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현지보다 내가 만든 파에야가 맛있는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2021.07.07 09:44

명유미의 맛있는 세계여행

결혼 준비를 할 때만 해도 회사를 그만두고 일 년이나 세계여행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랬기에 신혼여행지로 스페인을 선택했었다. 당시 스페인 요리책에 푹 빠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책을 보고 있으면 여행 내내 먹기만 해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할 것이 분명했다. 하는 수 없이 나를 유혹하는 많은 요리 앞에서 순위를 정했다. 그중 ‘파에야’가 들어있었다.

파에야는 신선한 재료가 제일 중요하다. 일러스트 명유미

파에야는 신선한 재료가 제일 중요하다. 일러스트 명유미

신혼여행 동안 스페인 요리의 맛을 알고 나니 궁금한 것이 더 많아진 나는 스페인 요리 강좌에 등록했고 파에야를 배웠다. 배운 걸 복습할 겸 친구들을 초대할 때마다 듣는 말이 “우와 맛있다. 스페인 가서 먹어봤어? 진짜 이 맛이야?”였다. 나는 너스레를 떨며 “당연히 내 요리가 더 맛있지 않겠냐?”했는데, 속으로는 떨떠름한 기분이 남아 있었다.

실제로 내 요리, 아니 선생님의 레시피에 비교하면 신혼여행 때 먹어본 파에야가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훌륭한 레시피 때문인지, 아니면 엉터리 레스토랑 때문인지 궁금해졌다. 제대로 된 스페인 파에야는 뭐지? 이번 세계여행 일정에 스페인을 또 넣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열심히 배운 스페인 요리를 본토에서 제대로 찾아 먹겠다는 것. 그중 파에야는 1순위였다. 일단 전 세계 미식가들의 성서라고 할 수 있는 미쉐린가이드가 유난히 별을 많이 내려 반짝인다는 바스크 지역으로 갔다.

바스크는 끊임없이 스페인에서 분리 독립하려는 지역으로 현재는 자치구다. 바스크에는 맛없는 것이 없다더니, 길에서 무엇을 사 먹든 손가락에 묻은 양념까지 쪽쪽 빨 정도로 맛있었다. 특히 핀쵸스(스페인의 대표 메뉴인 타파스를 스페인 북쪽 지방에서 부르는 이름. 대개 빵 위에 재료를 얹어 핀쵸스라 부르는 꼬챙이로 꽂아놓았다)는 매일 다른 맛을 먹을 정도로 다양했고 창의적이었다.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제대로 된 파에야를 맛보고 싶었지만, 좀처럼 그럴 기회가 없었다. 사진 채승우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제대로 된 파에야를 맛보고 싶었지만, 좀처럼 그럴 기회가 없었다. 사진 채승우

이 지역은 바다와 접해 있고 땅도 비옥해서 질 좋은 해산물·육류·채소를 다양하게 이용한 요리가 발전해왔다고 한다. 스페인이 세계 최고의 맛있는 나라가 되는 데엔 바스크가 큰 몫을 했다. 이런 곳이니 스페인 대표 음식인 파에야는 얼마나 맛있을까? 기대를 갖고 레스토랑마다 파에야를 찾았으나 허사였다.

일단 바스크는 스페인으로 불리는 걸 싫어하는 데다 심지어 파에야라는 단어를 못 알아듣기까지 했다. 그래서 마드리드에 기대를 걸었다. 수도니까 스페인답다는 건 다 있겠지. 그런데 마드리드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정통 스페인식 식당에는 파에야가 없다. 반면에 관광객 상대 레스토랑은 파에야 사진까지 프린트한 메뉴를 외부에 걸어놓았다. 주문해보면 실물은 초라하다. 양도 빛깔도 재료도 정성도 부족해 보인다. 한국에서 만들어 먹은 것에 비교하니 오히려 스페인 관광식당의 것은 마트에서 반조리 식품을 사다가 데워서 내온 것 같았다.

