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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자식" 두테르테 도발, 복싱영웅 파키아오 대선 나오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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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 영웅 매니 파키아오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을 저격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복싱 영웅 매니 파키아오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을 저격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필리핀의 복싱 영웅이자 현 집권 여당의 대표인 매니 파키아오(43)가 로드리고 두테르테(76) 현 대통령에 대한 공격에 나섰다. 현 정권은 부패할 대로 부패했다며 그 증거를 폭로하겠다고 예고했다. 한때 두테르테 대통령의 가장 친한 정치적 동지 중 한 명으로 꼽혔던 그가 '반(反)두테르테'를 공언하자 외신들은 내년 예정된 필리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염두에 둔 행보라고 분석했다.

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파키아오는 이날 브리핑에서 “100억 페소(약 2290억원) 상당의 코로나19 지원금의 행방이 묘연하다”고 주장했다. 지원금은 관련 애플리케이션에 가입한 사람에게만 지급되는데, 지급 대상자 180만명 중 50만명 정도만 앱을 다운 받았다는 게 요지다. 파키아오는 이 돈을 필리핀 정부가 부당하게 챙겼다고 주장했다. 파키아오는 관련 증거를 필리핀 상원 윤리위원회에 제출하겠다고 발표했다.

파키아오가 현 정권의 부정부패 폭로하겠다고 하자, 두테르테 대통령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로이터=연합뉴스

파키아오가 현 정권의 부정부패 폭로하겠다고 하자, 두테르테 대통령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일(현지시간) 파키아오가 부패 의혹을 처음 언급하자 두테르테 대통령은 그를 “더러운 자식”으로 욕했다. 그러자 본격적인 정면 승부에 나선 것이다. 파키아오는 “정부의 부정부패 증거를 대라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도전을 받아들였다”며 “이번 폭로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말했다. 필리핀 정부 대변인은 조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지난 2010년 정계에 입문한 파키아오는 그동안 두테르테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특히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약 사범 수천 명을 사살해 국제 사회로부터 비판을 받았을 때도 “마약은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게 하고 사회 질서를 혼란스럽게 한다”고 지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최근 두테르테의 친중 성향과 장기 집권 계획에 반기를 들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내년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겠다는 내심을 밝혀왔다. 로이터=연합뉴스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내년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겠다는 내심을 밝혀왔다. 로이터=연합뉴스

내년 5월 대선을 앞둔 두테르테 대통령의 셈법은 복잡하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필리핀 대통령 선거는 6년 단임제여서 재집권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두테르테 대통령은 측근을 대통령으로 세우고 자신은 부통령으로 출마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엔 “부통령 후보로 내몰리는 사람이 많다”고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파키아오가 이를 반대함에 따라 함께 손을 잡고 가기가 어려워졌다. 블룸버그는 ”파키아오가 두테르테의 후계 구도에 장애물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AFP 등은 파키아오가 곧 대선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지난 2일 “정치인이라면 모두 더 높은 자리를 꿈꿀 것”이라며 “적절한 시기에 앞으로의 움직임에 대해 말하겠다”고 말했다. 다음 달 21일 세계 복싱 웰터급 챔피언 경기에 출전하는 만큼, 그 직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 파키아오는 그동안 두테르테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3위 안에 들어왔다.

복싱 영웅 파키아오는 엄청난 인기를 바탕으로 대권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상위권을 유지했다. AP=연합뉴스

복싱 영웅 파키아오는 엄청난 인기를 바탕으로 대권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상위권을 유지했다. AP=연합뉴스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의 빈민가에 태어난 파키아오는 10대 때부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점상과 철공소 등에서 일했다. 마약과 절도 등 범죄에 빠지기도 했다. 16세에 프로 선수로 데뷔한 그는 세계 최초로 8체급을 석권해 큰 화제가 됐다. 성공한 뒤에도 가난한 시절을 떠올리며 빈민과 복싱 지망생을 꾸준히 후원했다.

2007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정계 진출을 시도했지만 낙선했다가 2010년 당선됐다. 지난해 말, 집권 여당인 ‘PDP라반(PDP-Laban)’의 대표로 선출된 이후 내년 대선에 출마할 것이란 전망이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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