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활옷 뒷깃 속 종이심, 알고보니 과거시험 낙방 답안지

중앙일보

입력 2021.07.0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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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창덕궁 활옷의 아랫단 안감이 해진 틈으로 비치는 글씨. 활옷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옷감 사이에 넣은 종이로, 분석 결과 1880년 과거시험 때 쓴 답안지인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창덕궁 활옷의 아랫단 안감이 해진 틈으로 비치는 글씨. 활옷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옷감 사이에 넣은 종이로, 분석 결과 1880년 과거시험 때 쓴 답안지인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어, 글자가 있네?”

내시경·적외선카메라로 밝혀내
예복 만드는 데 종이 재활용한 듯
‘창덕궁 활옷’ 일반에 최초 공개

지난 2016년, 국립고궁박물관 지류직물실에서 ‘창덕궁 전래 활옷’을 들여다보던 김선영 연구사와 이정민 연구사(당시 연구원)의 눈에 낯선 무늬가 들어왔다.

뒷깃 안감이 해진 틈으로 ‘而(이)’ ‘歸(귀)’ ‘三(삼)’ 등 먹글씨가 보였다. 왕실 여성이 예식 때 가장 겉에 입는 옷인 활옷은 빳빳한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옷 전체에 종이심을 넣었는데, 이 활옷의 종이심은 하얀 새 종이가 아니라 글씨가 쓰인 이면지였다.

옷감 사이 종이를 분석하기 위해 내시경으로 찍은 사진.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옷감 사이 종이를 분석하기 위해 내시경으로 찍은 사진.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글씨를 더 확인하기 위해 활옷 안쪽을 들여다보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적외선카메라와 내시경을 동원해 풀어낸 활옷 안쪽의 종이는 1880년 헌종비의 생일을 축하하는 과거가 열렸을 때의 답안지였다. 유생들이 작성한 과거시험 답안지가 왕실의 예복을 만드는 데 재활용된 것이다.

활옷 속 종이에는 같은 내용의 글들이 반복되고 있어,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의 답지를 가져다 쓴 것으로 추정됐다. 국립고궁박물관 임경희 학예연구관은 “한자 각각은 다 알아볼 수 있는데 해석이 도저히 안 되는 문장”이라며 “낙방할 수밖에 없었던 답안지들”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7일 과거시험 답안지가 들어있는 ‘창덕궁 활옷’을 일반에 최초로 공개한다. 10월 31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안녕(安寧), 모란’ 전에서다. 궁중 장식에 많이 쓰였던 모란을 테마로 한 전시다.

복온공주 활옷의 전체 모양. 김정연 기자

복온공주 활옷의 전체 모양. 김정연 기자

이 활옷은 ‘창덕궁 연화창고에서 발견됐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채 1980년대부터 고궁박물관에 보관돼왔다.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아 전시를 위한 보존처리도 하지 못하다가, 고궁박물관에 직물 담당 보존 전문가가 생긴 이후 2016년부터 보존작업을 위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정민 연구사는 “구멍이 많이 나고 상태가 좋지 않은 편이었다”며 “깃에 해당하는 동정 부분, 겨드랑이 부분 등에 오염도 그대로 남아있었다”고 전했다.

창덕궁 활옷은 제작 연대가 확인된 두 번째 활옷이 됐다. 제작 연대가 알려진 최초의 활옷이었던 ‘복온공주 활옷’도 이번 전시에서 함께 공개된다. 조선 순조의 둘째 딸이었던 복온공주(1818~1832)가 입었던 옷으로, 공주가 시집을 간 안동김씨 김병주의 집안에서 대대로 물려와 제작연대와 착용자가 모두 확인된 유일한 활옷이다.

열 세 살에 혼례를 치른 뒤 열 다섯살에 사망한 복온공주의 활옷은 길이 129㎝로 다소 작은 편이다. 이정민 연구사는 “초등학생이 입을 만한 사이즈의 활옷이고, 모란 자수가 깔끔하게 잘 남아있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전시에선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인 모란 병풍 11점과 모란을 소재로 한 문화재 120여 점도 함께 볼 수 있다. 전시 공간 안에 꾸며놓은 ‘모란정원’에는 지난 4월 창덕궁 낙선재 앞에 핀 모란에서 채집한 향을 채워 자연 속에 있는 느낌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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