파에야는 한국식으로는 철판 볶음밥에 가깝다. 우리가 이름에 ‘철판’을 붙인 것처럼, 파에야도 이 음식을 요리할 때 쓰는 특유의 원형 철판 팬을 파에야라고 부르는 데서 비롯되었다. 재료에 따라 해물·초리소(소시지)·야채·먹물(오징어먹물) 파에야 등으로 불리는데 대부분 재료를 철판에서 볶다가 쌀을 넣고 비빈 후 불에 올려 쌀이 익으면 먹는 식이다. 그런데 팬이 크다. 1인용 팬도 나오지만 적어도 4인분은 해야 맛이 제대로 든다. 재료의 수와 양도 많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파에야에는 사프란이 들어간다. 사프란은 사프란 꽃의 암술대를 말린 것으로 음식에 특유의 향과 노란빛을 내게 하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신료다. 게다가 생쌀을 팬에 넣고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요리 시간이 길고 손이 많이 간다.

결론은 레스토랑 입장에서는 엔간히 비싸게 받지 않으면 수지를 맞추기 힘든 요리라는 거다. 스페인 친구들은 파에야는 보통 집에서 먹는 음식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식당에서나 팔지만 대부분 질은 형편없다. 아마 철판 위에 올려 구색만 맞추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심지어 일부 레스토랑에서는 비싼 사프란 대신 강황(카레가루)을 사용해 특유의 노란색을 흉내만 낸단다. 관광객은 어차피 모를 거라고 생각하나 보다. 관광객이 체험하는 파에야의 맛은 이렇게 변질되고 있었다.

스페인에서 제대로 된 파에야를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다. 내가 만든 파에야도 충분히 맛있다. 사진 명유미

스페인에서 제대로 된 파에야를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다. 내가 만든 파에야도 충분히 맛있다. 사진 명유미

한 스페인 친구는 발렌시아라는 도시로 가보길 권했다. 파에야가 원래 스페인 동쪽 끝 도시인 발렌시아의 음식인데, 스페인이 워낙 지역색이 강해서 제대로 된 파에야를 먹으려면 발렌시아에 가야 한단다. 유럽 비자 만기가 다가오고 유레일패스 기한 또한 거의 다 차서 발렌시아는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아쉽지는 않다. 아무리 봐도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레시피가 훌륭하므로! 자, 제대로 된 파에야를 드시고 싶다면 레시피를 따라 해 보시라. 단, 이 요리는 꼭 파에야 팬에 해야 한다.

그때 그 요리! 스페인 파에야

재료
왕새우 8개, 닭고기살, 얇게 썬 초리소 소시지 150~200 g, 손질한 홍합 8개, 양파 1개 반토마토 3개, 파프리카
1개, 쌀 2컵, 레몬 반 개, 파슬리 1컵, 올리브오일 3 큰술, 다진 마늘 2쪽, 사프란 1작은술

만드는 법
① 파에야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소금·후추를 뿌린 닭고기를 각 면당 2분 정도 굽는다. 닭을 꺼내두고 뿔을 제거한 새우를 팬에 올려 굽는다.
② 새우가 붉어지면 꺼내놓고 잘게 썬 초리소 소시지·양파·토마토·파프리카와 다진 마늘을 볶으며 소금·후추를 넣는다.
③ 간을 본 후 여기에 쌀을 넣고 잠시 볶다가 파슬리·육수를 자작하게 붓고 꺼내둔 새우·닭고기·홍합을 올린다.중불에서 끓이다가 육수가 끓으면 약불로 줄인다.
④ 쌀이 익으면 뚜껑이나 종이타월로 덮어 10분간 뜸을 들인 후 레몬을 슬라이스해 얹어 낸다.

▶ 명유미 작가는
삶의 방식을 고민하며 2013년, 1년 동안 남편과 세계여행을 했다. 지금은 이 여행이 삶의 가장 중요한 양분이 되었음을 체감하며 살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 아동 청소년 책을 소개하는 ‘달걀책방'을 열고 운영하고 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