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포르쉐 없어서 못판다" 주차장에 수입차 왜 많나 했더니

중앙일보

입력 2021.07.06 18:30

업데이트 2021.07.06 20:26

1억원대 수입 브랜드 전기차. 왼쪽부터 테슬라 모델 X, 재규어 I-페이스, 메르세데스-벤츠 EQC, 포르쉐 타이칸 4S. 사진 각 사

1억원대 수입 브랜드 전기차. 왼쪽부터 테슬라 모델 X, 재규어 I-페이스, 메르세데스-벤츠 EQC, 포르쉐 타이칸 4S. 사진 각 사

중견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김모(42)씨는 연초에 폴크스바겐의 제타를 구입했다. 10년 전 620만원에 마련한 아반떼XD 중고차를 처분하고 산 생애 첫 '수입차'였다. 국산 준중형 중고차에서 신형 수입차로 '점프 업' 했지만 비용 부담은 크지 않았다. 꼭 필요한 옵션만 넣은 가격은 2490만원, 국산 중형 쏘나타 신차 가격(2547만~3645만원)보다 저렴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가격과 연비 모두 만족스럽다"며 흐뭇해했다.

상반기 수입차 판매 추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상반기 수입차 판매 추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김 씨같은 40대들이 수입차 시장에 진입하면서 올해 상반기(1~6월) 수입차 판매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말까지는 수입차 30만대 시대가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최근 2~3년간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이 늘어난 부의 효과(wealth effect)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의 보복소비까지 겹친 결과라는 분석이다.

연말 수입차 30만 시대 열릴 듯  

6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상반기에 팔린 수입차는 14만7757대에 이른다. 이전 최고를 기록한 2018년 상반기(14만109대)보다 5% 증가한 수치다. 여기에 매년 하반기에 신차가 더 많이 팔리는 점을 고려하면 수입차 30만대 시대는 시간 문제다. 게다가  KAIDA 집계에는 회원사가 아닌 테슬라의 판매대수는 포함되지 않는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상반기에 테슬라 등록 대수는 1만1629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4% 증가했다.

전체 승용차 중 수입차 비중.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전체 승용차 중 수입차 비중.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테슬라는 연말까지 최대 2만5000대를 팔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자동차업계가 수입차 30만대 시대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이에 따라 국내 시장에서 수입차의 비중도 역대 최고를 기록 중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1~5월 판매된 국산 승용차는 51만2508대, 수입차는 12만8185대를가 팔려 전체에서 20%를 차지했다. 등록 신차 중 수입차 비중이 20%를 넘긴 건 처음이다.

2021년형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사진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2021년형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사진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자산 늘고 코로나 보복소비 겹쳐   

수입차 판매 증가에 대해 "호재가 겹쳤다"고 업계는 설명하고 있다. 먼저 자산이 늘며 소비가 늘어나는 부의 효과(wealth effect)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2~3년간 부동산·주식·코인 등 자산이 크게 올랐다. 이로 인한 '웰스 이펙트'가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저금리로 인해 '오토 리스' 프로그램도 이전보다 조건이 좋아졌다"고 했다.고 리서치센터장은 "MZ 세대를 중심으로 수입차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는 점, 그랜저·제네시스 등 국산 차의 가격 상승으로 수입차 가격이 상대적으로 크게 높지 않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수입차 시장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나 포르쉐 같은 고급 차종의 경우 "없어서 못 팔 정도"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벤츠는 사전 판매로 올해 한국에 들어올 물량이 이미 완판되다시피 했고, 포르쉐는 내년 2월까지 더 팔 물량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특히 1억원이 넘는 하이엔드(고급형) 차가 더 잘 팔리는 현상이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BMW 뉴 5시리즈. 사진 BMW

BMW 뉴 5시리즈. 사진 BMW

벤츠나 포르쉐는 없어서 못 팔아  

연령대별 수입차 구매 비중.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연령대별 수입차 구매 비중.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최근 수입차 선호현상을 40대 이상 연령층이 이끌고 있는 것도 특이점이다. 5~6년 전만해도 수입차 시장은 주로 20~30대가 주도했다. KAIDA에 따르면 올해 수입차 구매자 중 20·30대 비중은 22.3%로 5년 전인 2016년(29.6%)보다 7.3%포인트 낮아졌다. 반면 같은 기간 40대와 50·60대 구매자는 각각 1.9%포인트, 4.1%포인트 늘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5년 전엔 20·30 세대가 할부니 리스를 통해 수입차를 대거 구입했다. 이 때문에 '카 푸어(Car Poor)'라는 말도 나왔다"며 "하지만 최근엔 실제 재산이 있는 사람들이 고가의 고급·대형차를 사는 경향이 늘었다"고 말했다. 이는 국산·수입 차를 포함한 상반기 전체 신차 등록에서도 나타난다. 20·30의 신차 구매가 지난해보가 감소했지만 60대 이상에선 증가했다.

수입차 그중에서도 고급차 선호 현상에는 코로나19에 따른 '보복소비'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해외여행 등을 가지 못하면서 소비를 할 데가 마땅치 않자 고가 소비재인 차로 몰렸다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트렌드가 생활화하면서 자차 소유에 대한 욕구는 갈수록 늘고 있다"며 "야외 활동이 증가하면서 큰 차, 대형 SUV 선호 현상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獨 3사가 GM·르노·쌍차 3사보다 더 팔아 

현대차·기아를 제외한 외자계 3사(한국GM·르노삼성·쌍용차)의 판매 부진도 빼놓을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외자계 3사의 브랜드 입지가 흔들리며 차종·차급이 겹치는 현대차·기아도 가장 수혜를 봤지만 수입차한테도 상대적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일 기회가 됐다"며 "쌍용차가 주도했던 픽업트럭 시장에서 쉐보레·지프 등이 점유율을 늘리는 게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실제로 메르세데스-벤츠·BMW·아우디 독일 3사의 상반기 판매량이 8만9229대로, 외자계 3사 판매 대수(8만8625대)를 앞질렀다.

부의 효과에 따른 수입차의 급팽창에 우려도 나온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제 재산이 있는 사람의 경우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소비를 한다는 점에서 상관없지만, 아직 처분하지 않은 부동산·주식을 '자산 증식'으로 인식해 소비를 늘리는 경우 언제든 거품이 꺼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 소비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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