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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리 육수 물회, 아란치니 삼계탕…색다른 ‘야생의 맛’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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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3호 24면

[이택희의 맛따라기]

혜림원 농장 곳곳에서 자라는 블루베리 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다. 박종근 기자

혜림원 농장 곳곳에서 자라는 블루베리 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다. 박종근 기자

뜨거운 6월의 햇살 아래서 사람들은 너나없이 잘 익은 과일들을 따 먹기에 바빴다. 따서 집에 가져가라고 봉투를 하나씩 줬는데도 먹는 게 먼저다. 먹으면서 다들 한마디씩 한다. “맛있네. 원래 이게 이런 맛이야? 사서 먹던 거 하고는 많이 다르네.”

‘혜림원’서 홍신애 창작요리 #자연농업 10년 된 농장 생산물로 #발랄한 아이디어 입힌 메뉴 첫선 #야생 더덕 즙 위에 데친 와송 등 #좋은 식재료 만나 세련되고 맛깔

자연농업(Natural Farming)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수확 체험과 농장 구경을 하는 길이다. 길가에 멋대로 자라는 블루베리·앵두·뜰보리수 나무엔 익은 열매가 주렁주렁하다. 무게를 못 이긴 가지가 땅에 누운 것도 종종 보인다. 아무것도 자라지 않을 것 같은 돌산 비탈에도 자세히 보면 보호색으로 무장한 바위솔(와송)이 촘촘히 자라고 있다. 흙이 두터운 땅에는 복숭아·사과·포도·매화·아로니아·자두·돌배·오얏 등 각종 과일 열매가 햇살을 머금고 몸피를 한창 키우고 있다.

밭에는 잡초가 꽉 절었다. 땅심을 돋우려고 묵히는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키 작은 고추, 토란, 야콘 등의 작물이 섞여 있다. 농장주 김주진(70) 박사는 “저게 잡초보다 크게 자라서 때가 되면 다 제구실을 한다”며 “자연농 만 10년이 되니 저렇게 키워도 일정한 수확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도라지 잡채 등 진귀한 7코스 음식

성게 알과 살얼음 낀 블루베리 육수가 어우러진 도미 물회. 박종근 기자

성게 알과 살얼음 낀 블루베리 육수가 어우러진 도미 물회. 박종근 기자

닭장도 보였다. 닭을 가두는 사육장이 아니라 밤에 야생동물의 공격을 막아 주는 보호시설이다. 닭들은 낮에는 산을 뒤지며 먹이활동을 하고 밤이면 돌아와 잔다. 주인은 아침에 문 열고 저녁에 닫아 주기만 한다. 모이는 쌀겨를 비상식량으로 주는 정도다. 알은 모아서 먹고 일부는 병아리로 부화해 닭장에 돌려보낸다. 닭이 200~300마리인데 어린 것부터 6~7년 묵은 것까지 섞여 자라서 주인도 구별을 못 한다고 한다.

과일을 따 먹으며, 질문하며, 감탄하며 가다 보니 농장 구경 발걸음은 점점 느려졌다. 축구장 29개와 맞먹는 20만6612㎡(6만2500평) 농장에 동서로 난 길 3분의 1 정도를 가는 데 30분 넘게 걸렸다. 참석자는 대부분 40~50대 서울 여성들이지만 따가운 햇살과 무더위를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문화인류학자의 눈으로 자연농업을 탐구하고 동영상으로 현장을 기록해 디지털 공간에 공개하고 있는 이문웅(80)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는 그 과정을 쉬지 않고 촬영했다.

5가지 치즈와 말린 무화과, 혜림원 블루베리 조청, 캐러멜 초콜릿 등 디저트를 직접 서빙하는 홍신애 씨. 박종근 기자

5가지 치즈와 말린 무화과, 혜림원 블루베리 조청, 캐러멜 초콜릿 등 디저트를 직접 서빙하는 홍신애 씨. 박종근 기자

이어서 농장 넓은 마당에 차일을 치고 본행사를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대 자연농 농장인 양평 용문 ‘혜림원’에서 생산한 재료들로 창의력 발랄한 요리연구가 홍신애(45)씨가 구성하고 조리한 창작요리들로 점심 밥상을 차렸다. 지난달 19일 ‘자연농으로 이룬 생명 연장의 꿈 - 혜림원 백년밥상 by 홍신애’라는 제목으로 열린 팜 테이블 행사다. 2년 전 혜림원을 소개한 ‘맛따라기’(중앙SUNDAY 2019년 8월 10일자) 기사를 보고 이런 자리를 처음 생각했다고 한다. 재료는 90% 넘게 혜림원 농산물을 썼다. 안주인 문두혜(65) 여사가 직접 담근 식초·장류와 농장에서 난 것들을 챙겨 보냈다. 이날 7코스 음식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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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혜림원 사과식초로 만든 식전음료를 곁들인 천연 발효종 빵, 포도식초·올리브오일과 즉석에서 접시강판에 갈아 얹는 마늘. ②가미한 야생 더덕 즙 위에 데친 와송 한 송이, 부라타 치즈, 오렌지와 참외를 올린 샐러드. ③도미 회에 성게를 올리고 살얼음 블루베리 육수를 얹은 물회. ④껍질이 섞인 감자 퓌레에 혜림원 달걀 수란, 동해 돌문어, 충주 알마스 캐비어 올리고 잘게 썰어 초간장에 무친 부추를 곁들인 요리. ⑤야생 도라지와 표고·미나리·당근·우엉·소고기 잡채, 자연건조 삼광쌀 가래떡과 스페인 듀록 순종 삼겹살 떡볶음, 돌미나리·들깻잎과 3가지 상추 쌈과 홍신애씨 집안 내림 두부쌈장. ⑥아란치니 삼계탕, 양지머리 육수를 부어 숙성한 평양식 육수김치, 장아찌 4종(매실·산초·마늘과 말린 사과+야생 도라지) 모둠. ⑦디저트: 5가지 치즈(영국체다·트러플·토마토·에멘탈· 그뤼에르) 모둠, 혜림원 블루베리 조청, 조청유과, 말린 무화과와 딸기, 피칸과 말린 살구가 들어간 캐러멜 초콜릿.

