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에서 쓰던 그 제품…“침구는 럭셔리의 완결. 5시간을 자도 왕처럼 자야”

중앙일보

입력 2021.07.07 05:00

업데이트 2021.07.07 11:46

지난 2019년부터 '프레떼' 수장을 맡고 있는 필리포 아르나볼디 CEO. 사진 프레떼

지난 2019년부터 '프레떼' 수장을 맡고 있는 필리포 아르나볼디 CEO. 사진 프레떼

추리소설의 배경이 된 오리엔트 급행열차와 저 유명한 타이타닉호. 이 호화로운 역사의 한 장면을 함께 한 브랜드가 있다. 바로 이탈리아의 린넨 전문 제조기업 ‘프레떼(FRETTE)’ 다.

린넨은 여름철 옷이나 침구에 널리 쓰이는 ‘아마천’으로, 인류가 6000년 전부터 사용해 온 가장 오래된 섬유다. 넓은 의미로는 집에서 쓰는 천 제품을 아우른다.

지난 1860년 에드먼드 프레떼가 설립한 프레떼는 이탈리아 왕실의 침구 조달 업체로 선정된 이후 유럽의 호텔과 성 베드로 대성당의 제단, 초호화 열차와 여객선 연회장에 식탁보와 냅킨 등 최고급 린넨 제품을 납품해왔다.

1894년 프레떼가 제작한 로마 성 베드로 성당의 '성모(Holy Virgin' 제단보(왼쪽)와 1901년 제품 소개용 카탈로그. 사진 프레떼

1894년 프레떼가 제작한 로마 성 베드로 성당의 '성모(Holy Virgin' 제단보(왼쪽)와 1901년 제품 소개용 카탈로그. 사진 프레떼

지금도 영국을 비롯한 유럽 왕실들과 세계 1500여개 최고급 호텔이 프레떼 침구류와 수건·목욕가운을 사용하고 있다. 이 중엔 롯데 시그니엘 호텔과 신세계의 조선 팰리스 호텔도 있는데,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프레떼가 (가격이 높은데 객실 전체에 구비가) 가능하겠느냐”고 재차 확인했다는 후문이다.

지난달 강남구 압구정동에 문을 연 ‘프레떼 서울’은 한국 1호 매장이다. 이탈리아 몬차(Monza)지역의 사무실을 화상으로 연결해 필리포 아르나볼디(54) 프레떼 최고경영자(CEO)를 만나봤다.

한국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브랜드는 아니다.  
그동안 주로 호텔을 통해 진출했고 서울도 방문했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이 침구에 관심이 많고 조예가 깊다는 걸 알게 됐다. 특히 한국 소비자는 품질과 장인정신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몇 안 되는 고객이다. 해외여행 중에 외국에서 프레떼 제품을 구매하는 한국 소비자가 많아 독자적인 매장을 내기로 했다. 
서울 압구정에 문을 연 '프레떼 서울' 내부 모습. 전 세계 41번째 프레떼 매장이다. 사진 프레떼

서울 압구정에 문을 연 '프레떼 서울' 내부 모습. 전 세계 41번째 프레떼 매장이다. 사진 프레떼

‘침구계의 에르메스’라고 불리는데.
프레떼는 패션 회사가 아니다. 정갈하면서 시간이 흘러도 쓸 수 있는 ‘클래식’을 추구하는 회사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럭셔리는 품질과 이탈리아다움(Italianity)이다. 이탈리아의 장인정신으로 만들 때만 나오는 디자인과 품질이 있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명품 브랜드가 이탈리아에서 제품을 만들고 있다. 다만 최근 그 수가 점점 줄어들어 안타깝다.

프레떼는 소량 생산 방식을 고수한다. 모든 제품은 세계 면화 생산량의 3%뿐인 이집트 산 초장섬유와 장섬유로만 만든다. 섬유 길이가 길수록 부드럽고 내구성이 강한 고급 실을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에 서식하는 솜털오리(아이더덕)의 둥지에서 채집한 가슴털로 속을 채운 이불은 1년에 2500~3000채밖에 만들지 못한다.

사람 손이 가는 공정도 많다. 여러 색의 실을 사용해 원하는 문양을 짜는 ‘자카드’ 기술이 대표적이다.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레이스 작업의 경우 베개 커버 1장을 제작하는 데 3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불커버 1개, 베개커버 2개, 침대시트 1개로 구성된 침구세트 가격은 200만~800만원대다.

