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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치맥이 더 이상 최애음식이 아닌 이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48)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의 원인이 환경 파괴, 그로 인한 기후 변화와 무관치 않다는 말을 한다. 코로나19 발생으로 우왕좌왕하던 지난해 봄은 어땠는가? ‘우한에서 온 바이러스’라고 하면서 중국인은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아시아인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혐오의 대상으로 증오범죄의 표적이 됐다. 현재는 어떤가?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잘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어딘가 떠나지 못해, 사람을 만나 떠들고 웃으며 노래하지 못해 미쳐버릴 것 같은 심정으로 열심히 백신을 맞고 집단면역이 이뤄지길 고대하고 있다.

요즘 뉴스를 보고 있자니 알파변이, 델타변이 등 수많은 더 센 놈이 나타난다. 이 강력한 바이러스는 내가 맞는 백신으로 물리칠 수 있는 바이러스인가? 또 다른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마스크를 쓰고 살아야 하는가? 에볼라, 사스, 메르스 같은 감염병은 주기적으로 인간을 괴롭혔다. 그런데 이 감염병이 창궐했을 때 그 문제는 그저 뉴스 안의 일이었고, 내 문제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는 온전한 나의 문제로 내 일상을 흔들어 놓았다. 나는 이 지긋지긋한 팬데믹을 내 평생에, 아니 내 자녀들에게 다시는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다.

어떤 연구를 보니 무섭고 안타깝게도 이 감염병의 발생 주기가 점점 빨라질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가 열심히 집단면역을 만들어 내고 과거와 같은 일상생활에 복귀하는 것에 만족할 일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이 사태를 초래한 근본 원인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떤 방향성을 갖고 살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각종 감영병이 주기적으로 인간을 괴롭혀왔지만 내 문제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19는 내 일상을 완전히 흔들어 놓았다. [사진 pixabay]

그동안 각종 감영병이 주기적으로 인간을 괴롭혀왔지만 내 문제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19는 내 일상을 완전히 흔들어 놓았다. [사진 pixabay]

내가 자란 시골 군청 앞에는 근사한 기와지붕의 음식점이 있었다. ‘진미정’이라는 나무 간판이 대문 위에 당당히 걸려 있었고, 간판 아래 나무 대문에는 붓글씨로 ‘숯불갈비’라고 씌어 있는 메뉴가 크게 붙어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진미정’이라는 음식점 앞을 지나다녀야 했다. 하굣길에 때마다 그 음식점에서 새어 나오는 풍미는 환상적이었다. ‘진미정’의 숯불갈비 향기는 근사했지만 나는 부모님께 그곳에 가서 숯불갈비를 사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감히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어른이 되면 언젠가는 이곳에 와서 저 음식을 먹어볼 거라는 희망을 갖기도 했다. 그리고 그 바람이 이뤄진 것은 대학 입학을 앞두고 축하하는 자리였다. 아버지는 나와 가족을 진미정에 데리고 간 것이다. 그리고 내 생애 첫 숯불갈비의 맛은 나를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상상이 안 가는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내 어린 시절 고기반찬은 귀한 음식이었다. 입이 짧으신 아버지를 위해 엄마는 가끔 쇠고기 장조림을 해서 결대로 쪽쪽 찢어 종지에 담아 아버지 밥그릇 옆에 올렸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아닌 아버지의 반찬이란 표시다. 아버지가 내 수저에 장조림 한두 점을 올려놓으면 냅다 받아먹었지만, 용기 있게 그 작은 종지에서 음식을 가져다 먹지도 않았다. 그리고 왜 우리는 맘껏 못 먹게 하냐고 묻지도 않았다. 식탁에 고기반찬이 올라가는 날은 특별한 날뿐이었다. 집에 큰아버지 같은 손님이 오실 때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손님이 오면 엄마는 신문에 싼 쇠고기를 도마에 올려 조근조근 다지고 냄비에 전골을 끓여 술안주로 내어놓았다. 그때도 양이 조금 많을 때나 내 차지까지 왔다.

