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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더 모닝'] 왜 80%대 20%인 거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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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재난지원급 지급 계획을 짠 홍남기 경제 부총리. [뉴스1]

5차 재난지원급 지급 계획을 짠 홍남기 경제 부총리. [뉴스1]

안녕하세요? 오늘은 소득 상위 20%는 배제되는 5차 재난지원금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ㆍ20%의 범죄자가 80%의 범죄를 저지른다.
ㆍ업무성과의 80%는 집중력을 발휘하는 20%의 시간에서 나온다.
ㆍ가장 잘 팔리는 제품 상위 20%가 매출의 80%를 차지한다.
ㆍ부유한 시민 20%가 국부의 80%를 차지한다.
ㆍ20%의 인재가 문제의 80%를 해결한다.

퀴즈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 '파레토의 법칙' 을 적용한 예시입니다. 스위스에서 활동한 이탈리아 학자 빌프레도 파레토는 시민 20%가 80%의 토지를 소유한 것과 다른 자연 현상의 유사성을 발견했습니다. 20%의 실한 콩깍지에서 콩 소출의 80%가 나오는 것 등이 그런 예로 제시됩니다. 파레토의 법칙이라는 말을 만들어 경영 전략에 접목한 이는 조셉 주란이라는 컨설턴트입니다.

학문적 엄밀성을 가진 이론은 아닙니다. 정확한 통계로 뒷받침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정도입니다. 20%가 80%의 부를 차지하니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도, 똑똑한 20%가 80%의 사회적 생산을 책임지니 그만큼의 사회적 보상이 마땅하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현실에선 경제적 불평등을 지적하는 데 쓰이기도 하고, 소수가 사회를 이끌어간다는 엘리트주의의 근거로 차용되기도 합니다.

공교롭게도 5차 재난지원금도 80%대 20%입니다. 소득 상위 20%에게는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결정권자가 20%는 여유가 있으니 양보해도 된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비판론자 중에는 상위 20%가 소득세의 80% 이상(정확히는 89%)을 내기 때문에 결국 20% 돈으로 80%에게 생색내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상위 20%를 배제하면 웬만한 대기업 부장급 이상의 가족은 열외입니다. 1인 가구 경우는 중견기업 과장급만 돼도 제외 대상입니다. 남들 받는 것 구경만 하는 것에 기분 상하지 않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투덜거리면 인색한 사람으로 보이기에 십상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아무리 그래도 국가가 하는 일인데 왜 이런 경계선이 생겼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칙이 궁금합니다. 홍남기 경제 부총리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국민 세금을 최대한 합리적, 효율적으로 사용하라는 국민 요구도 있어서 여러 협의를 거쳐 80%로 기준을 정했습니다.” 그냥 여당과 정부가 의논해서 결정했으니 그리 알라는 거네요.

기획재정부는 70%를 주장했습니다. 여당 측은 90%를 말했습니다(100% 보편 지급을 주장한 정치인도 있습니다). 그 중간쯤에서 절충이 된 듯합니다. 4인 가족에게 최소 100만원은 지급해야겠고, 추가 예산 마련은 30조원을 크게 넘기기는 어려우니 80%로 선이 그어진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산수인데 왜 고시 합격한 사람들이 기재부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무원칙은 더 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피해 본 국민에게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 것, 특히 영업 손실을 감수하며 방역에 협조한 자영업자들에게 똑바로 보상하지 않는 게 그것입니다. 80% 안에는 코로나19 확산 전보다 오히려 소득이 늘어난 사람도 많습니다. 온라인 서비스 관련 업체 쪽은 최근 임금이 대폭 올랐습니다. 딱히 손해를 본 게 없는 사람도 많습니다. 공무원이 그렇습니다.

배제된 20%는 뭘까요? 여당이 선거에서 자기네 편에 표를 주지 않을 사람들이라고 본 것 같습니다. 이리 하나 저리 하나 정권 재창출에 보탬이 되지 않을 계층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듯합니다.

