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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위적 80%가 부른 끝없는 지원금 불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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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인 가구면 자취하면서 월세 사는 사람들도 꽤 있을 텐데, 단지 연봉 때문에 제외되는 게 황당하네요. 결국 혼자 사는 1인이 내는 그 많은 세금으로 저소득층 혜택만 더 주는 꼴이네요.”

맞벌이 이어 1인가구도 형평 논란 #“자취하는데 연봉 기준 제외 황당” #여당, 이번주 재난지원금 보완 논의 #지난해처럼 또 기준 바뀔 가능성 #재난지원금 잣대 혼선 이어져 #“여당은 선거, 정부는 부양 염두 #지원금 원칙과 기준 흔들려”

소득 하위 80%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의 재난지원금(국민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4일 한 친여(親與) 성향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이 글에는 “수백억 부잣집 아들이 알바하면서 최소 수입으로 살아도 지원금을 받는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결정한 5차 재난지원금을 두고 형평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론 수렴이나 정교한 분석작업 없이 작위적으로 기준선을 정하는 바람에 불필요한 사회 갈등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지원금 대상 가를 소득 하위 80% 기준은.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국민지원금 대상 가를 소득 하위 80% 기준은.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5일 범정부 태스크포스(TF)에 따르면 소득 하위 80% ‘컷오프’ 기준은 건보료 직장 가입자를 기준으로 따지면 세전 월 소득으로 ▶1인 가구 329만원 ▶2인 가구 556만원 ▶3인 가구 717만원 ▶4인 가구 878만원 ▶5인 가구 1036만원 ▶6인 가구 1193만원 등이 검토되고 있다.

문제는 소득 하위 80%의 경계 선상에서는 소득 몇원이 많다는 이유로 지급 대상에서 배제(컷오프)될 수 있다는 점이다. 4인 가구라면 100만원의 지원금을 못 받는 셈이다. 소득 하위 80.1%는 한 푼도 받지 못하면서 지원금을 받는 하위 80%가 하위 80.1%보다 연 소득이 높아지는 ‘소득 역전’ 현상이 벌어진다.

당장 자산이 적은 맞벌이 부부, 아이가 없는 부부의 반발이 나온다. 개인이 아닌 가구당 소득, 가구원 수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녀 한 명을 두고 각자 연봉 4300만원을 약간 넘게 버는 맞벌이 부부는 이번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당정은 맞벌이 가구의 경우 일반가구에 비해 높은 소득 기준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재난지원금에 대한 반발이 가장 큰 대상은 1인 가구다. 1인 가구에는 빈곤 노인이나 저소득 청년 가구가 많아 지급 기준인 중위소득이 낮다. 혼자 사는 대기업 사원은 지급 대상에서 빠질 가능성이 크다. 지원금을 받아도 불만이 크다. 지난해 지급한 1차 긴급재난지원금(40만원)보다 금액이 15만원 줄어들었다는 점에서다. 4인 가족은 100만원으로 지난해와 같다.

주식·회원권·자동차 … 자산·소득 파악 어떻게 할지도 문제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득 하위 80%를 선별한 기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보니 경계선에 있는 가구의 혼선과 불만을 키우고 있다”며 “정교한 선별 기준을 다시 만들거나 전 국민에 보편지원한 뒤 과세를 통해 환수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형평성 논란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당정은 지급 경계선이 왜 80%여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밝히지 않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국민 세금을 최대한 합리적·효율적으로 사용하라는 국민 요구도 있어서 여러 협의를 거쳐 80%로 기준을 정했다”고 했다. 애초 민주당은 전 국민 지급을 요구했고, 기획재정부가 소득 하위 70% 선별 지급을 주장해 줄다리기를 벌이다 80% 선으로 절충한 것이다. 80%라는 기준이 과연 공정한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 중 하나다.

선별 잣대로 건강보험료를 택한 것도 그렇다. 정부는 행정비용을 아끼고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지만, 건보료 기준은 빈틈이 많다. 비싼 전·월세에 사는 사람이 지원 대상에 들 수 있다. 실현 소득이 바로 잡히지 않는 주식·채권, 각종 보험과 회원권, 자동차 등 자산은 어떻게 구분할지도 숙제다. 건보료 계산에서 소득만을 반영하는 ‘직장 가입자’와 달리 소득과 자산을 모두 반영하는 ‘지역 가입자’에게 불리한 부분도 적지 않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정부는 전 국민 복지제도와 고용보험을 내세우면서도 맞춤형 복지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소득·자산 파악 인프라는 미비한 채로 뒀다”며 “밑이 빠진 독(인프라)을 수리하지 않고 물(재정)만 부어대니 이런 혼란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지난해처럼 여론 눈치를 보다가 기준선이 바뀔 가능성도 제기된다. 여당은 이번 주로 예정된 정책 의원총회에서 재난지원금 보완 방안을 논의한다. 이날 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금처럼 하위 소득 80%로 할지, 조금 더 올려서 90%로 할지 다양한 논의가 나올 거라 예측한다”며 “90%까지 선별 지원 대상을 확대하더라도 ‘91%는 왜 안 되느냐’는 식의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당정은 다섯 차례에 걸쳐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했다. 매번 선별지원을 놓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형평성 논란을 불식시킬 합당한 근거를 내세우기보다는, 선거 표심을 의식하다 보니 ‘고무줄’ 지원금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정치권은 선거라는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고, 정부는 경기 부양과 소비 진작 등을 염두에 두다 보니 재난지원금의 원칙과 기준이 흔들린다”고 짚었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의 피해가 큰 하위 계층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사실상 국민 대다수를 대상으로 지급하는 것이기에 ‘선별’이라고 볼 수 없다”며 “특히 하반기에는 ‘보복 소비’에 인플레이션 걱정마저 나오는 상황에서 소비 진작을 이유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은 ‘정치적 목적’이라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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