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앨리스·도로시…잘 아는 동화에 상상력 더해 입체적으로 풀어내면 터널북 완성

중앙일보

입력 2021.07.05 09:00

앨리스·도로시…잘 아는 동화에 상상력 더해 입체적으로 풀어내면 터널북 완성 

송윤서(왼쪽) 학생기자와 연규원 학생모델이 몽솔레문화예술체험센터에서 터널북 키트로 나만의 동화책 만들기에 도전했다.

송윤서(왼쪽) 학생기자와 연규원 학생모델이 몽솔레문화예술체험센터에서 터널북 키트로 나만의 동화책 만들기에 도전했다.

우리나라에서 북아트(book art)란 일반적으로 책에 창의적 요소를 더해 예술적으로 꾸미는 일을 말해요. 책과 미술의 결합인 거죠. 지그재그로 접어 펼치는 아코디언 북(병풍책)부터 책장을 열면 장면이 묘사된 그림이 입체적으로 튀어나오는 팝업북까지 북아트의 범위는 넓고 다양해요. 중앙에 구멍을 낸 여러 장의 내지를 이어붙인 뒤 겹쳐서 동굴 형태로 만든 터널북(tunnel book)도 북아트에 속해요. 원근감이 있어 입체적인 장면 구성을 보여줄 수 있죠. 여기에 내가 만든 이야기를 넣어 세상에서 하나뿐인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송윤서 학생기자와 연규원 학생모델이 경기도 파주출판도시 몽솔레문화예술체험센터를 찾았어요. 이미지와 이야기를 활용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이곳에선 장은주 기획실장이 기다리고 있었죠.

 장은주 기획실장이 소중 학생기자단에 터널북 키트 활용법과 이야기의 구성 요소인 인물·사건·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장은주 기획실장이 소중 학생기자단에 터널북 키트 활용법과 이야기의 구성 요소인 인물·사건·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터널 북을 만들려면 어떤 도구가 필요한가요?" 규원 학생모델이 물었어요. "중앙에 구멍이 난 내지 여러 장과 그걸 이어붙일 접착제, 내지에 붙일 그림들, 책 표지, 글쓰기·채색용 필기구 등이죠. 저희는 청소년이 터널북을 좀 더 간편하게 접했으면 해서 키트로 만들었어요." 장 실장이 책상 위를 가리켰습니다. 『어린 왕자』『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오즈의 마법사』 등 여러 고전 동화책 삽화로 만든 그림 딱지를 비롯해 여러 도구가 눈에 들어왔죠. "오늘은 여러분이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의 인물과 이미지를 활용해 여러분만의 동화를 만들 거예요. 먼저 이야기의 뼈대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배워봅시다." 이야기의 주요 구성 요소는 크게 극을 이끄는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 이들에게 발생하는 사건, 사건이 펼쳐지는 시간·장소인 배경으로 나뉘어요. 루이스 캐롤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예로 들어봅시다. 앨리스는 어느 날 오후 회중시계를 든 토끼를 따라 굴 속으로 들어간 뒤, 이상한 나라에서 체셔 고양이와 하트 여왕 등을 만나죠. 여기서 어느 날 오후(시간)와 이상한 나라(장소)는 배경이며, 앨리스는 인물, 그가 이상한 나라에서 겪은 일들은 사건에 해당해요.

 터널북 동화책 만들기는 인문학적 상상력과 조형 감각을 함께 기를 수 있는 창작 활동이다.

터널북 동화책 만들기는 인문학적 상상력과 조형 감각을 함께 기를 수 있는 창작 활동이다.