그런데요, 나라를 이렇게 운영해도 되는 건가요? 정부와 여당에도 이 80%대 20%에 문제 의식을 가진 이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됐습니다. '막무가내' 20%가 정책의 80%를 좌우하나 봅니다. 파레토의 법칙이 맞는다면 우수한 20%가 나라를 이끌어야 하는데 이상합니다. 멀쩡한 이들이 쫓겨났거나 주변으로 밀려나서 그런 것 같습니다. 법칙은 원래 주변 변수가 정상적이어야 들어맞습니다.

5차 재난지원금 지급 기준을 자세히 살핀 기사를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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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억 집 있거나 금융소득 2000만원 땐 지원금 못받을 듯

 소득 하위 80% 가구에 지급하는 5차 재난지원금(국민지원금)의 지급 기준으로 4인 가구의 경우 월 소득 878만원(세전 기준) 선이 거론되고 있다. 또 시세 20억원 이상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은 지원 대상에서 배제(컷오프)하는 안이 유력하다. 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일 기재부·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 등이 참여하는 정부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이런 내용의 지급 방안을 논의 중이다.

TF에 따르면 국민지원금 지급 기준선인 소득 하위 80%를 가르는 명확한 ‘컷오프’ 기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올해 기준 중위소득(전체 가구의 소득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정확히 가운데를 차지한 가구의 소득)의 180%로 잡는 방안을 최우선으로 검토하고 있다.

건보료 직장 가입자를 기준으로 따지면 세전 월 소득으로 ▶1인 가구 329만원 ▶2인 가구 556만원 ▶3인 가구 717만원 ▶4인 가구 878만원 ▶5인 가구 1036만원 ▶6인 가구 1193만원 등이다. 4인 가구 연 소득으로 환산하면 1억536만원 정도다. 가족 4명의 연 소득을 모두 합쳐 1억원 이하인 4인 가구면 100만원(1인당 25만원) 국민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TF는 소득이 적고 자산이 많은 사람에게 지원금 혜택이 갈 수 있다는 지적을 반영해 예외 규정도 논의 중이다. TF 관계자는 “지난해 기준이라 변동이 있을 순 있지만 일단 공시가격 15억원 이상 주택 소유자, 금융소득 연 2000만원 이상 자산가는 중위소득 180% 이하라도 제외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시세 20억∼22억원 아파트에서 살거나 연 1.5% 금리를 받는 13억4000만원 이상 금융자산을 보유하면 국민지원금을 받기 어렵다는 의미다.

TF는 또 “맞벌이 가구는 홑벌이 가구와의 형평성, 맞벌이 가구의 실제 소득 실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논의하겠다”고도 했다. 맞벌이 가구의 경우 소득은 홑벌이보다 많지만 육아 비용 등 필수 소비 비용 지출도 더 많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와 함께 부부가 다른 도시에 살면서  맞벌이를 하고 있다면 세대를 나눠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다.

이달 말께 구체적인 기준이 정해지고,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재난지원금은 이르면 다음 달 하순부터 지급된다. 세대주 1명에게 지급하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만 19세 이상 성인은 각자가 본인 명의 카드로 1인당 25만원의 지원금을 받는다. 다만 미성년자에게는 세대주를 통해 지원금을 준다.

국민지원금을 둘러싼 논란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부가 예외 규정을 검토 중이지만 빈틈이 많아서다. 비싼 전·월세에 사는 사람이 지원 대상에 들 수 있다. 실현 소득이 바로 잡히지 않는 주식·채권, 각종 보험과 회원권, 자동차 등 자산은 어떻게 구분할지도 숙제다. 소득 하위 80%는 받고 80.1%는 못 받는 문제도 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득 하위 80%에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소득 파악 수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이어야 했다”고 짚었다. 최영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지원금은 전 국민 지급으로 바꾸고, 고소득층에 혜택이 집중되는 카드 캐시백은 폐지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세종=조현숙·정진호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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