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정동의 축적의 시간

한국의 기술로 열어가는 원자현미경의 세계

중앙일보

입력 2021.07.05 00:37

업데이트 2021.07.0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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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국가핵심기술의 축적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한국 경제는 2017년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었다. 지금껏 이 선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로도 어느덧 세계 10위권에 도달했다. 반도체·조선·자동차 산업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이 큰 돌들 사이를 메우는 핵심기술 없이는 한국 경제라는 큰 독이 채워질 리 없다.

현미경, 기술축적 필요한 대표 분야
국가 산업 수준은 현미경과 정비례
독자개발 국내 벤처 ‘파크시스템스’
세계 원자현미경 시장의 15% 점유

우리 산업의 저력을 보려면 이런 기술들이 숨어있는 현장에서 축적의 원리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빠르다. 여기에 좋은 길잡이가 있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국가가 지정하고 보호하는 ‘국가핵심기술’들은 우리 산업이 어렵게 만들어낸 혁신적 기술들의 모음이다.

국가핵심기술 가운데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첨단 현미경 기술이다. 현미경이야말로 기술축적이 필요한 대표적인 분야라 개발도상국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선진국들만의 리그다. 이 분야에 우리 기업의 기술이 혁신적 개념설계로 도전하고 있다는 것은 대견한 일이다. 과학기술의 수준은 어느 정도 정밀한 현미경을 필요로 하는지 보면 정확히 알 수 있다. 세포 크기 정도를 겨우 보는 현미경을 가지고 있을 때와 원자 단위의 미세구조를 보는 현미경을 가지고 있을 때는 연구목표 자체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일본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의 85%가 첨단 계측장비를 새로 개발하거나 성능을 개선한 덕분이라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그 나라 산업의 수준도 필요로 하는 현미경의 수준과 정비례한다. 저가의 봉제인형이 주된 생산품이라면 원자를 들여다볼 수 있는 현미경은 쓸 곳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현미경은 싸다고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요구하는 해상도가 나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간 6조원이 넘는 전 세계 첨단 현미경 산업에서는 수요자가 아니라 공급자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데, 이 공급자가 예외 없이 기술 선진국의 기업들이다.

현미경의 역사는 과학과 산업발전의 역사와 함께한다. 요즘 초등학교 실험실에서도 볼 수 있는 광학현미경은 1590년 네덜란드의 자카리아스 얀센이 처음 만들었다. 이 광학현미경은 파장이 긴 가시광선을 이용하기 때문에 나노급의 미세한 구조는 관찰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파장이 극히 짧은 고속 전자를 이용하는 전자현미경이 1931년 등장했다. 이 전자현미경의 개념을 제시한 독일의 에른스트 루스카는 노벨상을 받았다. 현재 전 세계 첨단 연구실과 기업 현장에서 미세한 구조들을 관찰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전자현미경이다.

박상일 파크시스템스 대표(오른쪽)가 수원 본사를 찾은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에게 반도체 공정 계측용 원자현미경 옆에서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박상일 파크시스템스 대표(오른쪽)가 수원 본사를 찾은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에게 반도체 공정 계측용 원자현미경 옆에서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1980년대 기존의 광학이나 전자현미경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현미경이 등장했다. 뾰족한 탐침을 시료 표면에 나노미터(㎚) 단위로 가깝게 접근시키면, 그 사이에서 전자가 벽을 통과해 지나가는 터널링 현상이나 원자 간에 밀고 당기는 미세한 힘이 발생한다. 이 여러 힘의 변화를 계측해서 표면의 특성을 읽어내자는 것이 핵심 아이디어다. 비유하자면 고양이 등을 살며시 더듬을 때 손에 느껴지는 미세한 감각의 변화로 고양이의 형태를 파악하는 것과 같다. 이들 가운데 가장 먼저 개발된 주사터널링현미경(STM)은 독일의 게르트 비니히와 하인리히 로러가 1981년 제안하였고, 그 업적으로 1986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1985년 제안된 원자현미경은 탐침과 시료 사이를 가깝게 다가가게 한다는 핵심원리는 같지만, 탐침 끝의 원자와 시료 표면의 원자 사이에 밀고 당기는 미세한 힘을 이용한다. 엄밀하게는 원자간력현미경이라 하는데, 간단히 원자현미경이라고 한다. 이 원자현미경 개념을 제시한 미국의 캘빈 퀘이트는 2017년 비니히·로러와 함께 제2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카블리 상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이 첨단 현미경들의 역사에는 전통적인 선진국의 과학자들과 기업들의 이름만이 등장한다. 기초과학의 뿌리가 깊어야 하고, 산업 전반에 여러 핵심적인 요소기술들이 축적되어 있어야 하므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한국은 아직 선진국과 격차가 적지 않다. 현미경을 포함한 계측기에서 국산화율은 10% 남짓에 불과하고, 그것도 첨단 광학현미경이나 전자현미경은 아직 남 이야기다. 국내의 대학과 기업에서 사용하고 있는 전자현미경만 해도 2000대 정도로 추산되는데, 일본에는 이런 전자현미경이 12만 대나 있다. 첨단 현미경은 모두 미국·독일·일본 기업들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참고로 독일의 자이스라는 현미경 회사는 1846년에 만들어졌다.