인물·사건·배경이 대략 정해졌으면 이들을 어떻게 활용할지 정해야 하죠. 모든 이야기에는 주제가 있습니다.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작가의 의도대로 원인과 결과를 고려해 짜임새 있게 사건을 배열하는 것을 우리말로는 구성, 영어로는 플롯(plot)이라고 해요. 주인공이 어떤 일을 극복하면서 성장하는 서사, 중요한 것을 상실한 주인공이 직접 복수에 나서는 서사, 도망치는 누군가를 쫓는 주인공의 서사, 주인공들의 몸이 바뀌는 서사 등은 이미 각종 영화·드라마·소설·만화 등에서 접한 적 있을 겁니다. 이들은 오랜 시간 다양한 이야기 플랫폼에서 창작자에게 사랑받아온 플롯이니까요. 하나의 이야기는 다양한 플롯이 섞인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경우 주인공들의 몸이 바뀌는 플롯과 서로의 존재에 대한 비밀을 추적해나가는 플롯이 섞여있죠. "지금까지 배운 플롯의 종류를 활용해 『어린 왕자』『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오즈의 마법사』 등 고전 동화를 여러분의 방식대로 재탄생 시켜 보세요. 일단 인물·사건·배경을 구체적으로 정해야겠죠. 원작대로 전개할 수도 있지만, 여러분의 마음대로 변경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림 딱지를 구상한 이야기의 흐름에 맞게 내지에 배열하면 됩니다. 이야기에서 중요한 요소가 앞 페이지에 오도록 하고, 배경에 해당하는 부분은 뒤 페이지에 붙여주세요. '나는 글을 쓰는 게 시간이 좀 걸린다' 싶으면 그림 딱지를 먼저 붙이면서 이야기를 상상해도 되고요. 제가 학교에서 여러분 또래 학생들과 터널북 만들기를 함께 진행하기도 하는데 가만 보면 글을 먼저 쓰는 게 편한 학생이 있고, 그림 딱지를 먼저 붙이는 게 편한 학생도 있더라고요. 원하는 대로 상상력을 발휘하세요. 만드는 순서에 정답은 없답니다."(장)

 소중 학생기자단의 터널북 동화책 만들기 체험을 지도한 장은주 몽솔레문화예술체험센터 기획실장.

소중 학생기자단의 터널북 동화책 만들기 체험을 지도한 장은주 몽솔레문화예술체험센터 기획실장.

윤서 학생기자와 규원 학생모델은 평소에도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요. '소년중앙'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소설을 연재하기도 했죠.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익숙한 동화를 새롭게 재해석하는 건 이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닌지 터널북 키트를 앞에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어요.『어린 왕자』『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인물과 배경이 담긴 그림 딱지를 한참 살피던 윤서 학생기자가 먼저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나무 괴물을 터널북 내지 맨 앞 장에 붙이기 시작했어요. 원작에서는 주인공 도로시 일행을 공격하는 존재죠. 윤서 학생기자는 나무 괴물을 어떻게 활용할까요. 규원 학생모델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주인공 앨리스의 뒷모습과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마녀를 맨 앞 장에 양면테이프로 부착했어요. 규원 학생모델이 쓸 이야기의 주인공이 정해진 거죠. 두 사람 모두 두 가지 작품을 섞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 작정인가 봅니다. "자신감 있게 붙이는 거 보니 다 생각한 게 있나 보네요."(장) "일단 그냥 붙이고 전개는 나중에 생각하려고요."(송) "하하. 그래요. 익숙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상상을 해보는 게 이 체험의 목적이에요. 동일한 동화가 모티브여도 한 번도 똑같은 이야기가 나온 적이 없어요. 동화책을 읽지 않은 친구들은 아예 등장인물들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기도 하죠."(장)

그림 딱지들이 4장의 내지에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자 터널북도 점차 형태를 갖춥니다. 윤서 학생기자의 내지에는 『오즈의 마법사』 나무 괴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하트 여왕 등이 보이네요. 규원 학생모델은『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앨리스의 뒷모습과 회중시계를 든 토끼, 체셔 고양이와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마녀·도로시 그림 딱지가 붙여 내지 구성을 마쳤죠. 바로 표지 뒷면 양옆 페이지에 글을 적어 내려간 윤서 학생기자와 규원 학생모델은 30여 분의 시간이 흐르자 각자 1100자, 1400자 분량의 이야기를 완성했죠. "역시 글을 즐겨 쓰는 학생들이라 그런지 전개력이 남다르네요. 이제 그림 딱지가 붙은 내지와 여러분의 이야기가 적힌 표지를 양면테이프로 잘 부착하면 터널북 동화책 만들기가 끝나요. 표지 앞에는 제목을 써주고요."(장)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는 전개 때문에 때로는 허공을 바라보며, 때로는 맞은 편에 앉은 서로가 고심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창작열을 불태운 소중 학생기자단. 과연 어떤 이야기가 탄생했을까요.

 송윤서 학생기자의 동화책 『앨리스, 그리고 삶』의 제작 과정. 모티브로 삼을 이야기를 참고해 인물·사건·배경을 설정한 후, 그림 딱지를 전개에서 중요한 순서대로 내지 앞면부터 붙인다. 그리고 표지 뒷면에 구상한 이야기를 적으면 된다.

송윤서 학생기자의 동화책 『앨리스, 그리고 삶』의 제작 과정. 모티브로 삼을 이야기를 참고해 인물·사건·배경을 설정한 후, 그림 딱지를 전개에서 중요한 순서대로 내지 앞면부터 붙인다. 그리고 표지 뒷면에 구상한 이야기를 적으면 된다.

