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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월성원전 수사 때문에 정치" 기소까지 250일 막전막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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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검찰총장을 관둔 것 자체가 월성원전 사건 처리와 직접 관련이 있습니다. 정치에 참여한 계기가 된 것 역시 월성원전 사건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61·사법연수원 23기) 전 검찰총장이 지난 5일 서울대를 찾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비판적인 주한규 원자핵공학과 교수를 만난 뒤 취재진에 한 말이다. 윤 전 총장은 “그 사건 처리에 대해 음으로 양으로 굉장한 압력이 들어왔다”며 여권을 직격했다. 다만, 그 ‘압력’은 윤 전 총장을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위로 올려놓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윤석열 “원전 사건 처리에 굉장한 압력”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이 지난 5일 오후 서울대 공대 앞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을 주도해 온 주한규 원자핵공학과 교수를 면담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이 지난 5일 오후 서울대 공대 앞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을 주도해 온 주한규 원자핵공학과 교수를 면담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월성원전 사건은 2018년 청와대와 정부가 월성원전 1호기의 경제성 평가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부당하게 조기 폐쇄를 끌어냈다는 게 골자다. 대전지검 형사5부가 지난달 30일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현 한국가스공사 사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업무방해 혐의로,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을 특정경제범죄법상 배임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하면서 일단락됐다.

사건의 발단은 2019년 9월 국회의 감사 요구로 시작된 감사원 감사였다. 감사원은 지난해 10월 22일 월성원전 조기 폐쇄와 관련해 경제성 평가에 문제가 있었다는 감사 결과를 토대로 대검찰청에 수사 참고자료를 전달했다. 여권은 감사 과정에서부터 대통령 공약 사항인 탈원전 정책을 건드린다는 이유로 들끓었다.

그 무렵 윤 전 총장은 전국 고·지검 순회 방문의 일환으로 지난해 10월 29일 대전고·지검을 방문했다. 대전지검은 국민의힘이 같은 달 22일 백 전 장관과 산업부 공무원 등을 고발한 곳이었다. 윤 전 총장 방문 일주일 뒤 산업부·한국가스공사·한수원 등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 수색이 이뤄지자 더불어민주당에선 “정치 수사이자 검찰권 남용”(이낙연 전 대표), “윤 총장 방문 뒤 압수수색이 과연 우연이냐”(김태년 전 원내대표)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檢 원전 수사에 여권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 

윤석열 검찰총장(오른쪽)이 지난해 10월 29일 오후 대전 지역 검사들과의 간담회를 위해 대전지방검찰청에 도착해 강남일 대전고검장(왼쪽·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이두봉 대전지검장(가운데·현 인천지검장)과 인사를 나눈 뒤 건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오른쪽)이 지난해 10월 29일 오후 대전 지역 검사들과의 간담회를 위해 대전지방검찰청에 도착해 강남일 대전고검장(왼쪽·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이두봉 대전지검장(가운데·현 인천지검장)과 인사를 나눈 뒤 건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전 총장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사건, 울산시장 선거개입 및 청와대 하명 수사 사건에 이어 또다시 현 정부를 겨누는 수사에 착수하자 여론이 먼저 반응했다.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해 11월 7~9일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윤 전 총장이 이재명 경기지사,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를 제치고 1위(24.7%)에 올랐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추미애 전 장관은 같은 달 11일 국회 예산결산특위에 출석해 “(윤 총장이) 그냥 사퇴하고 정치를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석열과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윤석열과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윤건영 민주당 의원)이라는 등 여권의 공세가 거칠어지자 대전지검은 “월성원전 수사는 원전 정책의 당부(當否·옳고 그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정책 집행과 감사 과정에서 공무원 등 관계자의 형사법 위반 여부에 관한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을 밀어내려는 법무부의 움직임은 노골화했다. 지난해 11월 16~19일 법무부 감찰담당관실 평검사 2명이 대검을 찾아 윤 전 총장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고, 대검은 “감찰 혐의도 밝히지 않고 소명 기회도 주지 않은 건 위법하다”며 맞서는 상황이 벌어졌다.