원자현미경으로 확대, 측정한 쥐 신경세포의 3차원 사진. 왼쪽은 일반 광학 현미경 사진.

원자현미경으로 확대, 측정한 쥐 신경세포의 3차원 사진. 왼쪽은 일반 광학 현미경 사진.

이 선진국 리그에 한국이 ‘비접촉식 원자현미경’이라는 독자기술로 글로벌 무대에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2015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기술이다. 기존의 원자현미경이 시료를 긁거나 톡톡 치면서 모양을 파악하는 것이라면 비접촉식은 탐침이 시료의 표면 위에서 원자 한두개 정도의 거리를 두고 마치 저공비행을 하듯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모양을 읽어낸다. 해상도가 높은 것은 물론이고, 탐침이나 시료가 손상되지 않을 뿐 아니라 탐침의 마모로 인한 측정오차도 줄여준다. 현재는 점점 정밀해져서 0.01나노, 즉 수소 원자 한 개의 10분의 1 크기 정도까지 오차를 제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 기술을 독자적으로 완성한 한국의 벤처기업이 글로벌 최첨단 원자현미경 시장에서 15%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그 점유율을 빠르게 높여가고 있다.

이 국가 핵심기술의 개발과정은 전형적인 기술축적의 과정이었다. 무엇보다 집요한 스케일업의 과정이 있었다. 1985년 원자현미경의 개념이 처음 제시된 후 여러 가지 방식이 제안되었고, 비접촉 방식도 그중 하나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론적 가설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탐침이 시료 위에 떠 있는 채로 1초에 30만번 진동하는 가운데 시료와의 간격을 나노미터 단위로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만들어보면 탐침과 시료가 닿아 오류가 나기 일쑤다. 10여년에 걸쳐 탐침의 종류와 구동기의 설계, 외부 진동을 차단하는 구조물의 재질과 형태 등 여러 가지 요소기술을 개발하고 변수 조합을 바꾸어가며 수천번의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독자적인 비접촉 기술을 완성했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고유한 경험들 때문에 선진국 기업들도 쉽사리 모방하지 못하고 있고,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핵심인력의 조합도 중요한 요소다. 창업자는 스탠퍼드대에서 공부하는 동안 원자현미경 개념을 제시한 켈빈 케이트 교수로부터 핵심지식을 습득하였고, 최초로 상용화한 경험도 가지고 있는 탁월한 과학자였다. 그러나 하나의 기업이 기술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집단지성의 산물이기도 하다. 젊고 우수한 연구자들이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을 믿고 대기업을 마다한 채 벤처기업의 기술혁신 여정에 동참했다. 이들을 보상하기 위해 스톡옵션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뿐만 아니라 병역특례로 참여했던 젊은 이공계 인력들도 혁신기술의 개발과정을 몸으로 체험한 후 특례기간 이후에도 자발적으로 회사에 합류하여 지속해서 기술축적에 기여했다. 병역특례라는 한국적 제도가 기술벤처의 인재기반에 기여한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내 존재하는 첨단 수요기업의 역할이다. 국내의 한 반도체 회사는 기존의 현미경들로 볼 수 없었던 문제를 제시하면서 비접촉식 원자현미경으로 해결이 가능한지 물어왔다. 세계 최첨단 수요기업의 이 도전적인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가면서 기업의 기술축적 수준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다. 새로운 태양광 소재와 바이오 신약에 도전하는 첨단의 대학연구실들도 이전에 보지 못하던 도전적 문제를 들고 왔고, 이 숙제들과 씨름하면서 기술축적이 가속화되었다. 첨단의 원자현미경 기술과 한국의 산업현장이 함께 진화한 전형적인 사례다. 현미경과 관련한 자료를 살펴보던 중 국가핵심기술을 개발한 벤처기업의 현장을 방문했다. 젊은 연구원들이 이곳저곳에서 기구를 풀고 조이면서 토론을 거듭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수요기업 사람들과 대학의 연구자들, 그리고 원자현미경 전문가들이 뒤섞여 함께 진화하고 있는 그 공간에서 우리 산업의 미래를 보았다.

박상일 대표가 1997년 창업한 ‘파크시스템스’는 국가핵심기술인 비접촉식 원자현미경 기술을 독자 개발한 한국의 대표적인 기술기반 벤처기업이다. 수평과 수직 방향의 동작을 분리한 3축 분리형 개념과 좌우로 기울여 관찰하면서 3차원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는 혁신적 개념도 제시했는데, 모두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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