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日도 특허소송 대리” “전문성 폄훼”···커지는 변·변 갈등

중앙일보

입력 2021.07.04 01:00

특허청이 입주해 있는 대전정부청사 전경. [중앙포토]

특허청이 입주해 있는 대전정부청사 전경. [중앙포토]

“변리사도 공동으로 특허 소송대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vs “그러면 의료 분쟁은 의사가 공동대리해야 하나.”

과학기술계 ‘변리사법 개정안’ 촉구 성명
변호사업계는 “소송 전문성 폄훼” 일축

특허 소송대리를 놓고 변호사와 변리사 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이른바 ‘변·변 갈등’이다. 변리사를 포함한 과학기술계는 “특허소송에서 변리사가 참여해야 한다”며 관련 법 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변호사 업계는 “소송의 전문성을 폄훼하는 주장”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변리사 뿔났다 “특허강국 물거품 될 수도”

3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지난 13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한국공학한림원·바른과학기술사회실현을위한국민연합·한국기술사회 등 과학기술계 4개 단체가 공동 성명서를 내고 특허침해 소송에서 변리사가 변호사와 공동으로 소송대리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변리사법 일부 개정 법률안’의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이 법안은 지난 2006년 17대 국회부터 21대 국회까지 입법 발의됐지만 매번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해 16년째 계류 중이다.

과학기술계는 “특허권리 보호는 기업의 존폐와 직결될 정도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국가가 합리적 제도로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면 막대한 비용과 노력으로 얻은 ‘특허강국’이라는 타이틀도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중국·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4위인 특허강국이지만 관련 사법제도는 후진적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신기술을 개발해 특허로 출원하는 건수는 많은데 정작 특허가 침해당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법·제도적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기술을 제대로 보호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우일 과총 회장은 “곳곳에서 국경 없는 특허 전쟁이 벌어지는 데 기술과 특허실무 전문가인 변리사가 특허소송에서 배제되는 건 옳지 않다”며 “백신·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에 대해 다투는 특허소송에는 제너럴리스트인 변호사가 아니라 특허분야 스페셜리스트인 변리사가 직접 법정에 나서서 주도적인 역할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국가별 국제특허출원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지난해 국가별 국제특허출원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글로벌 특허분쟁, 배상액 규모 증가 추세 

지재권분쟁대응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지식재산권(IP) 분쟁 사건은 총 1155건으로, 2019년(431건) 대비 2배 가까이 늘었다.

국제적인 특허분쟁에 한국 기업이 발목 잡히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미국에서 발생한 특허침해 소송 가운데 한국 기업이 피소된 경우는 160건이다. 이 중 140건은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대기업을 표적으로 삼았다. 특허권만 구입해 소송을 걸어 거액을 받아내는 ‘특허괴물(Patent Troll)’로부터 피소된 것만 105건이나 됐다.

특허분쟁에서 패소해 부담해야 하는 손해배상 액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2019년 LG전자가 미국 법원에서 열린 특허소송 1심에서 패소해 1500만 달러(약 169억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홍장원 대한변리사회장은 “특허소송에서 패소하면 막대한 손해배상금도 문제지만 설비 폐쇄 등 생산 중단 위기에 몰려 회사의 존폐가 위협받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내 한국기업이 특허분쟁으로 손해배상한 판결액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미국 내 한국기업이 특허분쟁으로 손해배상한 판결액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하지만 과학기술계는 “국내 특허소송 제도가 이 같은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 한국의 특허 관련 분쟁은 행정심판·소송과 민사소송으로 이원화돼 있다. 특허침해 사안이 발생할 경우, 행정심판·소송을 통해 특허권자는 자신의 권리 범위를 확인하고 침해자는 ‘특허 무효확인’을 주장하며 다툰다. 이때는 특허 등 지식재산 전문가인 변리사가 대리를 맡는다.

반면 특허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 규모 등이 정해지는 민사소송에서는 변리사가 아닌 변호사가 소송대리인이 된다. 1961년 제정된 현행 변리사법 제8조에 ‘변리사는 특허·실용신안·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한 사항의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고 돼 있지만, 민사소송법 제87조는 ‘변호사가 아니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다’고 규정돼 있어서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변리사법에 대해 “모든 소송에 제한 없이 변리사의 소송대리가 허용되는 것으로 볼 수 없고, ‘권리보호 범위에 관한 사항’이 쟁점인 소송에 한해 소송대리권을 인정하는 부분”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일본·중국·유럽, 변리사 소송대리 인정

주요 국가 중 특허침해 소송에서 변리사를 배제하는 경우는 한국이 유일하다. 일본은 2002년 법 개정을 통해 변리사의 공동소송대리권을 인정했다. 일본변호사회가 주관하는 연수를 수료하고 특허청의 소관 시험에 합격한 변리사들은 소송에 참여할 수 있다.

중국은 아예 변리사 단독으로 소송대리가 가능하다. 유럽연합(EU)은 기업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변리사의 소송대리권이 인정됐다. 변호사들이 강하게 반발했지만 유럽 산업계 및 소비자 이익을 우선 고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독일에서는 소송 당사자의 신청이 있으면 변리사가 변호사와 함께 소송에 참여할 수 있고 법정 진술도 가능하다. 미국은 과학기술을 전공한 특허변호사가 특허소송을 맡는다.

변리사가 배제된 채 이뤄지는 국내 특허침해 소송에서 특허권자가 승소하는 경우는 10~20%에 불과하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9년 민사소송에서 특허권자 승소율은 16.67%로, 전년(19.3%)보다 더 낮아졌다.

이우일 회장은 “과거에는 기업이 보유한 자산의 80%가 부동산 등 유형자산이고, 20%가 특허·노하우 같은 무형자산이었다”며 “이제 4차 산업혁명에 접어들면서 무형자산 비율이 늘어났다. 그 핵심인 기술특허를 지킬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안 됐다는 게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국내 특허침해 관련 민사소송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국내 특허침해 관련 민사소송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홍장원 변리사회장은 “한국은 이제 퍼스트 무버(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선도자)로서 기술·지식에 대한 권리보호 체계를 갖춰야 한다”며 “60년 전 제정된 변리사법 문구 해석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는 제도 개선을 서두를 때다”고 말했다.

변호사업계 “소송은 특허 지식만으로 되는게 아니야”

변호사업계는 “소송의 전문성을 폄훼하는 얘기”라고 반박한다. 김신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은 “현재 상임이사회를 열고 대응책을 논의 중”이라며 “소송은 관련된 사실적 지식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며, 민사소송이라도 형사·행정소송에 대한 종합적 이해가 있어야 제대로 진행할 수 있어 변호사가 대리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또 “변리사에게 통상의 민사소송에 관한 소송대리권을 인정하지 않는데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재원 법률사무소 시우 대표변호사·변리사는 “변리사 공동대리를 인정하면 세금 분쟁은 세무사, 의료 분쟁은 의사가 공동대리를 해야 하냐”고 반문하며 “현재도 기술특허 관련 소송에서는 변리사와 변호사가 공동 수임해 협업하고 있어 법 개정의 필요성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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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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