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게 삽시다’ 건축가 이일훈 별세

중앙일보

입력 2021.07.05 00:03

업데이트 2021.07.05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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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일 폐암 투병 끝에 별세한 건축가 이일훈. [사진 서해문집]

2일 폐암 투병 끝에 별세한 건축가 이일훈. [사진 서해문집]

‘불편하게 살기, 밖에 살기, (동선) 늘려 살기’로 요약되는 ‘채 나눔’ 건축론을 주창해온 건축가 이일훈(후리건축연구소 대표) 씨가 2일 폐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67세.

아파트 벗어난 ‘채 나눔 건축’ 주장
“숲의 지혜로 도시 살리자” 제안도

고인은 1978년 한양대 건축과를 졸업한 뒤 1984년 건축잡지 ‘꾸밈’을 통해 건축 평론가로 등단했다. 그가 평생 주창해온 ‘채 나눔’ 이론은 ‘편하게만, 안에서만, 좁혀서만’ 사는 삶에서 벗어나자는 제안이다. 아파트나 주상복합 건물처럼 한 공간에 모든 것이 집약된 집은 편리하지만 건강하지 않다는 뜻.

‘채 나눔’은 집을 세는 단위인 ‘채’를 ‘나누다’의 명사형과 합한 말로, ‘공간이 작을수록 형태적으로 나누자’라는 의미다. 구체적으론 방과 방이 멀찍이 떨어져 있는 구조를 가리킨다.

‘채 나눔’ 실천의 첫째 덕목은 ‘불편하게 살기’다. “환경, 공해 문제는 편하게만 살려고 하는 것의 후유증”이므로 자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불편함은 받아들이자고 제안했다. 둘째는 ‘밖에 살기’로, 될 수 있으면 자연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바깥 공간을 만들자는 의미다. 셋째는 ‘(동선) 늘려 살기’다. 동선을 늘려야 공간이 더욱 풍요로워진다고 주장했다.

그가 설계한 경기 가평군 ‘우리 안의 미래 연수원’. [사진 서삼종]

그가 설계한 경기 가평군 ‘우리 안의 미래 연수원’. [사진 서삼종]

2011년 펴낸 저서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는 생태·환경에 대한 성찰을 담아 주목받았다. ‘숲에서 배우는 지혜로 도시를 생각하자’는 제안을 담은 이 책에서 그는 획일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의 생리를 존중하는 것이 도시를 살리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고인은 1998년 인천 동구 만석동 달동네에 저예산으로 만든 지상 3층, 연면적 45평의 ‘기찻길 옆 공부방’으로 주목을 받았다. 지역 사랑방으로 만들기 위해 마당을 둘러싼 회랑을 집어넣은 충남 홍성군 홍동면의 ‘밝맑도서관’, 재활용 포장으로 울퉁불퉁한 땅바닥과 쓰레기를 태워 에너지를 얻는 ‘분자로’를 담은 경기 가평군 ‘우리 안의 미래 연수원’,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의 ‘자비의 침묵 수도원’ 등 다수의 종교 건축물을 설계했다.

저서로는 『모형 속을 걷다』(2005), 『불편을 위하여』(2008), 『뒷산이 하하하』(2011), 『이일훈의 사물과 사람 사이』(2013) 등이 있다. 특히 건축주 송승훈 씨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경기도 남양주에 지은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낡은 책으로 채운 거친 돌집)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 『제가 살고 싶은 집은』(2012)은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빈소는 고려대 구로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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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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