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와 UAE 싸움에…불붙는 기름값, 커지는 인플레 우려

중앙일보

입력 2021.07.06 19:24

업데이트 2021.07.06 20:09

지난 1일 파키스탄 페샤와르의 한 주유소에서 직원이 차량 주유를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지난 1일 파키스탄 페샤와르의 한 주유소에서 직원이 차량 주유를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23개 산유국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가 5일(현지시간) 원유 증산에 끝내 합의하지 못했다. 이 영향으로 국제유가는 3년여 만에 최고치로 급등했다. 국제유가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ㆍ러시아가 주도해 만든 증산 잠정합의안에 아랍에미리트(UAE)가 반대해 벌어진 일이다.

국제 원유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원자재발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우려가 다시 꿈틀대고 있다. 타오르는 유가가 '인플레 파이터'인 중앙은행의 긴축 본능을 제대로 깨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코로나19의 충격을 딛고 회복의 기지개를 켜는 세계 경제에 먹구름이 짙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이날 화상으로 열린 OPEC+ 회의는 시작 2시간 만에 취소됐다. OPEC+는 8월부터 적용할 감산 완화(증산량) 규모를 결정하기 위해 지난 1일 회의를 개최했지만 다음 날까지도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다. 이에 5일 다시 회의를 열고 협상할 계획이었지만, 회의 자체가 취소됐다. 추가 회의 일정도 잡히지 않았다.

모하메드 바르킨도 OPEC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회의는 취소됐다. 다음 일정은 적절한 시기에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국제유가는 치솟았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브렌트유 가격은 전날보다 1.3% 오른 배럴당 77.16달러를 기록했다. 서부텍사스유(WTI)도 전날보다 1.6% 상승한 배럴당 76.34달러를 기록했다. 2018년 10월 이후 3년여만의 최고치다.

국제 유가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국제 유가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합의안이 도출되지 않은 건 만장일치가 원칙인 OPEC+ 회의에서 UAE가 잠정합의안에 끝까지 반대했기 때문이다. 합의안의 골자는 두 가지다. 첫째는 증산이다. OPEC+는 8월부터 하루 평균 산유량을 매달 40만 배럴씩 늘려 12월엔 200만 배럴까지 증산할 계획이다. 여기엔 UAE도 찬성한다.

이견은 지난해부터 해 온 감산의 종료 시점에 있다. OPEC+는 코로나19 발생 직후인 지난해 4월 대규모 감산을 결정하고 올해 1월부터 하루 원유 생산량을 580만 배럴 줄였다. 합의안은 내년 4월 종료할 예정이던 감산 시점을 내년 12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UAE는 반대한다.

UAE가 문제 삼은 원유생산 기준치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UAE가 문제 삼은 원유생산 기준치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UAE의 불만은 감산 또는 증산의 기준점이 되는 회원국 석유생산할당량(쿼터)다. UAE의 쿼터는 2018년 10월 기준인 하루당 316만 배럴이다. 하지만 UAE는 그동안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생산능력을 키웠다. 지난해 4월 기준 실질 생산량은 384만 배럴로 2018년 10월보다 21.5%나 늘었다.

UAE는 2018년 10월 기준 쿼터로 감산 합의를 이행하면 다른 회원국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감산해야 한다며 쿼터를 380만 배럴 수준으로 높여달라고 요구한다. 수하일 알마즈루에이 UAE 에너지 장관은 미국 CNBC 방송에 “UAE가 가장 불리한 입장”이라며 “(감산 쿼터를 늘리지 않으면) 증산만 결정하고 감산 기간 연장은 추후 논의하자”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사우디는 증산과 감산 기간 연장 문제를 모두 결정하자는 입장이다. 쿼터는 지난해 4월 OPEC+ 당사국이 합의한 것으로 UAE가 지금 수정을 요구하는 건 무리한 요구라고 여긴다.

UAE는 산업 인프라를 구축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석유 증산에 힘써왔다. 원유 생산량을 어느 정도 통제해 급격한 국제유가 하락을 막으려는 사우디 생각과 어긋난다. WSJ은 “UAE의 OPEC+ 합의안 반대는 사우디에 흔들리지 않고 경제부문에서 제 갈 길을 가겠다는 선언”이라 해석했다.

 지난 2019년 UAE를 방문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왼쪽)가 무함마드 빈 자예드 UAE 아부다비 왕세제와 만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19년 UAE를 방문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왼쪽)가 무함마드 빈 자예드 UAE 아부다비 왕세제와 만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원유 생산뿐만 아니라 사우디와 UAE의 갈등은 또 다른 곳에서도 빚어지고 있다. 사우디가 UAE의 중동 경제ㆍ무역 허브 기능을 가져오려 하고 있어서다.

로이터 통신은 “사우디는 최근 다국적 기업들에 2024년까지 중동지역 본사를 사우디 수도 리야드로 옮기지 않으면 사우디 정부와의 계약을 끊겠다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대다수 글로벌 기업의 중동 본사는 UAE 두바이에 있다.

사우디와 UAE의 힘겨루기 속 OPEC+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제유가는 당분간 오를 수밖에 없다. 석유 수요는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데 공급량을 늘릴 주체는 사실상 OPEC+밖에 없다. 유가 안정의 버팀목이었던 미 셰일가스는 친환경 정책을 강조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 취임 이후 생산이 정체되고 있다.

김소현 대신증권 투자전략가는 “사우디와 UAE의 갈등이 장기화한다면 국제유가가 추가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2014년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업계에서 나온다.

물론 이른 시일에 산유국이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도 남아있다. 진종현 삼성증권 연구원은 “사태가 장기화하는 것은 사우디나 UAE 모두 지양할 것”이라며 “한 달 내로 증산에 합의하고 감산 일정 연장만 추후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럼에도 국제 유가의 불확실성이 이어지며 인플레이션 우려를 부추길 수 있어 세계 경제는 긴장하고 있다.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은 최근 빠른 경기 회복과 맞물리면서 전 세계 물가 급등을 견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되면 미 연방준비제도(Fed) 등의 긴축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미 백악관이 이날 이례적으로 OPEC+ 산유국 간 합의를 촉구한 이유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기저효과를 고려하더라도 인플레이션 위험이 커지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국제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올라 생기는 물가 상승은 기업실적 악화와 가계부담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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