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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시한부 생명 선고받은 남편, 나의 홀로서기 교육했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필진인사이드(4) ‘살다보면’송미옥 필진

본업과 관련이 없더라도, 전문적인 정보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경험과 지식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필진이 될 수 있는 곳, ‘더,오래’. 의미 있는 취미와 소소한 일상을 ‘더,오래’에서 글로 담고 있는 장기 연재 필진 6인을 인터뷰와 함께 소개한다. 〈편집자주〉

습관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약 66일간의 꾸준함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숫자만 들었을 때는 그리 긴 기간이 아닌 것 같지만, 막상 시작해보면 무언가를 꾸준히 한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솟아오르죠. 그리고 꾸준함 자체가 주는 힘에 나도 모르게 감탄하게 되고요.

송미옥 필진은 ‘더,오래’ 연재가 그저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꾸준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마감할 때가 되면 습관처럼 글감이 찾아진다며 웃었습니다. 주변 이웃과 일상의 궤적을 하나둘 담으며 어느덧 200회를 눈앞에 두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더,오래의 최장기 연재 필진(!)이십니다. 꾸준함의 동력이 궁금합니다.

재능의 한계로 화려하지 않은 글이지만 정해진 수업에 한 번도 결석, 지각하지 않는 ‘모범 학생’ 모드로 즐거운 글쓰기 놀이를 하다 보니 200회가 보이네요. 제 삶도 그동안 그만큼 발전했고요. 단지 글쓰기가 좋아서 시작한 놀이인데 화려한 배경 위에 멍석을 깔아 주니 내가 정해놓은 목표까지 이웃과 함께 살아온,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처음 연재를 시작하셨던 계기는요.
송미옥 필진의 작업 공간. [사진 송미옥]

송미옥 필진의 작업 공간. [사진 송미옥]

‘내가 만약 인생을 다시 산다면?’이란 생각으로 새로운 인생 계획을 세우고 있는 찰나에 신문에 올라온 ‘더,오래의 공모전을 봤고, 선발됐어요. 명예로운 훈장을 받고 최소한 동네 이장이라도 해야 성공한 인생으로 자랑할 수 있는 걸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내 인생을 돌아보니 완장만 안 찼지, 나름 엄청 성공한 인생이더라고요.

가장 밑바닥을 차고 오르며 엎어지고 자빠지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온 삶, 그래서 나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주절주절 자랑질했더니 소시민 대표로 뽑아주신 것 같아요. (웃음)

연재 이후 얻게 된 것들이 있을까요?

무엇이든 꾸준히 하면 습관이 된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어요. 신기하게도 요즘은 목요일이 되면 머리가 알아서 이야기를 꺼내 자료를 이리저리 펼쳐 놓아요. 하하. 한 작가 선생님은 대상을 받은 유명작가도 꾸준히 쓰는 사람을 못 따라간다며 격려를 해주셨어요.

처음에는 100회가 목표였어요. 시골 내려와 일기 쓰듯 쓴 공책을 꺼내어 놓고 살아온 이야기를 써보자고 계획했지요. 수다도 뒷담화도 멋진 풍경도 글로 쓰면 글쓰기지요. 제가 싫증을 잘 내서 이것저것 건드려 어질러 놓는다고 부모한테 혼난 적이 많아요. 그런데 글쓰기는 가장 좋아하는 취미이기도 하고, 하고 싶은 일이라서 힘들지 않은 것 같아요.

연재 중 있었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딸이 결혼하기 전 키우던 고양이를 시골에 갖다 놓으면서 벌어진 동물 이야기를 올렸을 때, 고양이를 밖에서 재웠다는 내용에 악플이 많이 달려서 힘들었던 적이 있어요.

우리 나잇대 사람은 ‘인간과 동물은 삶의 환경이 다르다’는 개념으로 살았거든요. 덕분에 생각하는 사고방식도 세대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고 이해하게 되었어요. 며칠 전 이웃집 강아지 한 마리가 우리 집에 입양 왔어요. 딸과 손자는 틈틈이 온갖 통조림과 간식을 갖고 와서 챙겨주고 돌아갈 때는 끌어안고 애잔한 대화를 합니다. 무섭고 두려울 텐데 작은 너를 밖에서 재워서 미안하다고요.

‘더,오래’에서 발행한 기사 중 가장 애정이 가는 기사를 이유와 곁들여 알려주세요.

‘마지막까지 송이버섯 안주 삼아 한잔하고 떠난 남편’이라는 기사가 가장 애정이 가요. 남편이 떠나던 날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영영 만나지 못하는 이별을 했는데 아직도 멀리 있는 듯하고 크게 슬프지도 않아요. 살아서 많은 대화를 하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어서 그런가 봐요. 어릴 적부터 죽음을 많이 보고 살아 그런 걸까요?

나 역시 떠나게 되더라도 여한 없는 인생이 되도록 늘 비움과 나눔을 생각합니다. 남편은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나서부터 저에게 홀로서기 교육을 한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큰 선물과 많은 숙제를 주고 떠났어요. 살아있는 동안 하루하루 애쓰며 숙제 마치고 돌아가면 칭찬받을 것 같아요. 하하.

원고 작업 공간을 자랑해주세요!
낙동강이 앞에 흐르는 송미옥 필진의 작업 공간. [사진 송미옥]

낙동강이 앞에 흐르는 송미옥 필진의 작업 공간. [사진 송미옥]

우리 집 앞엔 낙동강이 흘러요. 그래서 방문하신 분들이 한결같이 “여기 앉아 있으면 글이 절로 써지겠다”고 말씀하신답니다. (웃음) 분위기만큼 좋은 글이 나오지 않아서 부끄럽지만, 평상심을 유지하며 멍하니 글쓰기에는 정말 좋은 방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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