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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19세에 대박 ‘스타 창업자’…왜 '52시간제' 반기 들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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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남세동 보이저엑스 대표. 사진 보이저엑스

남세동 보이저엑스 대표. 사진 보이저엑스

회사 지분 1%를 가진 이는 피고용인일까, 동업자일까. ‘일을 통한 자아실현’은 사업주의 사탕발림에 불과한걸까. ‘주 52시간 근로제’ 전면 도입에, 스타트업계가 한국 사회에 던진 질문이다.

무슨 일이야

지난 1일부터 5~49인 규모 사업장에도 주 52시간 근로제가 전면 적용됐다. 스타트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창업 멤버들이 인생을 걸고 달리는 초기 스타트업에까지 적용하는 건 과하다’는 것.

논쟁에 불을 지핀 건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보이저엑스의 창업자 남세동(42) 대표. 그는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52시간을 스타트업에도 강요하는 것은 사다리 걷어차기다”, “구성원의 자아실현을 막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국내외 IT 인사들이 댓글 수백 개를 달며 치열한 토론이 전개됐다.

글이 주목받은 건 남 대표 본인이 ‘몰입 노동’의 과실을 누린 스타 개발자이기 때문. 그는 1998년 19세에 네오위즈 인턴사원으로 입사, 세이클럽 채팅을 개발했다. 이후 첫눈(검색엔진)·라인(LINE) 등의 개발팀장을 거치며, 장병규(크래프톤)·이재웅(다음)·이해진(네이버) 등 1세대 IT 창업자들에게 두루 인정받았다. 지난 2017년 창업한 보이저엑스는 최근 소프트뱅크·알토스·옐로우독으로부터 300억원의 투자도 받았다.

초기 스타트업 적용, 왜 논란인가

주 52시간제는 지난 2018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돼 왔다. IT업체도 대부분 적응한 상태다. 그런데도 초창기 스타트업들이 문제 삼는 점은.

쟁점① : ‘스톡옵션 대박’ 꿈꾸는 근로자

남 대표는 “스타트업 직원이 1% 스톡옵션(주식매수권)을 받았다면, 회사가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이 되면 1%는 100억원이 된다”고 했다. 이는 실리콘밸리에서 ‘일해서 부자 되기’가 가능한 비결이기도 하다. 창업자가 인재 유치를 위해 자기 지분을 나누고, 직원은 회사의 미래 가치에 베팅하는 것. 이미 몸집이 커졌지만 토스·미소 같은 회사는 전 직원에 스톡옵션을 지급하고 있다.

남 대표는 “이들은 더 일하고 회사에 기여해 100억 벌고 싶어도, 52시간 이상은 (일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이들이 사업주는 아니지만 성공의 열매를 함께 가질 이들인데, ‘근로자’란 이유로 자발적 노동 시간을 제약하는 게 맞느냐는 문제 제기다.

고용노동부는 ‘지분이 많아도 근로자인가’라는 중앙일보 문의에 “근로기준법의 판단 지표로 봐야 해 일괄적으로 말할 수 없다”면서도 “회사 지분을 얼마나 가졌는지는 근로자 여부를 가리는 기준이 아니다”고 했다.

쟁점 ② : 지식노동과 자기계발
남 대표는 “지식 노동에서는 일과 공부, 일과 취미의 구분이 힘든 경우가 많다”며 시간 절대량을 제한하는 것이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기계 장비를 다루는 제조업과는 달리, 일과 자기계발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 네오위즈·첫눈 시절 남 대표와 함께했던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도 4차산업혁명위원장 시절 주 52시간제에 반대했었다. “20대 때 2년간 스스로 주 100시간씩 일해 내 실력이 압축성장했다”는 것.

남 대표는 '법을 제대로 지키려면 직원들이 집에서 자발적으로 코딩 실력을 키우려는 것도 업무 연계성이 있으니 막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회사 출퇴근이 자유로웠는데, 주 52시간제 적용으로 출퇴근 시간을 기록해야해 자율이 훼손됐다고도 했다.

고용노동부는 중앙일보 문의에 “회사에서 사용하는 도구에 집에서 접속하거나 결과물을 업로드했다면 근로시간으로 볼 수 있다”며 “근로자가 ‘일한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대로 다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장병규 전 4차산업혁명위원장, 현 크래프톤 이사회 의장. 사진 최정동 기자

장병규 전 4차산업혁명위원장, 현 크래프톤 이사회 의장. 사진 최정동 기자

스타트업의 주 52시간, 팩트 ○X

초창기 스타트업의 구성원이 원할 경우, 합법적으로 주 52시간 이상 일할 수 있을까? 

① 모두 임원으로 하면 된다 (△)
경영 담당자와 관리·감독 업무 담당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다. 그러나 임원직에 앉힌다고 무조건 주 52시간제 예외는 아니다. “직급상 임원이어도 실제로 대표이사의 지휘·감독을 받아 일하고 그 대가로 일정한 보수를 받는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2017두46899).

② 자발적 연장근무는 무관(X)
근로기준법은 친고죄(피해자가 직접 고소해야 함)가 적용되지 않는다. 제3자가 회사를 검찰 고발하거나 고용노동부에 진정할 수 있다. ‘주 52시간 위반’은 반의사불벌죄도 아니다. 직원이 ‘나는 괜찮다’고 해도, 사업주를 처벌할 수 있다는 의미다. 위반 시 사업주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자발적으로 일해도 52시간 넘기면 위법.

③ 탄력근로제, 재량근로제, 선택근로제 하면 된다(△)
· 탄력근로제는 6개월간 평균 노동시간이 주 52시간 이내면 된다. 그런데 경영진이 대상 근로자와 사전 서면 합의하고, 일별 근로시간은 시행 2주 전에 알려줘야 한다. 성수기나 농번기가 정해져 있는 제조업·농업 등에 적합한 제도.

· 재량근로제는 재량권 갖고 일하는 근로자에 대해 노사 합의로 근로시간을 체크하지 않는 제도다. 그러나 대다수 스타트업은 ‘도입이 어렵다’는 입장. 직원에게 업무 수행 수단이나 시간 배분을 ‘구체적 지시’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보고나 회의도 노사가 시간·빈도를 미리 서면 합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약속된 주 1회 회의 외에, ‘지금 잠깐 회의합시다’는 안 될 수 있다는 것. 명확한 기준도 없어, 고용노동부의 ‘운영가이드’에는 ‘통상적인’(11회), ‘지나치게’(7회) 같은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

· 선택근로제도 3개월간 평균 노동시간이 주 52시간 이하면 된다. 그러나 3번째 연쇄 창업한 한 스타트업 대표는 “초기 기업은 날밤을 새워도 투자자에 시제품 내놓기로 한 기한을 맞출까 말까”라며 “노동시간 평균은 스타트업에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계 의견은

벤처기업협회는 지난달 “50인 이하 스타트업에는 주 52시간제 적용을 1년 유예해 달라”는 입장을 냈다. 1500여 스타트업이 가입한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제도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일괄적인 근무시간 통제만으로 근로자를 보호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는 “법을 좀 더 정교하게 만들어서, 생존 경쟁을 하는 스타트업도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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