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더 모닝'] 선거를 흔드는 수사, 달콤한 독약입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06 08:23

업데이트 2021.07.06 08:46

2002년 7월 서울지검 기자실에서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비리를 주장하고 있는 김대업씨. [중앙포토]

2002년 7월 서울지검 기자실에서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비리를 주장하고 있는 김대업씨. [중앙포토]

안녕하세요? 오늘은 수사기관이 선거에 개입한 어두운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도곡동 땅의 이상은씨 지분은 제3자의 차명 재산으로 보인다.” 2007년 8월 13일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브리핑에서 특유의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습니다. 노트북에 타이핑하던 기자들이 놀라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봤습니다. 저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제3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한 세 글자였습니다. 당시 논란이 된 도곡동 땅의 실제 주인이 이 전 대통령이라면 그가 BBK라는 회사에 투자한 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BBK에 돈을 댄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보인다’는 수사 결과 발표는 극히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차명 재산으로 확인됐다, 또는 차명재산임을 입증할 명확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 둘 중 하나가 검찰에 어울리는 수사 결과 발표입니다.

그 날은 한나라당이 대선 후보를 정하는 전당대회를 정확히 한 주 남겨놓은 날이었습니다. 몇 시간 뒤 이 전 대통령 측 국회의원들이 대검으로 몰려왔습니다. 의원들은 선거 개입을 중단하고 검찰총장이 사과하라고 소리쳤습니다. 늦은 밤까지 난리였습니다.

훗날 여러 검찰 간부로부터 ‘보인다’ 소동의 배경에 대해 들었습니다. 개요는 이렇습니다. 바로 전해 봄에 대검 중수부가 대기업의 비자금 사건을 수사할 때 이 전 대통령 관련 수사 단서를 포착했습니다. 서울시청이 그 대기업의 사옥 건설 과정에 특혜를 줬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내부 문서가 압수수색에서 나온것이었습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었습니다. 중수부가 검찰 수뇌부에 이를 보고했는데, 서울시청에 대한 수사는 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차기 대권 주자를 겨냥한 ‘정치 수사’라는 오해를 산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 뒤 1년쯤 지나 도곡동 땅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이번에는 ‘보인다’ 브리핑으로 이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일을 벌였습니다. 그게 공평한 처사라는 게 검찰 수뇌부의 입장이었습니다. 한번은 +, 한번은 -, 결국은 제로라는 이상한 논리입니다.

이렇게 검찰은 선거에서 ‘플레이어’ 역할을 했습니다. 수사 단서나 증거가 나오면 나오는 대로 수사를 하고, 증거가 없으면 없다고 하면 될 일인데 정치적 판단을 가지고 선거판에 개입했습니다.

2002년 대선 때는 서울지검이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 비리 수사로 선거를 흔들었습니다. 김대업씨가 이후보 부인에게서 2000만원을 받았다고 시인하는 병무청 관계자의 말이 녹음된 테이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 시작된 수사였습니다. 녹음테이프와 김씨 주장에 수상한 점이 많았는데도 특수1부장이 수사를 고집했습니다. 이 수사로 상처를 입은 이 후보는 대선에서 패배했습니다. 선거 뒤에 테이프는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김씨가 구속됐습니다. 그렇다고 대선을 다시 치를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흑역사가 검찰에 대한 불신을 키웠습니다. 지난 수년간 정치권력의 도륙으로 검찰이 만신창이가 돼도 편들어주는 국민이 별로 없게 만들었습니다.

검찰만 그런 게 아닙니다. 총선이나 지방선거에는 경찰이 판을 뒤흔드는 일이 나타납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청와대의 개입으로 경찰이 야당 울산시장 후보에 대한 표적 수사를 벌인 혐의로 청와대 비서관과 당시 울산경찰청장이었던 현직 국회의원이 기소된 상태입니다.

최근 경찰이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성남FC 축구단 후원 문제와 관련해 출석을 요구했습니다. 3년 전에 시작한 수사입니다. 그동안 뭘 하다가 지금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여러 건의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총장에 대한 서울중앙지검의 수사를 김오수 검찰총장이 지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어제 말했습니다. 서울중앙지검장은 박 장관의 고교 후배입니다. 이렇게 정치 수사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와 정부에 정치적 중립을 주문했습니다. 대통령 말의 무게감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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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정치의 계절, 청와대·정부는 중립 지켜야”
 문재인 대통령은 5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불법적인 대규모 집회 등 방역지침을 위반하는 집단행위에 대해 단호한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민주노총은 코로나19 확진자가 확연히 증가 추세로 돌아선 지난 1일 대규모 서울 도심 집회를 예고했다. 이에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아무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은 집회 이틀 뒤에야 나왔다. 그나마도 공개된 2200여 자의 발언 중 집회 관련은 한 문장에 불과했다. 민주노총을 지칭하지도 않아 ‘면피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오히려 문 대통령은 이날 자영업 영업 제한과 관련해 “강화된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위반시 즉시 영업을 정지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며 강력한 제재를 지시했다. 또한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 상황이 심각한 만큼 수도권 지자체들도 책임감을 가지고, 방역망이 뚫리지 않도록 총력 대응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며 책임을 서울시에 넘기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22일 국무회의에서는 10월 3일 ‘개천절 집회’를 예고한 보수단체를 겨냥해 “사회를 또다시 위험에 빠트린다면 어떤 관용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며 “공동체의 안녕을 위태롭게 하고 이웃의 삶을 무너뜨리는 반사회적 범죄를 ‘집회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옹호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당시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국회에 나와 집회 주동자를 “살인자”라고 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참모 회의에서 “경선 레이스가 시작되며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으나, 청와대나 정부는 철저히 정치 중립을 지키는 가운데 방역과 민생에 집중하라”고 말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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