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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밤 10시 공원 음주 금지? 한강에선 '소맥' 병나발 불었다

중앙일보

입력

6일 밤 11시쯤 서울시 광진구 한강시민공원 뚝섬지구 청담대교 아래에서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먹거나 음주를 하고 있다. 허정원 기자.

6일 밤 11시쯤 서울시 광진구 한강시민공원 뚝섬지구 청담대교 아래에서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먹거나 음주를 하고 있다. 허정원 기자.

커피 잔에 소주 부어 눈속임…'병나발'도

서울시가 야외음주 금지 행정명령을 발표한 6일. 오후 10시 30분을 넘긴 뚝섬한강공원 내 청담대교 아래는 대형 주점을 방불케했다. 물가부터 계단, 벤치 인근의 풀밭까지 어림잡아 80~100여명의 인파가 운집해 있었다. 자정 넘는 시간까지 수십명의 음주는 계속됐다. 이날은 서울시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19 확진자(오후 9시 기준 568명)가 쏟아진 날이기도 했다. 주변을 산책하던 한 행인은 집단 음주 장면을 보고 "여기가 무슨 술집이냐"며 눈살을 찌푸렸다.

몰래 술을 마시려고 '눈속임'을 하는 팀도 눈에 띄었다. 남성 2명은 가방에서 조심스럽게 소주 1병을 꺼내 테이크아웃용 투명 커피잔에 붓고 빨대로 마셨다. 야외음주 금지조치를 알았던 셈이다. 바로 앞 벤치에는 진로소주를 병째로 마시는 시민도 있었다. 입을 대고 마신 병으로 동료의 잔에 술을 따르기도 했다.

6일 오후 11시가 넘은 시각, 서울 광진구의 뚝섬한강공원에서 한 무리의 시민들이 음식과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다. 허정원 기자.

6일 오후 11시가 넘은 시각, 서울 광진구의 뚝섬한강공원에서 한 무리의 시민들이 음식과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다. 허정원 기자.

편의점 막히자 공원 밖ㆍ배달로 공수

이들과 약 20m 떨어진 곳엔 '맥주파'들이 자리를 잡았다. 넥타이 차림에 직장인으로 보이는 시민 3명은 캔맥주를 약 1시간 넘게 마셨다. 11시쯤 되자 바로 뒤 평상에 시민 4명이 맥주를 아예 박스째 들고 왔다. 640mL 용량의 병맥주를 각 1병씩 들고 마시는 모습이었다. 다소 한산한 다리 기둥 한쪽에는 페트병에 든 맥주와 소주를 종이컵에 따라 소맥 폭탄주를 즐기는 남성들도 있었다.

이들은 술을 어디서 사왔을까. 한강공원 내 편의점에는 '밤 10시 이후 주류 판매 불가'라는 글씨가 냉장고 문에 크게 쓰여 있고 실제로 술을 안 팔았다. 하지만 술을 공수하는 방법은 따로 있었다. 배달 존에서 피자와 함께 생맥주가 든 갈색 페트병을 받아들고 가는 시민들이 보였다. 시민이 지나간 자리 '야간 음주·취식 자제와 조기 귀가 안전한 한강공원을 위해 꼭! 노력해주세요'라고 쓰인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었다.

한강공원 내 편의점에서 밤 10시 이후 주류를 판매하지 않자, 대부분의 음주족들은 공원 바깥에서 술을 사오거나 음식과 함께 배달시켰다. 허정원 기자.

한강공원 내 편의점에서 밤 10시 이후 주류를 판매하지 않자, 대부분의 음주족들은 공원 바깥에서 술을 사오거나 음식과 함께 배달시켰다. 허정원 기자.

'도돌이표 단속'…단속반 지나면 새 음주족 등장   

단속 차량의 등장에 음주족들은 대체로 주춤했지만, 슬며시 다시 술병을 꺼내드는 이들도 많았다. 자정이 되자 사이렌을 단 단속차가 공원 이곳저곳을 돌기 시작했다. 단속원 2명이 차에서 내려 음주하는 시민들을 향해 “술 드시면 안 된다. 정리해달라”며 계도를 시작하자 갖가지 답변이 돌아왔다. “오늘부터 단속이냐. 몰랐다”고 답하는 '모르쇠형'과 “내일부터 단속이라던데”라고 항변하는 '우기기형'도 눈에 띄었다. 대부분은 “거의 다 마신 참이다. 곧 정리하겠다. 죄송하다”며 수긍했다.

이날 단속을 담당한 한강사업본부 관계자 A씨는 “10시30분 쯤 현장에 왔을 땐 이만큼 음주 인원이 많진 않았다”며 “단속하고 나면 2차를 가지려는 시민들이 또 자리를 채워 도돌이표다”고 말했다. 실제로 “술자리를 정리하겠다”던 한 중년 시민 3명은 단속원이 떠나고 40분여간 그 자리에서 더 술을 마셨다.

서울시가 10시 이후 야외음주 금지 행정명령을 발표한 6일, 한강사업본부 직원들이 시민들에게 음주 계도를 하고 있다. 계도 후에도 불응, 음주를 계속하면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허정원 기자.

서울시가 10시 이후 야외음주 금지 행정명령을 발표한 6일, 한강사업본부 직원들이 시민들에게 음주 계도를 하고 있다. 계도 후에도 불응, 음주를 계속하면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허정원 기자.

하룻밤 단속에 달랑 3명…“인력부족”

단속 인력 부족도 문제다. 또 다른 단속원 B씨는 “오늘 밤부터 내일 아침까지 이 지역 단속 인원이 총 3명뿐인데 그나마 1명은 상황실을 지켜야 한다”며 “경찰과 자치구로 들어간 민원은 결과적으로 모두 한강사업본부로 돌아오기 때문에, 사실상 현장 단속은 사업소 직원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6일 자정이 넘은 시각, 한강사업본부 직원들이 시민들에게 음주를 자제해 줄 것을 권고하고 있다. 허정원 기자.

6일 자정이 넘은 시각, 한강사업본부 직원들이 시민들에게 음주를 자제해 줄 것을 권고하고 있다. 허정원 기자.

서울시는 지난 4일부터 공원, 강변 등에서 야외음주를 금지하고 있다. 위반시 과태료를 부과하기 위한 행정명령은 6일 오후 10시 관내 주요 공원 25곳(서울숲·보라매공원·경의선숲길·용산가족공원 등)부터 시행됐다. 한강은 6일 자정(7일 0시)부터 행정명령이 발동했으며 청계천은 7일 오후 10시부터 음주가 금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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