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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지민도 '치마바지' 입었다…배꼽티까지 남자패션 대세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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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패션의 시계는 반 발짝 빨리 돌아간다. 지난 6월 12일 런던 패션 위크를 시작으로 내년 봄·여름에 시장에 나올 남성복 컬렉션이 하나둘 대중에 공개되고 있다. 세계적 디자이너들의 손길이 담긴 최신 트렌드인 셈이다. 그런데 면면을 살펴보니 시기만 빠른 게 아닌 것 같다. 허벅지가 훤히 드러난 미니스커트를 입고, 복근이 보이는 크롭 톱(crop top·짧은 상의)을 입은 낯선 차림의 남자들이 대거 등장했다는 점에서 패션 인식은 두 발짝 더 빠른 듯하다.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이른바 ‘젠더리스(genderless)’ 패션은 남성복 시장에서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톱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멤버 지민이 치마 바지에 퍼 부츠를 신은 스타일로 젠더리스 패션을 선보였다. 사진 방탄소년단 공식 트위터

톱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멤버 지민이 치마 바지에 퍼 부츠를 신은 스타일로 젠더리스 패션을 선보였다. 사진 방탄소년단 공식 트위터

‘스코트’부터 배꼽티, 나팔바지까지

지난달 20일 공개된 ‘프라다’ 2022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에선 미니스커트를 입은 남자들이 해변을 거닐었다. 물론 안에 바지를 입고 그 위에 같은 색의 천을 마치 스커트처럼 덧댄 형태였지만, 허벅지 윗부분만 간신히 가린 짧은 길이로 언뜻 보면 미니스커트처럼 보인다. 미국 보그와 영국의 GQ 등 해외 패션 매체들은 이 같은 옷을 두고 ‘쇼츠(shorts·짧은 바지)’와 ‘스커트(skirt·치마)’를 합친 옷이라는 의미로 ‘스코트(skort)’로 명명했다. 짧은 스커트 아래로 드러난 근육질의 남성미 넘치는 다리는 파격 그 자체였다.

젠더리스 패션은 시대적 흐름이 됐다. 프라다 2022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에 등장한 '스코트(쇼츠+스커트).' 사진 프라다 홈페이지

젠더리스 패션은 시대적 흐름이 됐다. 프라다 2022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에 등장한 '스코트(쇼츠+스커트).' 사진 프라다 홈페이지

일명 배꼽티로 불리는 크롭 톱은 그동안 허리 라인을 강조하는 여성복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최근엔 남자 아이돌의 무대 의상으로 주목받는 등 남성복에서도 크롭 톱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공개된 ‘펜디’ 2022 봄·여름 남성 컬렉션에서도 복근을 훤히 드러낸 남성용 크롭 톱이 다수 등장했다. 배꼽이 언뜻언뜻 드러나는 정도의 크롭 톱도 아닌, 거의 가슴만 가릴 정도로 짧은 ‘익스트림 크롭 톱’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티셔츠 형태의 크롭 톱은 물론 재킷이면서 허리 부분을 자른 크롭 재킷까지 다양한 남성 크롭톱의 변주를 보여줬다.

허리 라인을 드러내는 크롭 톱은 여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었다. 펜디 2022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 사진 펜디 홈페이지

허리 라인을 드러내는 크롭 톱은 여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었다. 펜디 2022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 사진 펜디 홈페이지

1970년대와 80년대의 남성들에게 익숙했던 ‘부츠컷’도 새로운 젠더리스 패션으로 등극했다. ‘디올’ 남성복 2022 봄·여름 컬렉션의 부츠컷 바지들 얘기다. 아랫단으로 갈수록 넓게 퍼지는, 일명 나팔바지 형태의 바지를 입은 남성들이 등장한 것. 밝은 분홍색이 주를 이룬 의상들도 다양하게 선보였다.

밑단이 퍼지는 형태의 남성용 '부츠컷' 바지를 선보인 디올. 사진 디올 공식 인스타그램

밑단이 퍼지는 형태의 남성용 '부츠컷' 바지를 선보인 디올. 사진 디올 공식 인스타그램

BTS 지민도 입었다, 치마바지

프랑스 디자이너 브랜드 ‘셀린’은 2020 봄·여름 컬렉션에서 남성들을 위한 젠더리스 패션을 선보인 바 있다. 스코틀랜드 전통의상인 남자를 위한 체크무늬 치마 ‘킬트’를 청바지 위에 덧입히는 스타일을 연출한 것. 지난달 29일 방탄소년단의 멤버 지민은 짧은 반바지 위에 이 킬트 치마를 덧입고 퍼(fur)로 된 부츠를 신어 젠더리스 스타일의 진수를 보여줬다.

바지 위에 스커트를 덧 입는 스타일링을 선보인 셀린 2021 가을겨울 남성복 컬렉션. 사진 셀린 홈페이지

바지 위에 스커트를 덧 입는 스타일링을 선보인 셀린 2021 가을겨울 남성복 컬렉션. 사진 셀린 홈페이지

치마와 배꼽티 등 파격적 의상은 아니어도 진주 귀걸이와 작은 핸드백, 짧은 반바지 등을 입은 남성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지금, 젠더리스 패션은 그 영역을 점차 넓혀가는 중이다. 젠더리스 패션은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점에서 과거 ‘유니섹스(uni sex)’ 패션과 비교되지만, 그 성격은 꽤 다르다. 유니섹스가 남성과 여성의 성별 구분은 그대로면서 여성과 남성이 크고 넉넉한 옷을 동일하게 입는 형태라면 젠더리스는 남녀의 구별 자체를 거부하고 이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패션을 추구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젠더리스 패션은 성 중립적이라는 의미의 ‘젠더뉴트럴(gender neutral)’ 패션으로 불리기도 한다.

젠더리스 패션 인기, 왜?

이한욱 패션 스타일리스트는 “젠더리스 패션은 단순히 유행이라 보기보다 시대정신의 반영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며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종이나 성별에 따른 차별을 거부하며,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의 인식을 패션으로 표현한 것이 젠더리스 패션”이라고 설명했다.

디올 2022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의 헤어와 메이크업 룩. 성별을 가늠하기 어려운, 중성적 룩이 돋보인다. 사진 디올 공식 홈페이지

디올 2022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의 헤어와 메이크업 룩. 성별을 가늠하기 어려운, 중성적 룩이 돋보인다. 사진 디올 공식 홈페이지

젠더리스 패션의 유행은 개인의 취향을 우선시하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성별에 따라 옷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은 옷을 고른다는 의미다. 1990년 중반 이후 태어나 Z세대로 불리는 신인류들에게 성별 구분에 따른 생활양식을 고수하는 건 촌스러운 관념이다.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강조하는 것도 낡은 관습이 됐다. 이들은 남자, 여자가 아닌 ‘나’로 보이고 싶어 한다. 2019년 11월 열린 미국 패션 매체 WWD의콘퍼런스에서 젠더리스 패션 브랜드 ‘더 플루이드 프로젝트’의 창립자 롭 스미스는 “Z세대 소비자의 56%가 지정된 성별 범주 밖에서 쇼핑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젠더리스가 트렌드가 되다 보니 패션에서 성 역할을 넘나들수록 패셔너블해지는 효과도 있다. 그 자체가 신선하고 파격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젠더리스 패션은 전형적인 ‘낯설게 하기’ 기법이라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남성들이 미니스커트와 배꼽티를 입고, 화려한 액세서리를 하는 ‘낯선’ 패션으로 시선을 끌고, 이를 통해 세련된 패션의 지위를 획득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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