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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출혈에 머리 깨져···계모한테 맞은 딸은 이미 딱딱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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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의 폭행으로 위중한 딸을 안고 구급차로 나오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사진 경남소방본부.

계모의 폭행으로 위중한 딸을 안고 구급차로 나오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사진 경남소방본부.

숨진 의붓딸이 남긴 신호 곳곳에 있었다

지난달 22일 오후 9시 30분 경남 남해군의 한 아파트. 계모 A씨(40대)가 의붓딸 B양(13·중학교 1학년)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덩치가 큰 A씨는 또래에 비해 왜소한 의붓딸을 손으로 밀고 발로 차거나 복부를 밟기도 했다.

[사건추적] #‘정인이법’ 첫 적용…남해 계모 살해의 재구성

2시간 가까이 계속된 폭행은 A씨가 화장실에서 의붓딸을 밀쳐 변기에 부딪힐 때까지 계속됐다. A씨는 경찰에서 “(의붓딸이) 몸에 힘이 빠지고 숨을 제대로 못 쉬자 때리는 것을 멈췄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경남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수사대가 밝혀낸 B양 사망 당시 폭행 상황이다. 경찰은 A씨가 폭행을 한 직후 의붓딸의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져 사망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즉시 구호 조처를 하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판단했다. 지난 3월 신설된 이른바 ‘정인이법’(상습학대 및 아동학대 살해혐의)'을 처음으로 적용한 이유다.

조사 결과 A씨는 안방으로 들어간 의붓딸이 불러도 대답이 없는 등 상태가 더 나빠진 것을 알면서도 조처를 하지 않았다. 폭행 직후 곧바로 119에 신고하거나, 병원으로 의붓딸을 옮기지 않고 오후 11시 30분에야 별거 중인 남편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A씨의 연락을 받은 남편이 집에 도착한 시각은 다음날 오전 2시 30분쯤이다. 남편은 경찰에서 “(도착하니) 이미 아이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러고도 두 사람은 실랑이 끝에 2시간이 지난 4시 16분쯤 119에 신고를 했다.

[진주=뉴시스] 정경규 기자 = 경남 남해군 고현면에서 여중생(13)을 때려 숨지게 한 계모가 25일 법원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위해 진주경찰서 유치장을 나와 복도를 걸어나오고 있다.2021.06.25. jkgyu@newsis.com

[진주=뉴시스] 정경규 기자 = 경남 남해군 고현면에서 여중생(13)을 때려 숨지게 한 계모가 25일 법원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위해 진주경찰서 유치장을 나와 복도를 걸어나오고 있다.2021.06.25. jkgyu@newsis.com

‘마지막 폭행’ 이혼서류 법원 접수한 날

A씨가 의붓딸을 마지막으로 폭행한 시점은 남편과 이혼서류를 법원에 접수했던 것과 같은 날이다. 이후 오후 9시쯤 자녀 양육 문제로 남편과 전화로 크게 다투었고 그 직후 의붓딸에 대한 폭행이 시작됐다는 것이 경찰 조사 내용이다. 경찰은 5일 “중학생인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A씨를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A씨는 현 남편과 7~8년 전쯤 결혼한 뒤 올해 3월부터 별거에 들어갔다. 경찰은 지난 여름부터 A씨가 의붓딸을 폭행하기 시작했고, 별거에 들어간 뒤 폭행이 심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의붓딸은 오랫동안 계모의 학대를 당하면서도 이를 알리지 못하고 견디다 결국 죽음에 이르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곳곳에서 학대 징후가 포착됐지만, 우리 사회 시스템은 그걸 발견해 내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의붓딸은 ‘또 다른 정인이’가 돼 우리 곁을 떠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앙일보는 의붓딸이 보낸 ‘SOS(구조신호)’가 어떤 것이 있었는지, 왜 중학생인데도 학대 사실을 말하지 못했는지 그 내면 심리를 경찰 조사 결과와 전문가 분석을 토대로 다시 되짚어봤다.