“제주 재래 구엄닭보다 육질 단단”

농장 이곳저곳을 휘저으며 몇 년을 자란 토종닭으로 끓인 아란치니 삼계탕. 박종근 기자

농장 이곳저곳을 휘저으며 몇 년을 자란 토종닭으로 끓인 아란치니 삼계탕. 박종근 기자

레시피의 초점은 ‘자연농 좋은 재료를 세련되고 맛도 있는’ 음식으로 만드는 데 맞췄다. 본격 자연농 재료를 처음 조리해보고, 세상에 없던 음식을 새로 지어 내는 일이라 난관도 없지 않았다. 껍질이 잘 까지는 야생 도라지는 색이 하얗고 향은 진했다. 그런데 까서 소금으로 아무리 주물러도 숨이 죽지 않았다. 소금물에 삶아도 그대로였다. 기름에 볶으니 야들야들해졌다. 하루가 걸렸다. 결국 데쳤다 볶는 방식으로 밑준비를 해서 잡채를 완성했다. 자연농 재료들은 대부분 손질 시간이 일반 농산물에 비해 두세 배 걸렸다.

더덕즙 위에 데친 와송 한 송이와 부라타 치즈 등을 올린 샐러드. 박종근 기자

더덕즙 위에 데친 와송 한 송이와 부라타 치즈 등을 올린 샐러드. 박종근 기자

닭은 보기엔 일반 육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장은 깨끗하고 육색도 밝았지만, 살이 단단해서 칼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홍씨는 “온갖 토종닭을 다뤄봤지만 이런 건 처음”이라며 “제주 재래 구엄닭보다 더 단단하다”고 했다. 그래서 살이 푹 무르도록 오래 삶은 다음 뼈만 추려내고 모두 섞어 동그랗게 빚어서 아란치니(양념한 밥 튀김)로 만들었다. 그걸 들깨가루를 푼 닭국물에 띄워서 냈다.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삼계탕이 탄생했다.

음식은 새롭지만 익숙했다. 조리법과 차림은 처음이지만, 맛은 입에 편안하게 착 붙는다. 이날 선보인 음식 중 일부는 재료 중심의 음식점으로 전환을 서두르는 ‘홍신애솔트 2호점’에서 메뉴로 낼 예정이다. 그 가운데 집에서도 해 볼 수 있는 음식 두 가지 조리법을 소개한다.

▶도라지잡채
준비물: 도라지·미나리대·표고버섯·당근·우엉·소고기 20g씩, 양념장 2큰술(간장·설탕 각 2큰술, 참기름 1큰술, 다진마늘·청주 각 1작은술, 후추 조금).

①양념장은 모두 섞어 준비한다. ②채소는 모두 손가락 두 마디 길이로 채 썰어 준비하고, 소고기도 같은 크기로 썰어 양념에 재워 둔다. ③썰어 둔 재료들을 한 번 볶는다. ④볶은 재료와 고기를 볼에 넣고 양념장을 넣어 함께 섞는다. ⑤접시에 담아서 완성한다.

▶아란치니 삼계탕
준비물: 혜림원 닭(토종닭으로 대신) 1마리, 오분도쌀 2컵, 대추 5알, 손질하고 남은 더덕·도라지 자투리 약간, 수삼 1뿌리, 밀가루+계란+빵가루 튀김옷, 튀김기름 적당량, 거피 들깨 1컵, 혜림원 간장(묵은 집간장) 3큰술, 소금·후추, 고명으로 쓸 잎채소·대추와 볶은 잣, 생들기름 약간씩.

①닭을 손질하고 닭 속에 불린 오분도쌀과 수삼·대추, 더덕·도라지 자투리를 넣고 2시간 무르게 삶는다. ②닭 뱃속을 채운 내용물을 꺼내고 살을 발라 잘게 자른 다음 섞어서 동그랗게 빚고 밀가루·계란·빵가루 튀김옷을 입혀 튀긴다(아란치니 만들기). ③닭 삶은 국물에 거피 들깨가루를 푼 다음 간장·소금·후추로 간을 하고 좀 더 끓여 농도를 진하게 한다. ④튀긴 아란치니를 국물과 함께 담고 잎채소·대추·잣 고명을 올린 뒤 생들기름을 살짝 둘러 상에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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