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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집회엔 “살인자”라던 청와대, 민노총 시위엔 침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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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 3일 정부의 집회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서울 종로3가에서 기습적으로 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집회엔 주최 측 추산 8000여 명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 3일 정부의 집회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서울 종로3가에서 기습적으로 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집회엔 주최 측 추산 8000여 명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우리 사회를 또다시 위험에 빠트린다면 어떤 관용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작년 11월 당시 노영민 비서실장 #광화문집회 “살인자” 표현해 논란 #청와대, 민노총 방역무시는 말 안해 #야당 “집회도 내로남불이냐” 비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22일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부 보수단체가 ‘개천절 집회’를 예고한 시점이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공동체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반사회적 범죄를 집회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옹호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민주노총이 3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약 2시간 동안 집회와 행진을 강행했다. 당초 집회 장소인 여의도를 경찰이 방역을 이유로 통제하자 종로에서 기습 집회를 연 것이다. 집회엔 주최 측 추산 8000여 명이 참석했다.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거리두기는 지켜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들은 “비정규직 철폐하라” 등 구호를 외치며 종로3가 인근에서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3일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743명 발생하고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세도 심상치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민주노총 집회에 대해선 자제를 요청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집회 당일과 다음날인 4일에도 별도 입장을 내지 않았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지난 2일,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김진욱 대변인이 3일 민주노총에 집회 자제를 요청했을 뿐이다. 지난해 보수단체 집회 대응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4일 서울시 관계자가 종로경찰서에서 민주노총 집회 관련 고발장을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서울시 관계자가 종로경찰서에서 민주노총 집회 관련 고발장을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지난해 보수단체가 주도한 광복절 집회를 앞두고는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서면 지시사항을 발표하고 “국민 안전 및 건강이 일부 교회로 인해 일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노영민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해 11월 국회에 출석해 광화문 집회 주최 측을 향해 “살인자”라는 표현을 써 논란이 됐다.

야권은 이중잣대라고 비판했다. 야권 대선 주자인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은 “일반 시민들 집회에는 ‘살인자’라는 섬뜩한 말을 내뱉던 청와대가 민주노총 집회에는 왜 입을 다무는 것이냐”고 따졌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에 얼마나 끌려다니면 방역 원칙대로 강경하게 대처하지 못하냐. 집회도 내로남불인 정권”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황보승희 수석대변인은 지난 3일 논평에서 “정부 등은 입으로만 ‘엄정 대응’을 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이 민주노총에 단호한 태도를 취하지 못하는 이유는 민주노총이 정권 창출 지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란 관측이 많다. 민주노총은 2016년 말 탄핵 정국 당시 촛불집회를 이끈 핵심 세력 중 하나다. 정부가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사면한 2019년 12월 야당은 “촛불청구서에 대한 결제”라고 비판했었다.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총과 사이에서 갈등이 격화된 적도 있지만 지지 철회를 내세우며 압박하는 민주노총에 정부가 번번이 물러섰다.

김 총리는 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불법 집회를 끝내 개최한 점에 대해 대단한 유감을 표한다”며 “경찰청과 서울시는 확인된 위법행위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끝까지 책임을 물어달라”고 했다.

이날 서울시가 민주노총을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고발함에 따라 경찰은 서울경찰청 수사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52명 규모의 특별수사본부(특수본)를 편성해 수사에 착수했다. 특수본은 집회 주최자와 주요 참가자에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일반교통방해, 감염병예방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할 방침이다. 하지만 대선 정국에서 사법당국이 민주노총에 얼마나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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