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양성희의 시시각각

어느 극장의 폐관

중앙일보

입력 2021.07.07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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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장기화된 코로나 19와 극장 관객 감소로 42년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서울극장.   [연합뉴스]

장기화된 코로나 19와 극장 관객 감소로 42년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서울극장. [연합뉴스]

42년 역사의 서울극장이 다음 달 문을 닫는다. 맞은편 단성사·피카디리 극장과 함께 ‘한국 영화 종로 시대’를 열었던 곳이다. 단성사는 오래전 폐업했고, 피카디리에는 CGV가 들어서 있다. 저무는 시대에 대한 아쉬움에 더해 점점 커지는 ‘극장 위기론’의 징후로 읽혀 착잡하다.
 영화기자 초년병 시절에 시사회는 늘 서울극장에서 열렸다. 좁은 로비가 스타들로 북적였다. 티켓 집계 전산망이 갖춰지기 전엔 제작자들이 서울극장 매표소 앞에서 직접 관객 머릿수를 세면서 흥행을 가늠했다. 정치인들의 문화행사도 서울극장에서 열렸다. 2000년대 멀티플렉스 시대의 도래가 쇠락의 시작이었다.
 서울극장의 폐관은 "극장들이 대기업 거대 멀티플렉스 체인과 작은 예술영화관들로 극단적으로 양분화되면서 그 중간급의 전통적 극장이 사라진 상징적 사건"(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이다. 이미 대형 멀티플렉스에 관객을 내준 데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문제는 이게 오래된 일부 극장만의 얘기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국내 극장 관객 수(5952만 명)는 전년보다 70% 이상 줄어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였다. 코로나19로 극장 대신 넷플릭스 같은 OTT(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뉴노멀이 됐고, ‘서복’ 등 일부 영화는 극장·OTT 동시 개봉했다. 코로나 종식 후에도 굳이 극장에서 봐야 하는 특별한 체험으로서의 영화, 데이트 같은 패키지 여가 프로그램이 아니고선 OTT로의 이탈을 막아내기 힘들다는 위기감이 커지는 이유다.
 넷플릭스의 국내 월 사용자가 1000만 명을 돌파한 데 이어(지난 2월 기준) 디즈니플러스ㆍHBO맥스ㆍ애플TV플러스 등 글로벌 OTT의 국내 진출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이에 맞서는 토종 OTT들의 각축도 치열하다. 누군가의 말대로 이제는 "OTT가 퍼스트이자 라스트이고, 다른 윈도는 허락하지 않는 생태계가 열렸다."
 이들 글로벌 OTT들은 그저 동영상 플랫폼이 아니라 다수의 오리지널 콘텐트와 IP(지식재산권)를 확보한 굴지의 콘텐트 메이커라는 게 공통점이다. 디즈니플러스는 마블·픽사·21세기폭스·내셔널지오그래픽이 제작한 영화·애니메이션·다큐 등 8000여 콘텐트를 보유한 IP 명가다. HBO맥스는 '왕좌의 게임'으로 유명한 HBO의 OTT다. 디즈니플러스는 국내 상륙을 앞두고 국내 디즈니 채널(케이블) 철수에 들어갔다. 세계적으로도 각국의 디즈니 계열 및 최근 인수한 FOX 계열 채널을 접고 있다. HBO 역시 각국의 HBO 채널을 정리하고 HBO맥스에 올인 중이다.
 'OTT 퍼스트' 시대의 도래는 극장·TV 등에는 재앙이지만, 콘텐트 공급자들에는 기회이기도 하다. 콘텐트 확보를 위한 ‘쩐의 전쟁’이 펼쳐져서다. 글로벌 OTT의 한국 진출에 파트너가 돼 주는 통신사들은 당장 가입자 수를 늘릴 수 있지만, 토종 OTT의 성장을 방해하는 내부의 적이다. 정부는 부처별로 OTT를 제 소관으로 챙기기에 바쁠 뿐 현실적이고 일관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토종 OTT 경쟁력 키우기도 업자들의 이해가 제각각이라 쉽지 않다. 한마디로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격변이 몰려오는데 뾰족한 출구는 없고 시장의 혼란과 갈등만 깊어지는 상황이다.
 극장업계는 최근 극장 매표 수익의 3%를 내는 영화발전기금의 개편을 주문한 바 있다. 관객에게 기금을 거둬 영화진흥위원회 운영, 독립영화 제작 지원 등 한국영화 진흥에 쓰는 돈이다. 영발기금 부담을 당분간 줄여주거나 고사 위기의 극장 살리기에 기금을 써달라고 주문했다. 영발기금을 OTT에도 부과하라는 목소리도 커진다. 프랑스 OTT 사업자는 비디오세를 내며, 독일은 OTT 사업자에게 영화분담금을 부과한다. OTT 퍼스트 시대, 늘어난 영향력만큼 OTT에 책무를 부과하며 새 질서를 만드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코로나 효과에 OTT 공세로
흔들리는 극장, 전조탄 아닌지
OTT퍼스트 시대, 대응책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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