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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유가에 속타는 석화·항공·해운, 머리 복잡한 정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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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미국 텍사스주 미들랜드의 석유 시추 현장.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텍사스주 미들랜드의 석유 시추 현장. [로이터=연합뉴스]

‘유가 100달러’ 시대가 다시 올까. 주요 산유국 간 갈등이 계속되며 국제유가가 2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유가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국내 산업계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유화·해운·항공 '울상', 정유는 '고심'

증산 합의 결렬되자 유가 급등

국제유가 추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국제유가 추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非)OPEC 산유국으로 구성된 OPEC 플러스(+)는 5일(현지시간)로 예정됐던 장관급 산유국 회의를 취소했다. 당초 OPEC+는 감산 계획의 시한을 내년 4월에서 12월로 연장하되 감산 규모를 점진적으로 줄이기로 잠정 합의했다. 이 경우 연말에는 지금보다 하루 200만 배럴의 원유가 증산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아랍에미리트(UAE)가 각국의 원유생산 제한량을 재산정하자고 요구하며 감산 협상은 결렬됐다. OPEC+는 만장일치 합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증산은 어려울 전망이다.

원유 증산 기대가 무산되면서 국제유가는 급등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8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1.57% 상승한 배럴당 76.3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2018년 10월 이후 최고치다. 주요 외신은 여름철 원유 수요가 폭증할 경우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넘어 100달러까지 치솟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석유화학, 원재료 부담 상승 타격

유가가 계속 오르면서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계산도 복잡해졌다. 석유화학 제품은 원유에서 추출한 납사를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유가가 상승하면 원재료 가격이 상승하기 때문에 석유화학업체의 수익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올해 초 미국 남부지역의 한파로 설비 가동을 멈췄던 글로벌 화학업체가 생산 재개에 나섰고 중국의 에틸렌, 프로필렌 신규 증설계획이 완료되고 있어 화학제품 공급량이 늘어나는 것도 악재다. 황유식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가 70달러 선을 넘을 경우 고가 원료 구매에 따른 실적 부담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석유화학업계는 납사를 대체할 수 있는 원료 발굴에 매달리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5일 약 1400억원을 투자해 전남 여수공장과 서산 대산공장의 설비를 개선해 현재 20% 수준인 LPG 사용량을 2022년까지 약 40% 수준으로 높이기로 했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에틸렌 생산시 원료에서 납사의 비중을 줄이고 LPG 비중을 높일 경우 유가 급등으로 인한 원가 손실을 줄이고 이산화탄소 등 대기오염 물질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여수와 대산공장에 LPG 전용 설비를 갖추고 있는 LG화학은 지난해 11월 핀란드 업체와 바이오원료 공급 계약을 맺고 납사 대신 LPG와 바이오 원료 사용을 확대하기로 했다. 한화토탈도 지난 5월 1500억원을 투자해 가스전용 분해 시설을 설치하는 등 LPG 원료 사용을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항공·해운, 수익성 악화 우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 내외국인들이 출국 수속을 밟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 내외국인들이 출국 수속을 밟고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매출에 타격을 입은 항공업계는 항공유 가격까지 올라 이중고를 겪고 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기준 통합 항공유 가격은 배럴당 79.6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90.3% 올랐다. 대한항공만 따져봐도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를 경우 항공사가 치러야 할 비용은 연간 약 3000만 달러(약 339억 원)씩 늘어난다. 항공사의 영업비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항공유 구매비용이기 때문이다.

국제유가가 상승하면 유류할증료도 오르기 때문에 여행객의 부담도 커진다. 지난 5월 1단계(1200~9600원)였던 국제선 유류할증료는 지난달에 2단계(3600~2만400원)로, 이번 달에는 3단계로 올랐다. 국제선 유류할증료 3단계는 편도 기준(거리 비례별) 4800~3만6000원이 부과된다.

해상운임이 오르며 간만에 호황을 맞은 해운업계 역시 유류비가 올라 수익성이 악화할까 우려하고 있다. 국내 최대 컨테이너선사인 HMM의 경우 지난해 매출 원가 대비 유류비용이 10%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유가가 오르면 유류비용이 커져 실적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다행히 해운사들이 사용하는 벙커C유의 경우 가격 변동 폭이 크지 않은 편”이라며 “일단 국제유가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유업계, 웃음 속에 근심 깊어져 

에쓰오일 울산공장의 잔사유 수소 첨가 탈황시설 [사진 에쓰오일]

에쓰오일 울산공장의 잔사유 수소 첨가 탈황시설 [사진 에쓰오일]

유가 변동에 가장 민감한 국내 정유업계의 속내도 복잡하다. 우선 국제유가가 오를 경우 가격이 오르기 전 싸게 사들인 원유 덕분에 단기적인 재고이익이 가능해 유가 상승 소식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 유가가 고점을 향해 달렸던 지난 1분기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은 각각 3800억원과 2850억원 가량의 재고 관련 이익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비 등을 뺀 정제마진은 여전히 손익분기점에 못미친다는 게 걱정이다. 정유업계에 따르면 6월 넷째주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배럴당 1.7달러로 손익분기점인 4~5달러를 여전히 밑돌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어 재고 관련 이익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정제마진이 오르지 않을 경우 실적 개선은 어렵다”며 “실질적 석유제품 수요가 증가해 정제마진이 회복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계속 오를 경우 코로나19 이후 반짝하던 수요 역시 기대만큼 살아나지 않을 것이란 게 정유업계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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