고기반찬은 아주 귀한 음식이었고, 그 당시까지도 한국인은 육식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시장과 마트에 가면 수북이 쌓여 있는 먹거리와 함께 육류도 다양하게 원산지·부위·등급별로 전시돼 있다. 거리에는 고깃집이 즐비하다. 한국인의 육식 소비량이 2008년 11.3㎏ 정도였다면 2018년에는 거의 5배가 증가한 53.9㎏이나 된다고 한다. 장조림 한입에 행복해하고, 길거리 숯불갈비 향기에 취해 성장한 나 또한 언제부턴가 고기는 일상의 음식이 됐다. 운동경기가 있는 날이면 치킨과 맥주는 기본이 됐고, 김장김치엔 당연히 수육이 등장하며, 동료들과 소주를 마실 때 삼겹살은 스페셜 음식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몇 해 전 ‘환경스페셜’이란 프로그램은 내가 즐기는 음식 중 하나였던 치킨에 찬물을 끼얹었다. 방송 내용은 이랬다. 양계장 닭은 A4용지보다 작은 케이지에 갇혀 평생 알만 낳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좁은 공간에서의 스트레스는 서로를 공격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부리도 잘림을 당했다. 이런 환경으로 각종 질병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질병 치료나 예방을 위해 사료에는 각종 항생제가 들어간다. 이것을 먹고 자란 닭이 먹이사슬로 내 식탁에 오르는 것이다.

닭은 정상적으로는 10년에서 30년까지 살 수 있는 동물이다. 그런데 양념·프라이드치킨이 되기 위해 30일 동안 키워져 도축된다는 내용이었다. 닭이 우리에게 양질의 단백질을 제공하기 위해 평생을 어떻게 살다가 인간의 식탁으로 오르게 되는지 닭의 불행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소와 돼지의 생명 또한 닭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더구나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로 살처분되는 생명체를 우리는 매년 보고 있다. 우리의 먹거리를 위해 동물이 대거 사육되면서 우리의 숲은 파괴돼 가고 이산화탄소는 점점 늘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먼 나라 아마존의 문제가 아닌, 내 삶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각심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때인 것이다.

한 프로그램에서 양계장 닭의 현실을 알게된 뒤부터 치맥은 더 이상 나의 최애 음식이 아니게 됐다. 하지만 이 매혹적인 유혹을 어떻게 끊어버릴 수 있을까? [사진 pixabay]

한 프로그램에서 양계장 닭의 현실을 알게된 뒤부터 치맥은 더 이상 나의 최애 음식이 아니게 됐다. 하지만 이 매혹적인 유혹을 어떻게 끊어버릴 수 있을까? [사진 pixabay]

그 이후 치맥은 이제 더 이상 나의 최애 음식이 아니게 됐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두 모였다. 온 가족이 모여 기분이 좋은 남편은 “우리 오랜만에 다 모였으니 외식할까?”라고 한다. 그럼 뭘 먹을까? 많은 경우 우리 가족의 선택은 ‘고기’다. 북한산이 병풍처럼 보이는 산 아래 야외에서 숯불에 구운 양념 고기와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와 흰쌀밥, 거기에 시원한 입가심 물냉면까지 후회 없이 즐기고 귀가한다. 이 매혹적인 유혹을 어떻게 끊어버릴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가족들에게 말을 한다. “아, 엄마 진짜 비건이 돼 볼까 하고 고민 중이야!” 차에 있던 3명의 가족은 동시에 ‘노’를 외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엄마가 그래서는 안 되는 이유를 제시한다. 사실 나 자신도 아직 자신이 없다. 언젠가 어떤 계기로 이 맘을 굳힐지, 아니면 평생을 지금같이 살아갈지….

우리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된다 해서 모든 환경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환경파괴, 기후문제는 인권의 문제다. 환경파괴로 인한 새로운 팬데믹은 결국 더 취약한 사람을 가장 빨리 공격하고, 불평등의 심화를 빚어낼 것이다. 코로나 19 상황을 마주하면서 환경과 기후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비해야 하는가가 가장 큰 교훈이자 숙제로 남겨졌다.

지긋지긋한 팬데믹을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소망은 마스크 잘 쓰기 같은 방역수칙을 잘 지켜내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를 막아내는 것일 텐테, 그러면 끝나는 것인가? 아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정책적 접근과 감시, 환경윤리 실천이 곧 나의 생명과 안전의 인권 문제에 맞닿아 있다는, 각성한 시민으로서의 적극적 행동과 실천만이 우리를 또다시 고통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낼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기 위해 나 개인은 어떤 실천을 할 것인가? 조금 더 불편해지고 조금 더 내 욕구를 내려놓을 수 있는 행동이 요구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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