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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지사지(歷知思志)

안시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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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수(隋)나라가 대륙을 통일했을 때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고구려였다. 중국이 남북조로 분열한 170년(420~589) 동안 고구려는 남조와 북조의 대립을 이용하며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 수나라의 통일은 고구려가 누리던 특수가 만료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중국에 강력한 통일 왕조가 들어서면 그 창끝은 요동과 한반도 북부로 향했다. 한무제 때 고조선 정벌이 그랬다. 이를 피하려면 신라처럼 중국의 세계 전략 안에 들어가야 했지만 고구려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중국의 주변 세력을 적극 활용했다.

역지사지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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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년 6월 수양제는 북쪽 변경 일대를 순행하는 도중 고구려 사신이 동돌궐을 방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구려가 북방 초원의 강자 돌궐의 손을 잡는다면 변경은 늘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수양제 입장에서 양국이 손을 잡고 중원을 위협한다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고구려 정벌에 대한 집착은 여기서부터 비롯됐다. 그래서 당시까지 무시했던 일본에 대해서도 태도를 바꿔 사신을 보냈다. 백제·신라·일본을 묶어 역으로 고구려를 포위하는 구도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치열한 외교전은 안시성 싸움에서도 변수가 됐다. 당태종이 철군한 결정적 이유는 설연타라는 유목 세력의 공격 때문이었다. 배후를 찔린 당태종은 말머리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중국 사서인 『자치통감』은 설연타가 당나라를 공격하기 전 고구려의 사신이 찾아갔다고 전한다. 영화 『안시성』같은 대중문화가 보여주는 군사력만 주목하면 고구려인들이 남겨준 ‘진짜’ 메시지를 놓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