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박나래의 농염주의보'
성희롱 논란으로 고발당한 개그우먼 박나래씨가 최근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서 그 판단 근거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두 달 넘도록 이어진 수사 끝에 경찰이 ‘대법원 판례’를 거론하며 혐의없음 판단을 내리면서다. 중앙일보가 경찰이 수사에 참고했다는 여러 판결문을 입수해 박씨의 성희롱 무혐의 근거를 분석했다.
“대법원 판례 등에 따라 박나래 무혐의”

개그우먼 박나래가 웹예능 방송 중 인형을 갖고 노는 장면으로 성희롱 논란이 불거졌다. 사진 유튜브 헤이나래
서울 강북경찰서는 지난달 28일 정보통신망법상 불법정보유통 혐의를 받는 박나래씨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앞서 박씨는 한 유튜브 방송에서 남자 인형 소개를 하며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영상에 따르면 박씨는 ‘암스트롱맨’이라는 남자 인형의 옷을 갈아입히는 과정에서 인형의 팔을 사타구니 쪽으로 가져가 성기 모양을 만들면서 장난스럽게 발언했다.
이 영상으로 인해 박씨는 “누구든지 음란한 부호·문언·음향·화상 또는 영상을 배포·판매·임대하거나 공공연하게 전시해서는 안 된다”는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지난 4월에 고발당했고, 지난달 초 강북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두 달 넘게 이어진 수사 끝에 경찰은 “대법원 판례 등으로 미뤄볼 때 박씨의 행위는 음란행위로 볼 수 없고 해당 영상 역시 음란물로 볼 수 없다”며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경찰이 참고했다는 판례 분석해보니
경찰이 박씨의 사건에서 참고했다는 대법원 판례 등에 따르면 음란물이나 음란 행위를 판단하는 주된 기준은 ‘존엄성과 가치의 심각한 훼손’과 ‘성기나 음모의 직접적 노출’이었다.
지난 2008년 3월 대법원에선 남녀 간의 성교나 여성의 자위 장면 등이 묘사된 비디오물의 음란물 판단 여부가 다뤄졌다. 당시 대법원은 ‘음란’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①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 ②저속하고 문란한 느낌을 넘어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할 정도로 표현한 것 ③성적 흥미에만 호소하고 어떠한 예술적·교육적 가치 등을 지니지 않은 것에 해당할 경우 음란물로 규정된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대법원은 해당 사건에서 다뤄진 비디오물은 ‘음란물’이 아니라고 봤다.
음란물 가르는 ‘성기 노출’ ‘존엄성 훼손’
알몸의 여성이나 여성의 치마 속 등을 몰래 촬영한 사진과 남녀가 성행위를 하는 만화 사진 등도 음란물에 해당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진을 인터넷사이트에 게시해 수익을 얻은 행위에 대해 2심 재판부는 “선정적 측면을 강조해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는 것”으로서 음란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지난 2008년 4월 대법원은 “남녀의 성기나 음모의 직접적인 노출은 전혀 없었다”며 “노골적인 방법에 의하여 성적 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 또는 묘사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 사건을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경찰이 참고했던 판례 중에는 박씨의 사건처럼 인터넷방송영상이 음란물유포 혐의로 다뤄진 사례도 있었다. 지난 2017년 10월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여성 BJ(방송진행자)가 자위행위를 하면서 신음소리를 내는 영상을 실시간으로 방송한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성기나 음모의 직접적인 노출은 없었다”면서 “내용이 상당히 저속하고 문란한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라도 형사법상 규제의 대상으로 삼을 만큼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안세훈 변호사(법무법인 정향)는 “판례에 제시된 기준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단지 이를 토대로 음란물의 여부를 기계적으로 판단하지는 않는다”며 “이러한 세 가지 기준과 더불어 표현의 자유 등 여러 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일례로 성인영화를 법적인 의미에서 음란물이라 볼 수 없는 것처럼 영상이 만들어진 배경과 구체적인 의도 등을 고려해 보수적으로 음란물의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