비대칭 문양을 직조하는 자카드 공법이 적용된 제품(왼쪽)과 전체를 수작업으로 짜는 레이스 베개. 사진 프레떼

비대칭 문양을 직조하는 자카드 공법이 적용된 제품(왼쪽)과 전체를 수작업으로 짜는 레이스 베개. 사진 프레떼

우수하고 값싼 합성섬유도 많은데 천연소재만 고집하는 이유는.
이유는 단순하다. 잠을 잘 때 몸이 숨을 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습도가 높은 여름에는 피부가 배출하는 땀의 40% 정도를 흡수하는 린넨 소재와 시원하고 바삭한 감촉이 특징인 ‘퍼케일 면’이 좋다. 반면 ‘새틴 면’은 면화인데도 실크같이 부드럽고 따뜻해 선선한 날씨나 겨울에 어울린다. 합성섬유는 공기가 통하지 않아 소재별 특징에 따라 몸이 숨을 쉬는 것을 방해한다. 많은 호텔들이 가격을 이유로 합성섬유로 만든 침구를 사용하지만, 몸에는 천연소재만 한 게 없다.  
집에서만 쓰는 이불이 굳이 비쌀 필요가 있을까.  
침구는 남들 앞에서 과시하기 어려운 굉장히 사적인 영역이다. 그런 의미에서 침구야말로 순전히 내 경험과 취향이 반영되는 럭셔리의 완결판이다. 무엇보다 잘 자는 건 건강과 생산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5시간만 자도 좋은 침구에서 왕처럼 자면 편안한 숙면을 취할 수 있고 차이점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 경험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고 직접 자봐야 안다. 그래서 고객이 오면 제품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따뜻하고 부드러운 침구를 좋아하는지, 시원하고 바삭거리는 느낌이 편한지, 원하는 수면 환경부터 상담한다. 건강을 위한 소비는 가치를 돌려받는다.
 프레떼의 고급 라인인 '안드레아 린넨' 침구가 깔린 '시그니엘 부산'호텔 객실 모습. 사진 롯데호텔

프레떼의 고급 라인인 '안드레아 린넨' 침구가 깔린 '시그니엘 부산'호텔 객실 모습. 사진 롯데호텔

프레떼의 고급 라인인 '안드레아 린넨' 침구가 깔린 서울 역삼동 '조선 팰리스'호텔 객실 모습. 이소아 기자

프레떼의 고급 라인인 '안드레아 린넨' 침구가 깔린 서울 역삼동 '조선 팰리스'호텔 객실 모습. 이소아 기자

프레떼 역시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개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소매부문이 선방하면서 호텔부문의 손실을 상당 부분 상쇄했다. 지난해 말 기준 프레떼 매출은 약 1억 유로(약 1342억원)를 기록했다.

코로나 이후 사람들의 생활양식은 어떻게 변했을까. 
가장 큰 변화는 ‘사적인 환경’을 선호하게 됐다는 점이다. 제 사무실이 있는 뉴욕과 이탈리아만 해도 여러 사람이 모이는 호텔보다는 빌라나 리조트를 많이 찾고, 복잡한 도시보다 한적한 지역을 선호하는 추세다. 가족 휴가를 요트에서 보내는 사람도 많아 관련 제품 수요가 늘었다. 예전보다 확실히 가족, 소그룹 중심으로 라이프스타일이 변했다. 바깥으로 나가기보다 집으로 손님을 초대해 인테리어나 홈패션을 지인과 나누는 기회도 많아졌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위치한 프레떼 글로벌 대표매장(플래그십 스토어) 외관. 사진 프레떼

이탈리아 밀라노에 위치한 프레떼 글로벌 대표매장(플래그십 스토어) 외관. 사진 프레떼

급변하는 환경에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그동안 오프라인 매장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코로나 이후 온라인 매출이 100% 가깝게 늘어난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에 고객들이 화상으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온라인에 가상 스타일링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한국 소비자들을 위한 웹사이트도 곧 완성된다. 흥미로운 건 지난 1년 동안 신규 고객 중 20·30대 젊은 소비자 비중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집이라는 개인 공간을 중요시하고 비치타월·쿠션·담요·홈웨어 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제품에 큰 관심을 보인다.
많은 섬유관련 산업이 어려움을 겪는다. 성장을 위한 목표가 있다면.  
161년이란 역사를 지녔지만 브랜드는 늘 진화해야 한다. 품질과 가치는 지키되 온라인 채널 구축, 서비스 개선 등 소비자의 기대 변화를 충족시켜야 한다. 고객의 집을 방문하는 상담과 맞춤 주문 서비스, 린넨 관리법 교육도 이런 맥락이다. 여기서 21년을 일했다. 개인적으론 침구회사가 아니라 집안의 분위기를 바꾸고 싶을 때 찾아가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되고 싶다. 우리는 규모가 작은 회사다. 제품군을 늘리면서 고객 만족도를 유지하려면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소비자 안목과 품질 기대 수준이 높은 한국 시장이 중요한 시험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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