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현대사 박물관’ 거제도엔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04 11:00

업데이트 2021.07.05 09:40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96)

남해여행 4일째, 남해도와 통영을 거쳐 거제에 왔다. 내게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라 많은 정보는 없지만, 큰 섬이라 그런지 유조선이나 고래 같은 큰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고, 맑은 바다와 싱싱한 멍게가 생각나기도 한다.

우선 고현시장부터 들렀다. 활어나 해물 같은 수산물이 많아 바다 음식 좋아하는 여행자의 발길을 잡는 곳이다. 해산물 가게 앞에서 입맛 다시다가 무엇을 얼마나 사야 할지 몰라 적당히 섞어달라고 부탁하자 이것저것 담아 손질해준다.

거제 시내 고현시장에서 사서 숙소에 펼쳐놓고 먹은 해산물. 거제에서는 해산물만 실컷 먹어도 본전 뽑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진 박헌정]

거제 시내 고현시장에서 사서 숙소에 펼쳐놓고 먹은 해산물. 거제에서는 해산물만 실컷 먹어도 본전 뽑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진 박헌정]

지세포 앞바다가 보이는 콘도에 와서 펼쳐놓았다. 싱싱한 멍게, 해삼, 낙지, 전복…. 모두 3만 4000원어치다. 대도시라면 한 접시 값인데 두 명이 다 먹기에 벅찰 정도다. 거제에서는 해산물만 실컷 먹어도 여행 본전을 충분히 뽑을 것 같다.

다음날, 대통령 별장인 청해대(靑海臺)가 있는 저도를 방문했다. 1972년에 별장으로 공식 지정되면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90년대에 해제되어 거제시로 환원되었지만 2008년에 재지정되었으며, 비(非)사용 기간에는 군 휴양소로 활용했다.

현 정부 들어 거제시에 반환하고 개방했지만 현재는 하루 여섯 차례 운항하던 배편이 선사들 사정으로 잠시 중단되었다. 우리는 거제시의 공식협조를 받아 관용선을 타고 들어갈 수 있었다.

저도에는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온 군사 시설이 곳곳에 남아있다. [사진 박헌정]

저도에는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온 군사 시설이 곳곳에 남아있다. [사진 박헌정]

저도(猪島)라는 이름은 멧돼지처럼 생긴 섬의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주민을 쫓아내고 군사 기지를 만들었기에 섬 곳곳에는 해방 이후에도 사용된 포대와 내무반 같은 시설이 남아있다.

대통령 별장과 군사 시설에는 접근이나 촬영이 안 되고, 잘 조성된 산책로와 전망대, 해수욕장 같은 곳을 돌아보는 데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경복궁 크기의 작은 섬이라 식생과 야생동물이 다양하지는 않다. 동백이 필 때면 아주 멋지고, 사슴과 고라니 정도가 있다고 하는데 사람 손길이 많이 닿지 않아 보존상태가 훌륭하다.

포대 참호에서 보는 거가대교. 거제 고현부터 부산까지 130분 걸리던 길을 50분으로 단축해준 바다 위 거가대교가 저도를 통과한다. [사진 박헌정]

포대 참호에서 보는 거가대교. 거제 고현부터 부산까지 130분 걸리던 길을 50분으로 단축해준 바다 위 거가대교가 저도를 통과한다. [사진 박헌정]

‘대통령의 별장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하지만 국가 원수의 안전과 관련한 일이라 관람은커녕 접근할 수도 없고, 그렇다면 그저 남해의 많은 섬 가운데 하나일 뿐이니 관광자원으로서는 한계도 약간 느껴진다. 권위주의 청산 차원에서 대중에게 개방하기로 했으면 소유권자인 국방부와 관리 주체인 해군, 그리고 관할 지자체인 거제시가 머리 맞대고 좀 더 적극적으로 묘수를 찾아야 할 것 같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거제시가 심혈을 기울여 지난해 1월에 개장한 거제 정글돔. 남쪽 거제의 콘셉트에 맞춰 주로 열대, 아열대 식물로 꾸몄는데, 일반적인 전시관처럼 ‘공부’ 시키는 분위기가 아니라 식생을 보존하면서도 나들이와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초점을 맞추었다.

거제시가 가족 단위 휴식공간으로 조성해 지난해 초에 개장한 식물원인 거제 정글돔. 내부에는 열대와 아열대 식물이 주종을 이룬다.

거제시가 가족 단위 휴식공간으로 조성해 지난해 초에 개장한 식물원인 거제 정글돔. 내부에는 열대와 아열대 식물이 주종을 이룬다.

