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정부에 비해 문재인 정부에선 주요직에 여성 발탁이 많아선지 국정 성패를 판가름한 주요 장면에 등장하는 여성도 많다. 아파트값을 폭등시켜 세수 증대에 크게 기여한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집요하게 몰아세워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 육성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외교·안보 현안이 터질 때마다 ‘외교부 패싱’으로 외교관들의 업무 부담을 덜어준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 등이 그런 경우다. 이들은 후보 지명 때부터 “과연 적임자가 맞냐”는 비판이 많았고, 임기 내내 업무상 논란이 끊이질 않았으며, 그럼에도 문 대통령의 강력한 지원사격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30년 인연 최측근 김외숙 수석 #숱한 인사 참사에도 자리보전 #여성발탁도 능력없으면 무의미
요즘 여기에 한 명의 여성이 추가되는 분위기인데 바로 김외숙 청와대 인사수석이다. 김 수석은 문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지 30년이나 된 최측근이다. 김 수석은 1992년 사법연수원을 마친 뒤 노동변호사가 되고 싶어 법무법인 부산의 문재인 변호사를 무작정 찾아갔다고 한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도 서울대 법대 출신의 엘리트 변호사가 자신을 롤 모델로 보고 거둬달라고 부산까지 찾아왔으니 무척 기특했을 게 틀림없다.
문 대통령은 정권 출범 직후 특별한 행정경험이 없는 김 수석을 곧장 법제처장으로 발탁했다. 2019년 5월엔 청와대 인사수석에 기용하며 핵심 참모 역할을 맡겼다. 그런데 문제는 김 수석 임명 이후에 발생한 인사 논란이 한두 건이 아니란 점이다. 최근만 해도 택시기사 폭행사건을 알고도 임명한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가족동반 해외출장이 드러난 임혜숙 과기부 장관, 도자기 밀수 논란으로 낙마한 박준영 해수부 장관 후보자 등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특히 지난달 청와대 김기표 전 반부패비서관이 부동산 투기로 사퇴한 것은 인사실패의 결정판이다. 오죽하면 여당에서조차 김 수석에게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터져나올 정도다. 반부패비서관은 적폐청산의 정신을 이어받겠다며 문재인 정부가 신설한 자리다. 정권의 정체성과 직결된 요직이면 사람을 고를 때 무지하게 신경을 쓰는 게 상식이다. 김 전 비서관이 검증 때 제출한 재산서류엔 부동산 재산이 91억원인데 금융채무가 56억원이나 되고 맹지(도로와 연결되지 않는 땅)까지 보유 중인 것으로 나온다. 이쯤 되면 ‘저는 부동산에 관심이 많으니 참고 바란다’고 자진신고를 한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청와대 인사검증팀은 그에게 합격 도장을 찍어줬다. 반부패비서관 인사검증이 진행되던 지난 3월은 LH 문제로 부동산 민심이 폭발하던 시점이다. 그런데도 김 전 비서관의 부동산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검증라인의 무신경은 불가사의하다.
김부겸 총리는 “인사검증이 옛날처럼 정보기관을 통해 사찰하는 게 아니라 제약이 있다”고 청와대를 감쌌는데, 완전히 헛짚은 변명이다. 이번 김 전 비서관 문제는 국정원을 끌어들일 것도 없이 그냥 기자들이 맹지 인근 부동산 업소에 전화 한 통화만 해도 금방 진상을 파악할 수 있는 사안이었던 것이다. 시중엔 “알고 보니 반(反)부패가 아니라 반(半)부패였고, 다음엔 풀(full)부패가 온다”는 비아냥이 나돈다.
문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이던 2015년 박근혜 정부의 총리 후보자 인선 난맥상에 대해 “도대체 뭘 검증했는지 묻고 싶다. 총리 후보 검증 추천 실패에 세 번이나 실패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이 기이하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현 정부에선 과연 누가 인사 실패의 책임을 지고 있는가. 김 수석의 전임자였던 조현옥 전 인사수석도 인사 실패로 여러 번 곤욕을 치렀지만, 독일대사에 발탁됐다. 현 정부 두 명의 인사수석이 모두 여성이란 점은 아마 문 대통령의 인사철학이 반영된 듯하다. 물론 문 대통령이 요직에 여성 비율을 높이려는 의지 자체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당사자가 자리에 걸맞은 능력을 갖췄을 때만 의미가 있는 얘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