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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인수가격 높다고 재입찰, 상식 벗어난 대우건설 매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4면

염지현 금융팀 기자

염지현 금융팀 기자

“입찰가를 올리는 게 아니라 낮추려는 재입찰은 처음 봤다.”

매각 우선협상대상자 된 중흥건설 #재입찰로 2000억가량 돈 아낀 셈 #IB업계 “가격 낮추는 재입찰도 있나” #산은, 제값에 팔겠다던 약속 어디로

2조원대 대우건설의 매각을 놓고 투자은행(IB) 업계에서 공통으로 나오는 얘기다. 5일 중흥건설이 대우건설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지방 중견 건설사인 중흥건설이 시공능력평가 6위인 대우건설 인수에 나서는 게 시장에 충격을 주는 가운데, 대우건설 최대주주인 KDB인베스트먼트(KDBI·지분 50.75%)가 후보를 찾는 과정을 둘러싼 잡음도 구설에 오르고 있다.

논란의 불씨는 ‘재입찰’ 의혹이다. KDBI는 지난달 25일 본입찰이 끝난 뒤 지난 2일 입찰 참여자 2곳(중흥건설, DS네트웍스-스카이레이크 컨소시엄)에게 수정 제안서를 받았다. IB업계에 따르면 본입찰에서 중흥건설은 2조3000억원, DS컨소시엄은 1조8000억원을 써냈다.

가격 격차가 5000억원 가량 벌어지자 중흥건설은 인수조건 조정을 요청했고, KDBI는 양사에 투자 제안서를 수정하도록 했다. 매각 불발을 막기 위한 차선책으로 풀이된다. 결과적으로 중흥건설은 당초보다 2000억원가량 돈을 덜 쓰고도(2조원대 초반 추정) 승기를 잡았다.

IB업계는 이번 재입찰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입찰 참여기업이 인수가를 너무 낮게 써서 가격을 조정한 경우는 있어도, 인수 가격이 높다고 재입찰한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IB업계 관계자는 “(매물을) 더 비싼 가격에 팔려고 입찰하는 건데 가격을 낮추는 경우는 없다”며 “불투명했던 재입찰 과정까지 상식적인 인수합병 과정으로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증권업계의 인수금융 담당자도 “인수 불발을 막기 위한 KDBI의 고육지책이라도 결과적으로 인수 가격을 낮춰 중흥건설에 혜택을 줬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성 논란이 지속하자 이대현 KDBI 대표는 지난 5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제안자 중 한쪽에서 수정을 요청했고, 다음날 다른 제안자에게 이를 알리고 원할 경우 수정을 하도록 했다”며 “재입찰을 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매각대금과 거래의 신속성과 확실성, 대우건설의 성장과 안정적 경영 등을 종합 판단해 중흥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고 강조했다.

통상적이지 않은 매각 절차에 대우건설 노조도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6일 성명서에서 “KDBI가 두 매각 주체에 입찰 금액을 다시 제안받았지만, 재입찰이 아니라는 건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운전자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2019년 국정감사에서 대우건설 매각과 관련해 “2년 정도를 거쳐 시기가 좋아지면 기업가치를 높여 제값 받고 팔겠다”고 말했다. 2018년 대우건설을 호반건설에 넘기려다 해외사업장 부실 문제로 불발된 직후다. 2010년 이후 산은이 대우건설 인수와 유상증자 등에 투입한 공적자금만 3조2000억원 정도에 이른다.

재입찰로 몸값을 낮추면서까지 대우건설의 새 주인을 찾는 게 최선일까. 그나마 입질을 한 후보라도 놓칠세라 서두르는 탓에 제값에 팔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한 채 특혜 논란에만 휩싸이게 될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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