윤서 학생기자가 쓴 이야기의 제목은 『앨리스, 그리고 삶』이에요. 원작에서 도로시 일행을 공격하던 나무 괴물이 마법의 나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해 주인공이 됐죠. 왕관을 잃어버린 하트 여왕이 그에게 불호령을 내리자 두려움에 떨던 마법의 나무는 지나가던 앨리스를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하죠. 이에 앨리스가 반발하자 마법의 나무는 어두운 숲속에서 방랑자들을 겁주는 일에 한평생을 보낸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데요. 그가 깨달은 인생의 의미가 악행을 일삼던 하트 여왕까지 감화시킨다는 내용입니다. 부조리한 현실에 순응해 살던 마법의 나무가 앨리스와의 만남을 계기로 다른 삶을 살게 됐다는 의미가 담긴 제목이었네요. "취재 전날 읽은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에 인생의 의미에 대한 내용이 나와서 영감을 받았죠. 그림 딱지를 예쁘게 붙이고 거기에 맞춰 만들었는데 막상 전개하려니 좀 어려웠어요.『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오즈의 마법사』는 모험담에 가까운데 저는 삶에 대한 생각을 담고 싶었어요." 윤서 학생기자의 글을 읽은 규원 학생모델이 "굉장히 철학적이네요"라고 말했죠.

 연규원 학생모델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오즈의 마법사』 삽화로 만든 그림 딱지로 꾸민 터널북 내지.

연규원 학생모델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오즈의 마법사』 삽화로 만든 그림 딱지로 꾸민 터널북 내지.

규원 학생모델의 이야기에는 『오즈의 마법사』의 마녀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인공 앨리스와 모녀 관계로 등장해요. 오즈의 나라에서 오손도손 즐겁게 살던 이들의 일상은 어느 날 앨리스가 실수로 마법 약을 뒤집어 쓴 뒤 도로시로 몸이 변하면서 붕괴됐어요. 딸이 변한 모습이 충격받은 마녀는 앨리스의 기억을 지우고 대신 도로시의 기억을 주입했죠. 10년 뒤 이 사실을 알게 된 앨리스는 충격을 받아 가출하는데, 연쇄 살인마인 체셔 고양이에게 현혹될 뻔합니다. 그걸 본 토끼가 앨리스의 목숨을 가까스로 구하죠. 이후 우연히 도로시의 조부모님이 앨리스를 발견하고는 그가 자신의 잃어버린 손녀딸이라고 생각해 캔자스에서 함께 살게 됩니다. "저도 그림 딱지를 먼저 붙인 다음에 떠오르는 대로 썼어요. 너무 '막장'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하하. 글을 쓰다가 캐릭터들의 성격이 붕괴돼서 제가 의도했던 것과는 좀 다른 성격이 나왔어요. 살인마가 되어버린 체셔 고양이처럼."(연) "읽다 보니 흥미진진했어요."(송) 익숙한 동화 속 주인공들이 소중 학생기자단의 통통 튀는 상상력과 만나니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됐네요. 인문학적 상상력과 조형 감각을 기를 수 있는 터널북 만들기, 한 번 도전해볼까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동화책이 탄생한답니다.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이번 취재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저에게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나만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오밀조밀하게 꾸며 완성된 터널북을 보니 뿌듯함을 느꼈죠. 처음에는 이야기 구성이 조금 막막하고 힘들었지만, 글이 점차 모양새를 잡아가고 살이 붙으며 저만의 독특한 책이 탄생했어요. 보통 제 주변의 친구들은 빽빽한 글만 보면 진저리를 내기도 하는데, 그런 친구들에게 터널북 만들기를 추천하고 싶어요. 상상력과 더불어 예술 감각을 자극할 수 있는 활동인 것 같아요.

송윤서(경기도 서정중 1) 학생기자

예전에 볼로냐 라가치상 전시회에서 터널북을 처음 보았을 때 굉장히 신기했어요. 책처럼 보이기도 하고 작은 연극 무대처럼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터널 북에 대한 궁금증도 많았습니다. 나만의 터널북을 다 만들자 정말로 뿌듯했어요. 원하는 그림 딱지를 붙이고 기존 동화의 틀을 깨서 나만의 이야기를 창조해내는 재미가 있었죠. 취재가 끝난 뒤에는 더 많은 다른 나라의 터널북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직은 터널북이 국내에서 대중적이지 않다고 들었는데 언젠가 더 많은 터널북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릴래요.

연규원(서울 언남초 6) 학생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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