(진주=뉴스1) 한송학 기자 = 경남 남해에서 중학생 의붓딸을 폭행해 숨지게 한 계모가 25일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진주경찰서를 빠져 나가고 있다. 2021.6.25/뉴스1

(진주=뉴스1) 한송학 기자 = 경남 남해에서 중학생 의붓딸을 폭행해 숨지게 한 계모가 25일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진주경찰서를 빠져 나가고 있다. 2021.6.25/뉴스1

숨진 B양 5월부터 지속적으로 "SOS"

의붓딸이 가장 직접 보낸 SOS는 지난 5월쯤이었다. 계모로부터 폭행을 당한 5월 중순 의붓딸은 갑자기 도망치듯 친척 집으로 갔다. 거기서 친척에게 “(계모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취지로 말했다. 계모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고 직접 말하지는 않아 친척은 단순히 어리광 정도로 여겨 계모가 다시 의붓딸을 데려갔다. 돌아와서 의붓딸은 또 계모에게 맞았다.

의붓딸은 이전에도 가출을 한 적이 있었다. 지난 4월 16일 오후 8시 32분이었다. 계모가 경찰에 “딸 아이가 집을 나가서 연락되지 않고 있다”는 가출 신고를 했다. 의붓딸은 9시 50분쯤 인근 아파트 옥상에서 발견됐지만, 행적이 이상했다. “친구들과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고, 거기서 놀다 잠이 들었다”고 했지만, 그 친구가 누군지, 왜 옥상으로 가 잠이 들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답변을 못 했다.

경찰은 멍 자국 등 이상 증상이 없고, “부모로부터 맞았다”는 진술도 없어 의붓딸을 그냥 집으로 돌려보냈다. 당시 의붓딸을 면담했던 경찰은 “이상한 느낌은 있었지만, 학대 의혹은 의붓딸이 여러 차례 부인해 되돌려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의붓딸이 죽기 며칠 전에는 계모가 밀어 문에 부딪히며 머리가 찢어지는 폭행을 당했다. 그러나 계모는 반창고만 머리에 붙여줬다. 경찰이 병원 진료 기록과 학교 출결 상황 등을 파악한 뒤 계모를 추궁해 실토받은 폭행만 지난해 여름부터 최근까지 모두 4건이다.

의붓딸이 이렇게 장기간 계모로부터 폭행을 당했지만, 학교 등은 까맣게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학교 측은 “무단결석도 없고, 학교에서 실시한 정서·행동특성검사에서도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고 했다. 체격은 왜소했지만, 평소 원만한 교우관계를 보이는 등 학대 피해에 대한 의심 징후는 없었다는 취지의 말이다.

계모가 지난달 25일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진주경찰서를 빠져 나가고 있는 모습. 뉴스1

계모가 지난달 25일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진주경찰서를 빠져 나가고 있는 모습. 뉴스1

경찰, 남해 계모 살해 혐의 검찰 송치 

경찰 조사 결과는 학교 측의 입장과는 달랐다. 친구들이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친구들은 경찰에서 “(B양이) 평소 몸이 안 좋아 자주 엎드려 있었고 얼굴이 창백해서 걱정을 많이 했다”고 했다. 또래보다 아주 왜소하고 평소에도 몸 상태가 안 좋은 것을 친구들은 알았는데 학교는 왜 이상징후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의문으로 남는 대목이다.

특히 B양은 올해 3월 입학 후 7일간 결석을 했고, 6월에만 4차례 병 관련 조퇴를 했다. 정서·행동 특성검사에서도 상식밖의 낮은 점수가 나왔는데도 “전혀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게 학교 관계자의 말이다.

6월 초에는 장염 증세로 병원에도 갔다. 의붓딸의 사인을 조사한 부검의는 “외부 충격에 의한 장기손상”을 사인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5월쯤에 장기출혈이 있었던 흔적이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계모로부터 “5월 중순에 배를 밟는 등 폭행을 했다”는 진술을 받았지만, 의붓딸이 6월 초에 병원에 간 것이 이 때문인지는 아직 확인을 못 했다. 계모는 “사건 발생 얼마 전 의붓딸을 씻기면서 배가 부풀어 있는 것을 봤다”는 진술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아이가 계모로부터 오랫동안 폭행을 당하면서도 그 사실을 남들에게 숨기고 싶어 혼자 괴로움을 삭인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동들은 학대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도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고, 아니면 집이 아닌 다른 시설로 가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폭행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견디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학교 등 사회가 아동학대에 대해 더욱 민감해져야 이런 위기 아동들을 제때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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