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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떠나자 생긴 일···아프간軍 도망에 탈레반 '땅따먹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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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며 아프간 현지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투 의지를 상실한 아프간 정부군이 탈레반과 싸우기도 전에 항복하는 등 빠르게 통제력을 잃으면서다.

탈레반 전국 421곳 중 100곳 이상 장악 #정부군 도망에 저항 없이 무혈입성 #여성에 외출ㆍ노출 금지 샤리아 부활 #바이든 "구제하겠다" 했지만 불투명

지난달 2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헬만드주 미군기지에서 성조기가 내려지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2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헬만드주 미군기지에서 성조기가 내려지고 있다. [AP=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있었던 탈레반의 진군으로 북부 바다크샨 지방에서만 300명 이상의 아프간 정부군이 방어를 포기하고 이웃한 타지키스탄으로 도주했다고 전했다.

바다크샨에선 정치인과 관리들이 수도 카불로 대피하기 위해 서둘러 비행기에 오르는 장면이 TV로 방영됐으며, 아프간 현지에선 탈레반이 투항하는 아프간군을 환영하며 집으로 갈 경비를 제공하는 모습을 담은 선전 영상이 퍼지고 있다.

탈레반, 두 달 만에 아프간 4분의1 장악

지난 3월 탈레반 반군에 맞서는 아프가니스탄 민병대 대원들이 헬만드주 라쉬카르가시 외곽의 한 마을에서 탈레반과의 교전을 준비하고 있다. [라쉬카르가/AFP=연합뉴스]

지난 3월 탈레반 반군에 맞서는 아프가니스탄 민병대 대원들이 헬만드주 라쉬카르가시 외곽의 한 마을에서 탈레반과의 교전을 준비하고 있다. [라쉬카르가/AFP=연합뉴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정부군이 저항 세력에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탈레반은 지난 5월 1일 미군이 철군을 발표한 이후 약 두 달 만에 아프간 전체 지구 중 4분의 1을 이상을 점령했다.

지난 주말에만 아프간 421개 지구 중 15개가 추가로 탈레반 수중에 들어갔다. 대부분의 전력을 해외 지원에 의존하고 있었던 아프간 정부군은 현재 수도 인근 지역 방어에도 힘이 모자라다. 가디언은 “아직 지방 주요 도시들은 넘어가지 않은 상황이지만, 상당수가 탈레반 세력에 포위되어 있다”고 전했다. 현 상태라면 미 정보당국이 예측한 미군 철수 6개월 뒤보다 수개월 이상 빨리 탈레반의 점령 작업이 끝날 수 있다.

또 탈레반의 진군은 미군이 바그람 공군기지를 아프간군에 완전히 반환한 지난 2일을 기점으로 더욱 거세지고 있다. 바그람 기지는 한때 10만명이 넘는 미 장병이 주둔하며 아프간 내 핵심 군사 거점 역할을 해온 곳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바그람 공군기지 반환이 아프간 북·동·남부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해온 탈레반에게 모멘텀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남성 없이는 여성 외출 불가" 악습 부활

지난해 11월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한 교육센터에서 자살폭탄 공격이 발생해 18명이 사망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한 교육센터에서 자살폭탄 공격이 발생해 18명이 사망했다. [AFP=연합뉴스]

아프간 현지에선 탈레반 점령 지역이 미군의 개입 이전인 2001년 수준의 극단주의로 돌아가고 있다는 증언이 나온다. 가디언은 익명을 요구한 현지인들과의 통화를 통해 “여성들은 모든 조건을 다 갖춘 복장을 하여야 하며, 어떤 이유로도 남성 보호자 없이 외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1990년대에 그들이 행했던 악습을 대부분 부활시켰다”고 전했다.

탈레반은 지난 1996∼2001년 집권 당시 이슬람 샤리아(종교법)를 앞세워 음악·TV 등을 금지하고 여성에 대해서는 사회활동·외출·교육 등에도 제약을 가했다.

지난달 25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미국대사관 앞에서 시위하는 미군 협력 통역인들. [AP=연합뉴스]

지난달 25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미국대사관 앞에서 시위하는 미군 협력 통역인들. [AP=연합뉴스]

미군에 협조했던 통역사 등도 생명의 위협을 호소하는 중이다. 지난달 25일 아프간 수도 카불의 미 대사관 앞에선 아프간 통역인 등 수십 명의 시위가 있었다. 탈레반의 빠른 점령 등으로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통역사와 그 가족의 대피를 위한 미국 비자 발급이 여러 이유로 지연되거나 거부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미군에 협력했다가 위험에 처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특별이민비자(SIV)를 준다는 계획이지만, 통역 근무 기간이 짧다는 등의 이유로 SIV 발급이 취소되는 등 문제가 잇따른다. 전 통역인인 하시브 아흐마드 카이바르는 “(우리가 미군을 위해) 한 달을 일했든 10년을 일했던 탈레반에게는 그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며 “그들은 우리가 미군에 협력했다는 이유만으로 죽일 것”이라고 호소했다.

바이든 “행복한 일에 집중하자” 신경질적 반응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백악관에서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 회담에 앞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백악관에서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 회담에 앞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가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아프간과 미국의 파트너십은 끝나지 않았고 지속할 것”이라며 “우리는 여러분 곁에 머물 것이고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수단을 갖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는 “미군 협력자 등을 구제하겠다는 바이든의 계획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으며, 최근 아프간 현지 코로나19 유행 등으로 이를 위한 대면 심사 작업 등도 중단됐다”고 전했다.

지난 2일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동맹국과의 합리적인 철수 조치에 따라 일부 미군 병력은 9월에도 아프간에 남아있을 것”이라면서도 아프간 철군과 연관된 질문이 이어지자 “행복한 일(독립기념일 기념)에 집중하고 싶다. 더는 아프간 관련 질문에 대해 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 빈자리 중국‧인도 경쟁

서방 세계가 아프간에서 손을 떼기로 하면서 지역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중국과 인도는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더힌두 등 인도 언론과 외신을 종합하면 인도 정부 관계자는 최근 카타르 도하에서 탈레반 측과 은밀하게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인도 정부가 앙숙인 파키스탄과 밀접하다는 이유로 탈레반을 공식 외교 상대로 삼지 않아 왔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앞서 지난 5월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도 모하마드 하니프 아트마르 아프간 외무장관과 통화에서 “미국의 일방적인 철수로 아프간 정세가 불확실해졌다”며 “중국은 아프간 내부 협상을 위한 모든 편의를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4일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은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외국군이든 9월로 예정된 미군의 철군 시한을 넘긴다면 점령군으로 간주될 위험이 있다”며 “카타르 도하에서 맺은 합의에 반해 병력을 남길 경우 우리는 대응할 것이며, 최종 결정은 우리 지도부에 달려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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