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재팬’ 불매운동 잦아들고, 한·일 교역 수출 규제 전으로 회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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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3호 08면

[SPECIAL REPORT]
최악의 한·일 관계 돌파구는?

유니클로 매장. [연합뉴스]

유니클로 매장. [연합뉴스]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지용(39)씨는 최근 한 일본 브랜드의 승용차를 구매했다. 눈여겨보던 국산 차량은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속에 반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에 포기했다. 대체재를 찾던 김씨는 원하는 날짜에 인도가 가능하다는 일본 자동차 브랜드를 선택했다. 일본차를 타면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최근 ‘노(NO) 재팬’ 등 일본 불매운동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잦아들었다는 점도 선택 이유였다.

양국 경제 교류 활성화 #일본산 소재·부품·장비 수입 증가 #소비재 수입도 전년비 29% 뛰어 #100대 품목 대일 의존도 6.5%P 감소 #여러 국가서 소부장 조달 효율적 #“일본 제품 전면 배척하는 건 곤란”

한국과 일본의 정치·외교 관계 속에 주춤하던 양국 간 경제 교류가 느리지만 정상화의 길을 가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양국 간 교역 규모가 상승세로 돌아섰다. 국내 기업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전자기기 등에서 수출 호조세가 이어지면서 일본으로부터 반도체·전자기기의 소재·부품·장비 수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불매운동이 주춤하면서 일본산 자동차와 맥주를 비롯한 일부 품목은 판매량이 바닥을 찍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제계는 연말께 양국 간 교역 규모가 완전히 정상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닌텐도의 게임 ‘동물의 숲’.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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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관세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5월까지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품목의 총액은 217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7.8%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국의 대일본 수출도 117억 달러를 기록, 6.6% 증가했다. 수입이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대일 무역수지 적자 폭이 커지고 있지만, 양국 간 산업 구조를 고려하면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국내 기업은 대개 일본으로부터 소재·부품 중간재를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한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올해 교역만 놓고 보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수출 규제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렉서스를 비롯한 일본차의 국내 매출은 최근 가파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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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품 불매운동 속에 급감했던 자동차와 맥주·화장품·의류·골프용품 등의 소비재 수입도 전년 대비 28.7% 늘었다. 렉서스·도요타·혼다 등 5월 일본산 자동차 판매량은 2035대로 1월 1035대보다 100% 가까이 늘었다. 골프용품 수입액은 1~5월 1억4081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30% 이상 늘었다. 일본 맥주 수입액은 지난 5월까지 295만7000달러를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2% 늘었다. 일본 맥주를 수입·판매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매출은 평년의 10~20%밖에 안 됐는데, 올해 들어 매출이 늘고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상반기 국내 영화 흥행 2위에 오른 ‘귀멸의 칼날’.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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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간 경제 교류가 회복되고 있다는 신호는 소재·부품·장비 관련 수출입 민원 감소로도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 관련 핵심 소재는 2019년 7월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에 나서면서 양국 교역 품목 가운데 가장 먼저 경색됐던 분야다. 이 때문에 관련 소재의 대체 수입처를 찾거나 재고 확보를 위해 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기업 민원도 잇따랐다. 문준선 산업통상자원부 소재부품수급대응지원센터 부센터장은 “2년 전에 비해 일본 수출입과 관련한 기업 민원은 많이 잦아들었다”고 전했다.

‘이태원클라쓰’ [중앙포토]

‘이태원클라쓰’ [중앙포토]

수출 품목 역시 반도체를 비롯해 석유화학·철강 등 국내 기업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분야에 집중돼 있다. 경제계에선 국민 정서나 정치·외교적 기류도 중요하지만, 경제적 교류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산업 구조가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반도체다. 일본이 불화수소 수출을 금지하면서 한국은 일본에서 수입하던 불화수소 국산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불화수소 등 일부 소재·부품을 국산화했다고 해서 일본을 배척하기도 어렵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불화수소는 반도체 8대 공정 중 하나인 식각(Etching)에 들어가는 소재일 뿐”이라며 “수백 개가 넘는 소재를 모두 국산화하는 건 비효율적이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다만 의존도가 높은 일부 소재·부품의 국산화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일본의 수출 금지 조치 이후 한국은 반도체 관련 100대 핵심 품목의 대일 의존도를 2년 새 31.4%에서 24.9%로 줄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2일 일본의 수출규제 2년을 맞아 열린 ‘대한민국 소재·부품·장비산업 성과 간담회’에서 “불화수소 일본 의존도를 50%에서 10%로 낮췄다”며 “대기업·중소·중견기업이 연구개발부터 실증·양산까지 함께 전력을 다한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블랙핑크. [중앙포토]

블랙핑크. [중앙포토]

전문가들은 최근 부상하고 있는 ‘공급망 다변화’ 필요성 때문에라도 경제 교류만큼은 일본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축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3월 수에즈 운하에서 발생한 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 좌초 사고나 대만 가뭄 등 각종 사고를 겪으면서 기업 사이에서도 특정 국가에만 생산을 의존하는 일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국내 기업은 물론 글로벌 기업들은 위기 상황에서 공급망을 빠르게 대체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에 주목했고, 다양한 국가에서 소재나 부품을 조달하는 전략이 트렌드가 되고 있다.

과거에는 가장 낮은 가격으로 소재나 부품 등을 조달할 수 있는 국가를 찾아 집중적으로 발주했다면, 이제는 공급 단가가 높더라도 다양한 국가에 공급망을 분산시켜 놓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이다. 송영관 KDI 경제전략연구부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미국은 대중 제재 수위를 높이고 있는데 어느 순간 한국에게 중국과의 교역을 제한할 수 있다”며 “국가 간 분쟁이나 자연재해, 사고 등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특정 국가와의 교류를 일부러 배제할 만큼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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