전시공간의 동선에는 기획자의 의도에 따라 ‘몰아가고 싶은’ 방향이 숨어있고, 그 질서에 따르다 보면 공간 자체를 내 방식대로 소화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박물관에 수없이 가봐도 기억에 남는 것은 언제나 재미없는 선사 시대관의 돌화살촉이나 깨진 그릇 조각인 것처럼, 또는 입구에 들어서서 정신이 가장 또렷할 때 누군가의 치적부터 보게 되는 것처럼.

그런데 이곳에는 그런 동선이 따로 없고, 공원처럼 그냥 놀다 가면 된다. 식물원에 가면 습한 기운 때문에 휙 둘러보고 금방 나오곤 하지만 가족이나 연인들이 와서 평균 90분 정도 머물다 간다고 하니 관람객 마음을 꽤 사로잡은 것 같다. 코로나로 휴관하기 전까지는 하루 평균 4천 명 이상 입장했다고 한다.

사실 거제도는 대형 조선소로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암울한 기억도 떠올리게 되던 곳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흥남부두에서 피란민 1만4천 명을 태우고 탈출한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도착했고, 전쟁 중에 최대 규모의 포로수용소가 세워져 오랫동안 거제도의 달갑지 않은 상징이 되어왔다.

한국전쟁 당시 가장 큰 규모였던 거제 포로수용소. 친공과 반공포로가 나뉘어 극렬하게 대립해 사상자도 많이 발생한, 갈등과 분단의 상처가 서린 곳이다.

한국전쟁 당시 가장 큰 규모였던 거제 포로수용소. 친공과 반공포로가 나뉘어 극렬하게 대립해 사상자도 많이 발생한, 갈등과 분단의 상처가 서린 곳이다.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에서는 당시 건물 일부와 포로들의 생활상이 담긴 자료와 기록물을 볼 수 있다. 북한군과 중공군 등 17만 명을 수용했는데, 특히 이곳 포로들은 반공(反共)과 친공(親共)으로 나뉘어 대립하며 심각한 유혈사태를 빚었다. 공산 포로들은 조직적인 활동으로 많은 반공포로를 살해하고 수용소장 납치 등 끊임없이 폭동을 일으켰다.

유엔군은 반공포로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이곳에는 친공 포로만 남았고, 휴전 직전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를 석방해 남한 사회에 정착하게 했을 때도 이곳 거제수용소의 친공 포로들은 휴전 후에 입던 옷마저 내던지고 전부 북으로 돌아갔다. 서글프고 기막힌 역사다. 이웃이고 친구였을 사람들이었다.

전쟁은 주인공들만 달라질 뿐, 내용은 항상 똑같은 연극이다. 연출자는 뒤로 물러나서 눈에 보이지 않고, (중략) 연출자의 의도는 알지도 못하고 자기가 맡은 조그만 역의 짤막한 대사를 외울 따름이다. 그리고 내가 맡은 단역은 조금도 새롭지 못하고, 과거에 이미 수많은 사람이 똑같은 동작과 대사를 되풀이했으며,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역을 해내리라. (안정효, 『하얀 전쟁』)

그러니 거제는 어쩌면 우리 현대사가 압축된 공간이다. 조용한 바다와 어민의 삶이 있던 곳, 일제 강점기에는 포경산업 기지와 군사 시설이 들어섰고, 한국전쟁 때는 피란과 포로의 땅이었으며, 산업 시대에는 조선산업의 메카가 되었다. 대통령도 두 명이나 배출한 땅.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평화파크에서 출발해서 해발 566m인 계룡산 상부까지 이어진 모노레일. 최대 경사 37도인 왕복 3.6km를 50분간 운행한다.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평화파크에서 출발해서 해발 566m인 계룡산 상부까지 이어진 모노레일. 최대 경사 37도인 왕복 3.6km를 50분간 운행한다.

이처럼 고난의 삶과 자연경관이 어우러진 큰 섬을 이틀 동안 전부 살펴볼 수는 없었지만, 시대에 따라 열심히 변하고 있는 숨결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이제는 밝고 즐거운 거제의 면면을 즐겨야 할 차례다. 해금강과 해안 비경, 지심도의 동백꽃, 대구⸱멍게⸱굴⸱멸치 같은 싱싱한 먹거리, 바다, 포구…. 다음 방문을 기약할만한 매력이 너무 많다. 이번에는 목록만 뽑아놓고 돌아가는 기분이다.

끝으로 취재에 협조해준 거제시청, 특히 바쁜 시간을 할애해서 지역 관광산업 현안을 열정적으로 소개해 준 권승만 관광기획팀장과 변해정 씨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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