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동량 늘어 선박 운임 고공행진, 탄소세 도입이 ‘암초’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0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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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3호 14면

해운업 호황 계속 될까

개인 투자자 조모(53)씨는 지난해 말 해운업이 살아나고 있다는 소식에 해운주를 살까 고민하다가 결정을 보류했다. 당시 조씨가 매수를 고민한 HMM(옛 현대상선) 주가는 1만원대였다. 반년여 지난 지금, HMM 주가는 4만원대로 그때의 4배다. 조씨는 “연초에 비해서도 주가가 3배라 속이 쓰리다”며 “한 달 전 5만원대 고점에선 (주가가) 다소 내려온 상태라 지금이라도 매수해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팬데믹 위기에 운항 효율성 개선
‘해운 재건 5개년 계획’도 한몫
발틱운임지수 등 사상 최고치

IMO 환경 규제로 탈탄소화 숙제
초대형 선박 공급 과잉 우려도

투자자들의 이런 고민은 ‘지금처럼 내년에도 해운업황이 좋을 것이냐’는 정부와 기업들의 고민과 맞닿는다. 한국 해운업은 2008년 약 51조원의 매출로 사상 최고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직격탄에 기나긴 침체를 겪어야 했다. 한국의 2019년 해운 매출은 30조원가량으로 전성기의 60% 수준에 그쳤다. 그사이 유럽·중국 등지의 글로벌 선사들은 선박 규모를 키우고 한 번 운행에 더 많은 화물을 실어 운임을 낮추는 식의 치킨게임에 나섰다. 이와 달리 유동성 문제 등으로 사정이 어렵던 국내 기업은 대응이 늦어졌다. 그 여파로 국내 1위이자 세계 7위 해운 업체였던 한진해운이 2017년 파산하기도 했다.

위축된 해운업을 살린 건 뜻밖에도 코로나19였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위기감을 느낀 선사들이 선복량(배에 싣는 화물의 총량)을 조정하면서 운항 효율성을 개선했는데, 하반기부터는 온라인 소비 증가 등으로 물동량(물자가 이동하는 총량)이 급증하면서 운임이 예년의 2~3배 수준으로 올랐다. 2018년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을 세운 정부의 지원도 한몫을 했다. 해양수산부 산하 한국해양진흥공사가 HMM의 초대형 선박 20척 발주를 지원하는 등 국비를 들여 해운업을 경쟁국처럼 저비용 고효율 구조로 재편하는 데 나섰다. 이에 한국의 해운 매출은 지난해 36조원으로 반등했고, 올해는 40조원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올 들어서도 분위기가 좋기 때문이다. 글로벌 해운 경기를 보여주는 두 대표적 지표인 발틱운임지수(BDI)와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 모두 연일 사상 최고치다. 원자재를 주로 싣는 벌크선 운임을 나타내는 BDI는 지난달 29일 3418포인트로 2010년 6월 이후 11년 만에, 완제품을 주로 싣는 컨테이너선 운임을 나타내는 SCFI는 지난달 25일 3785.4로 집계가 시작된 2009년 10월 이래로 각각 최고치였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경기 회복세가 두드러지면서 올해 해상 물동량은 전년 대비 4%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7~9월 성수기를 맞아 선복 부족 상황도 이어질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미래까지 마냥 낙관적이기만 한 상황은 아니라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은 선복이 부족해 고운임의 수혜가 이어지겠지만 내년 이후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며 “수요가 급증한 초대형 선박의 공급 과잉이 우려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지난 5월 기준 글로벌 선사들의 컨테이너선 발주 잔량은 294만TEU(길이 20ft의 표준 컨테이너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로 전년 동기(196만TEU)보다 50%가량이나 증가했다. 이 컨테이너선들은 통상 2~3년이 걸려 각 선사에 인도된다. 그사이 선복량이 해운 수요를 역전하면서 운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각종 악재도 업계를 흔들고 있다. 최근 국제해운회의소(ICS) 등 영향력 있는 글로벌 단체들은 국제사회의 친환경 대체 에너지 전환 흐름에 업계도 동참해야 한다며 각국 정부에 선박 연료에 대한 환경세(탄소세)를 부과하는 정책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이미 국제해사기구(IMO)가 환경 규제에 적극적이라 2023년 해운 업체들에 대한 탈(脫)탄소화 규제(2026년까지 연간 탄소 배출량 2% 감축) 시행을 앞둔 상태다. 탄소세까지 도입되면 국내 선사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외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국내 선사 12곳에 대해 동남아 항로에서 120여 차례 운임을 담합했다며 최대 5600억원의 과징금 부과를 통보, 업계를 긴장시켰다.

호황에도 해운 선사 간 격차는 벌어지고 있다는 점 역시 우려를 낳는다. HMM과 팬오션은 전년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이 올해 대폭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대한해운과 KSS해운, 와이엔텍 등은 실적 개선이 상대적으로 미미할 전망이다. 기업 규모와 대형 선박의 운용 능력 등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성혁 해수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JTBC 인터뷰에서 “2~3년 내 글로벌 치킨게임 반복으로 해운업의 어려움이 반복될 가능성은 잘 알고 있다”면서 “저비용 고효율 선박 12척을 정부가 또 발주 지원할 계획이며,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토대 마련에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2030년 세계 해운업 리더 국가 도약’ 비전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중소·중견 선사도 선박을 제때 확보해 신조 수요 증가에 대응할 수 있도록 자금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유진투자증권은 “계속된 정부 지원과 호황으로 당분간 해운주 랠리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해운주는 대표적인 경기 민감주인 동시에 유가·환율 변동에도 민감한 주식인 만큼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서 투자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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