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오래]남편 찾아 탄광으로 떠나기 전날 찾아간 빚쟁이 친구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 (199)

새콤달콤한 블루베리가 까맣게 익었다. 새벽부터 한 알 한 알 따 모아 친구에게 보낼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가장 맛있는 것, 가장 좋은 것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들, 그중 한 친구는 십 대의 끝자락에 만난 사회 친구다. 문득 그 친구가 생각난다.

어린 소녀였던 나는 가난 때문에 부모의 품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했다. 다리가 붓도록 일하느라 힘들어도 한 방에서 뒹구는 또래 친구들이 있어 행복했다. 창문에 비친 달을 쳐다보며 엄마 생각에 엉엉 울었던 시간들. 그렇게 소녀는 처녀가 되었다.

까맣게 익은 블루베리를 따다가 십대의 끝자락에 만난 사회친구가 문득 떠올랐다. [사진 piqsels]

까맣게 익은 블루베리를 따다가 십대의 끝자락에 만난 사회친구가 문득 떠올랐다. [사진 piqsels]

“돈 버는 것도 가난한 집을 살리는 일이지만 일찍 시집을 가야 집도 살리고 가족도 살린데이….” 밥 먹으러 가면 나이 드신 주방 아줌마는 늘 말했다. 그 말에 일찍 시집을 갔다. 그래도 가난만 빼면 소소한 행복도 있었다.

이미 부도가 나 어수선하던 어느 날, 남편은 내게 쪽지 한장을 남기고 말도 없이 사라졌다. 돌이 갓 지난 어린 딸이 살아갈 희망을 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시조모님이 충격으로 쓰러지고 후유증으로 곧바로 치매가 왔다. 시부모는 깊은 우울의 늪에 빠져서 병원에서 사셨다. 남편이 저질러 놓고 간 부채를 상환하라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채권자들이 현관에 드러누워 시위하고 술에 취해 들락거렸다.

어머님이 먼 친척에게 빌려다 나에게 준 돈도 다 떨어지고 더 이상 빌릴 곳도 없었다. 쌀통이 비었음을 알았을 때 아이를 둘러업고 무작정 버스를 탔다. 목적 없이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해가 뉘엿뉘엿 질 즈음 친구를 찾아갔다. 결혼하고 몇 년 만에 만나 하는 말이 돈 부탁이라니….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그녀는 마치 빌린 돈 갚듯 건네주었다. 처음엔 10만원을 빌렸다. 일반 노동자의 월급이 20만원이 안 되던 시절이었다. 아끼고 아껴서 썼다. 그렇게 몇 번을 더 빌렸다. 당연히 갚을 길은 없었고 부채만 쌓였다.

그러던 중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탄광에 취업해 작은 방도 구해 놨으니 짐을 대충 싸서 몰래 올라오라는 것이다. 내가 이삿짐을 싸더라는 소문과 함께 남편의 소식도 삽시간에 퍼져 돈을 받아야 하는 별별 사람들이 몰려와 모두들 자기 돈을 첫 번째로 갚아야 한다고 차용증을 다시 쓰고 다짐을 받았다.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갔다.

문득 친구에게 빌린 돈이 생각났다. ‘그냥 떠나자. 일단 도망가서 살다가 돈을 벌어 갚을 때 그때 용서를 빌자’. 온갖 상념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런데 욕을 먹어도 미안하단 말은 하고 떠나야 할 것 같았다. 친인척의 돈은 남편과 시부모가 빌린 거지만 친구의 돈은 내 인생의 첫 빚이었다. 떠나기 전날, 어수선한 마음을 안고 친구의 직장에 찾아가 말 한마디 못하고 한참을 그냥 앉아 있었다.

어린아이를 업고 나온 나를 보고 눈치 빠른 친구는 근처 시장으로 나를 데리고 나왔다. 군것질로 요기하고 아이에게 오리 모양의 오줌통을 사서 들려주며 말했다.

“난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 나중에 너 성공하면 이자까지 받을 거야. 이 고비만 이겨내면 돼. 야~그리고 오늘이 마침 월급날이라 날을 잘 맞춰 와서 정말 다행”이라며 월급봉투에서 몇만 원을 꺼내 자기 호주머니에 넣고는 봉투째 아기 업은 포대기에 꾹꾹 눌러 넣었다.

빚쟁이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버스 창밖을 보다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서러움에 흘린 눈물이 아니라 내 여정에 찬란한 빛을 비춰주는 희망찬 눈물 방울이었다. [사진 pixabay]

빚쟁이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버스 창밖을 보다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서러움에 흘린 눈물이 아니라 내 여정에 찬란한 빛을 비춰주는 희망찬 눈물 방울이었다. [사진 pixabay]

나는 돌아오는 버스 창밖의 풍경 하나에도 눈물이 났다. 행복해서 말이다. 남편 찾아 떠나는 날 어른들은 마치 징용 끌려가는 자식을 보내듯 땅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이웃 사람들도 모두 나와 새댁의 앞날을 걱정하며 같이 울어 주었다. 나도 울었다. 그것은 서러움에 흘린 눈물이 아니라 내 여정에 찬란한 빛을 비춰주는 희망찬 눈물방울이었다. 그날, 친구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행동은 이후의 삶에 긍정 마인드가 되어 오뚜기같이 살아갈 힘이 되었다. 세상을 다 준대도 바꾸고 싶지 않은 수채화 같은 풍경이다. 그날의 채무는 이미 다 갚았지만 마음의 빚은 세월이 갈수록 더 진하게 쌓여간다. 언젠가 동생에게 잠시 돈을 빌린 걸 알고는 친구가 나를 나무랐다.

“야야~돈은 한 사람에게만 빌려야 해. 그 정도는 나도 해 줄 수 있어.” 이제는 돈 빌릴 일도, 빌려줄 돈도 없는 보통의 삶을 사는 나, 금전적인 여유는 없어도 가장 좋은 것이 생기면 가장 먼저 그들이 생각나 오늘도 택배를 싸며 안부를 묻는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