좋은 수주'를 할 수 있으면 하자, 그러나 안 되면 딴 길 가자고 합의했다. 발주처의 계약 관리 기법이 발전하고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건설업은 갈수록 만만찮은 비즈니스가 돼가고 있다. 경기 변동도 많이 탄다. 건설을 버리자는 건 아니다. 건설이 뭔가. 한자로 풀면 바로 세워(建) 베푸는(設) 일 아닌가. 친환경 기법·자재·시설을 환경사업과 연결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봤다.
최근 크고 작은 환경업체를 적극적으로 인수했다.
지난해 '환경시설관리'(옛 EMC홀딩스)를 1조500억원을 들여 인수했다. 하·폐수 처리부터 폐기물 소각·매립, 폐유정제 사업까지 하는 국내 최대 종합환경업체다. 여기를 닻(앵커)으로 해서 '볼트 온'(Bolt-on·연관 기업을 인수해 시너지를 내는 방식) 전략을 펼치고 있다. 유망한 기술혁신 기업을 인수·합병(M&A)하고 새로운 사업도 발굴할 생각이다. 운영 및 기술 역량을 기르는 실습장 역할도 한다. 최근에는 충청권 폐기물 소각 처리기업 4곳(클렌코·대원그린에너지·새한환경·디디에스)도 인수했다. 하루 876톤(의료폐기물 제외)의 폐기물 소각 용량을 보유하게 돼 이 분야 국내 1위가 됐다.
대기업의 환경 사업 참여가 어떤 의미를 갖나.
기술 연결 역할이다. 환경업만큼 인간과 밀접한 산업이 없지만, 역으로 환경업만큼 기술 활용도가 낮은 산업도 없다. 원자재를 가공해 재화를 만들어 쓴 뒤 폐기해버리는 지금 같은 선형경제 구조로는 환경 파괴를 막을 수 없다. 재화의 생산·소비 과정에서 자원과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reduce)하고, 이를 수거해 재활용(reuse)하고, 남는 폐기물은 에너지원으로 다시 이용(recycle)하는 3R의 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유용한 기술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이 나서 이런 기술을 연결해야 한다.
안재현 사장이 서울 인사동 SK에코플랜트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안재현 사장이 서울 인사동 SK에코플랜트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이를 위해 어떤 일을 하는가.
유망한 기술을 써주고, 개발을 도와주고, 스타트업과 벤처에 투자한다. 이를 위해 CEO 직속으로 '오또(One Team Operation) 센터'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센터 산하 '에코 랩'의 기술 전문가들이 유망 기술을 발굴하고, 발굴된 기업은 'SKIL'(SK 이노베이션 랩)이 성장을 돕는다. 우리가 인수한 환경 사업장을 기술 실증 시험장으로 제공한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중소·중견 기업에 투자하는 사모(PE) 펀드, 해외에 투자하는 글로벌 펀드 등도 금융사와 제휴해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환경 문제를 직시하는 '진정성', 기술을 이어주는 '연결 리더십', 선한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임팩트'가 우리 친환경 경영의 핵심이다.
기술 활용의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
최근 인수한 한 폐기물 소각장의 온도를 940도에서 950도로 불과 10도 올렸더니 일산화탄소는 절반, 질소산화물은 12% 줄었다. 감(感)과 관행으로 해오던 작업을 디지털 데이터 기반 기술로 개선한 성과다. 사실 기술은 폐기물 배출 단계에서 더 중요하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앞선 폐기물 분리 배출 국가이지만, 폐기물 처리장의 분류 작업은 수작업에 의존한다. AI(인공지능) 기술이 접목된 로봇을 활용한다면 작업 효율이 획기적으로 향상된다. 환경산업에 AI·DT(디지털 전환) 기술이 접목되면 부가가치는 크게 높아질 것이다. 나는 직원에게 농담처럼 이야기한다. 환경 기술의 목표는 환경 기술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물론 아직 먼 이야기지만.
ESG 경영이나 탄소제로 운동이 기업에 부담이라는 지적도 있다.
양면적이라고 본다. 탄소배출권을 사야 하고, 환경세를 치러야 하는 등 비용은 분명히 늘어난다. 기업 체급과 특성에 맞게 진행돼야 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추세는 돌이킬 수 없다. 기업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외면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면 자본시장에서 자금 조달조차 어렵다. 세계적으로 넘쳐나는 ESG 관련 유동성에서도 소외돼 버린다. 우리는 연료전지 사업 등을 위해 건설사 최초로 ESG 펀드 조성에 성공했다.
최근 건설 현장의 안전사고가 문제가 되고 있다.
내년 1월 1일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방향은 맞다. 강하게 가야 한다. 그러나 너무 거대 담론만 벌어지는 것 같다. 구체적 사고 방지 방법에 대한 고민이 없이 처벌만 앞세운다. 기업들로선 당황할 수밖에 없다. 안전사고의 3분의 2는 현장 투입 6개월 내 근로자들이 당한다. 현장 상황에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사고를 방지할 구체적 솔루션이 나와야 한다. 원청업체는 하청업체 직원들을 직접 교육할 수 없는 등의 어려움이 있다. 하청업체의 작업 관리자가 쓸 수 있는 IT 기반 앱 등을 개발해 지원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전문 경영인으로서 회사 변신을 주도하고 있는데.
수뇌부의 리더십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최태원 그룹 회장이 워낙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지 않는가. 최근 몇 년간 수주 감소와 라오스 댐 사고 등으로 회사가 어려움을 겪었다. 최태원 그룹 회장은 '크게 바뀌지 않으면 죽는다'고 강조했다. 건설업과 회사 정체성에 대한 '딥 체인지'(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문이었다. 구체적 해법을 찾아 고심을 거듭하다 지금과 같은 변신을 택했다.
앞으로 계획은.
규모의 경제를 갖추기 위해 환경업체 인수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이다. 폐기물 처리 전 단계인 수집·분류 시설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다. 다수의 환경 기술 업체와도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1년 이내에 많은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관련 기술과 시설을 한곳에 묶은 환경산업 복합단지(콤플렉스)를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역량을 길러 동남아 등 아시아 국가에 진출하겠다.
안재현 사장
연세대 상경대를 졸업하고, ㈜대우에 입사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MBA 과정인 와튼 스쿨에서 금융을 전공한 뒤 대우증권 등에서 일하다 2000년 SK로 자리를 옮겼다. SK네트웍스 전략사업담당, 그룹 구조조정 컨설팅 리더, SK D&D 대표, SK가스 경영지원부문장 등을 거쳐 2017년 SK건설의 해외 사업을 총괄하는 글로벌비즈 대표가 됐다. 2019년 CEO가 돼 회사를 기존 건설 중심에서 친환경 사업 중심으로 바꿔 나가고 있다.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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