추 전 장관은 같은 달 24일 윤 전 총장에 대해 공식적으로 징계를 청구하고 직무집행을 정지했다. 이날은 대전지검이 감사 방해 혐의를 받는 산업부 공무원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고 대검에 보고한 날이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남국·신동근·김종민·김용민(왼쪽부터) 의원이 지난해 1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긴급 최고위원·법사위원 비공개 연석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남국·신동근·김종민·김용민(왼쪽부터) 의원이 지난해 1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긴급 최고위원·법사위원 비공개 연석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의 총장직무정지 효력정지 결정으로 일주일 만에 복귀한 윤 전 총장은 월성원전 수사 상황부터 보고받은 뒤 복귀 이튿날인 지난해 12월 2일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에 대한 감사방해 혐의 등 구속영장 청구를 승인(지난해 12월 4일 2명 발부, 1명 기각)했다.

그러자 같은 날 문재인 대통령은 윤 전 총장 직무복귀 뒤 사의를 표명한 고기영 전 법무부 차관의 후임으로 백 전 장관의 변호인이었던 이용구 변호사를 임명했고, 같은 달 16일 법무부 징계위가 윤 전 총장에 정직 2개월 처분을 의결하며 두 번째 직무정지가 이뤄졌다. 곧바로 문 대통령이 징계를 재가했지만, 윤 전 총장은 징계 취소 및 집행정지 신청 소송을 내면서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대전지검은 그달 23일 산업부 공무원 3명을 기소하는 등 수사 의지를 내비쳤다. 이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가 다음 날 징계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면서 윤 전 총장은 다시 직무에 복귀했다. 월성원전 수사 착수와 함께 절정에 이른 ‘추·윤 대전’이 윤 전 총장의 판정승으로 마무리된 셈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25일 당 최고위원·법사위원 긴급 대응회의를 열고 검찰개혁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결의를 다졌다. 닷새 뒤엔 추 전 장관의 사표가 수리됐다.

원전 수사 속도 내는 사이 ‘검수완박’법 잇달아

지난 2018년 3월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5당 대표 회동 당시 차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나란히 선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전 법무부 장관)와 박범계 당 수석대변인(현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지난 2018년 3월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5당 대표 회동 당시 차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나란히 선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전 법무부 장관)와 박범계 당 수석대변인(현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윤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감쌌지만, 윤 전 총장이 지휘하는 월성원전 수사엔 가속도가 붙었다. 같은 달 25일 대전지검이 백 전 장관을 소환조사 했고, 2월 4일엔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9일 기각됐다. 그 사이 검찰 고위간부 인사 과정에서 배제된 신현수 민정수석이 사의를 표명하는 ‘인사 파동’이 일었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박범계 장관의 단독 행동이 아니라, 원전 수사를 지켜보던 인사권자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란 해석이 나돌았다. 국회에서는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를 골자로 한 ‘검수완박’ 법안이 잇달아 발의됐다.

윤 전 총장이 사퇴를 결심한 때가 이 무렵이다. 일주일 뒤 언론 인터뷰를 통해 여권의 ‘검수완박’ 추진을 공개 비판한 그는 지난 3월 2일 마지막 순회 방문 일정으로 대구고·지검을 찾아 “검수완박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란 말을 남기곤 이틀 뒤 사퇴했다. 대전지검은 윤 전 총장이 떠난 대검에 백 전 장관, 채 전 비서관, 정 사장 등에 대한 기소 의견을 몇 차례 올렸지만, 승인을 받지 못했다.

2018년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를 조작해 조기 폐쇄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현 한국가스공사 사장),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왼쪽부터). 연합뉴스

2018년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를 조작해 조기 폐쇄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현 한국가스공사 사장),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왼쪽부터). 연합뉴스

김오수 검찰총장 취임 뒤에도 결재가 이뤄지지 않자, 대전지검은 지난달 24일 자체 부장검사회의를 열어 이들에 대한 기소 의견을 모아 대검에 전달했다. 결국 대검은 검찰 중간간부 인사 발령(지난 2일)으로 수사팀이 해체되기 이틀 전인 지난달 30일 기소를 승인했다. 윤 전 총장이 대선 출마 선언을 한 다음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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