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동양인 차별? ‘넘사벽 성량’으로 미국 오페라 무대 우뚝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03 00:20

업데이트 2021.07.03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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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3호 19면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데뷔 앨범 낸 소프라노 조수아

조수아는 고음과 기교 위주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많은 한국에서 보기드물게 서정적이고 파워풀한 정통 리릭 소프라노다. [사진 디지엔콤]

조수아는 고음과 기교 위주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많은 한국에서 보기드물게 서정적이고 파워풀한 정통 리릭 소프라노다. [사진 디지엔콤]

해외에서 활약하는 우리 성악가들의 성공담에 으레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가 있다. 바로 ‘동양인 차별 극복’이다. 유럽의 전통예술인 오페라 무대에 녹아들기에 동양인은 신체적 조건부터 맞지 않으니 어느 정도 차별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런 환경에서 서양인과 경쟁해 주역을 따내려면 동양인이 ‘딱 100배는 잘해야 한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줄리어드 나와 미국서 승승장구
‘라보엠’ ‘홍루몽’ 등 오페라 주역

유럽 진출하려다 코로나에 막혀
15년 만에 귀국, 당분간 국내 활동

“오페라 ‘살로메’ 제 역할로 만들어
한국 관객에게 보여드리고 싶어”

그런데 “한 번도 동양인 차별을 느낀 적 없다”고 말하는 당당한 MZ세대 성악가가 나타나 눈길을 끈다. 동양인 최초로 미국 4대 오페라극장의 하나인 휴스턴그랜드오페라에서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을 마치고 프리마돈나로 활약한 소프라노 조수아(32)다. 예원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예고 1학년 때 한국성악콩쿠르 우승 후 도미, 줄리어드에서 프리스쿨부터 학사, 석사까지 특급 엘리트 코스를 밟은 실력자다. 드라마 ‘펜트하우스’처럼 입시와 콩쿠르를 배경으로 피 튀기는 경쟁이 벌어지는 성악계를 ‘넘사벽 성량’으로 유유히 헤쳐 왔다.

조수아의 데뷔앨범 ‘라 프리마돈나’. [사진 디지엔콤]

조수아의 데뷔앨범 ‘라 프리마돈나’. [사진 디지엔콤]

그런 그가 15년 만에 돌아와 한국 관객 앞에 처음 섰다. 지난 5월 예술의전당에서 데뷔 리사이틀을 가진데 이어 지난달 28일 소니 클래시컬에서 데뷔 음반 ‘라 프리마 돈나(La Prima Donna)’를 발매했다.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의 아리아 ‘Lascia ch’io pianga(울게 하소서)’ 등 바로크 컨셉트를 담았다. 고음과 기교 위주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에 편중된 국내에 보기 드문, 서정적이면서도 파워풀한 리릭 소프라노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앨범이다.

유튜브 촬영을 위해 노래를 부탁하니 웬만한 남자 성악가들 뺨치는 폭풍 성량이 고막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의 “화려하고도 풍부한 음성(Gorgeous! Rich and full voice)”이라는 감탄이 과장이 아니다 싶다. “휴스턴그랜드에 처음 가니 예술 감독께서 제 노래를 듣고 ‘너는 음악성이 좋은 게 아냐. 미친 듯이 좋아’라고 하셨던 게 기억나요. 당시 1000명쯤 오디션을 봤는데 집에 가서 생각나는 목소리가 제 목소리였다 하시더라고요. (웃음)”

“학교에서도 교수들이 ‘줄리어드의 보석’이라고 불렀다” “소프라노의 모든 역할이 다 자신 있다고 하면 안 되냐”는 당돌함이 밉지 않은 건 반박의 여지 없는 화려한 경력 덕분이다. 2017 설리번 국제콩쿠르 우승을 비롯해 휴스턴그랜드 영 아티스트 시절부터 ‘마술피리’ ‘라보엠’ 등 정통 오페라의 주역을 맡고,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에서 중국이 후원한 창작 오페라 ‘홍루몽’ 초연 주역까지 꿰찼을 만큼 근거 있는 자신감이다.

그 자신감은 “이렇게 노래만 부르면 행복한 게 맞나 회의가 들 정도로”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 받은 훈련으로 길러졌다. “배부른 소리 같지만 줄리어드에서 제게 기회를 몰아줬거든요. 대학원 때는 낮에 하나를 연습하고 밤에 다른 오페라를 연습하는데 그 와중에 내일 해야 하는 또 다른 앙상블을 외워야 하는 식이었죠. 그게 1년을 가니까 메일이 오는 소리만 들어도 무서웠어요. 안 한다고 할 순 없어요. 한번 거절하면 안 주니까요. 남들은 기회가 없어서 속상해하니 힘들단 말도 못하고 조용히 해내야 했죠. 그 힘들었던 시간이 결국 힘이 됐어요. ‘줄리어드에서 살아남으면 어디서든 살아남는다’는 말도 있거든요. 빡세기로 유명한 휴스턴 프로그램도 제겐 솔직히 수월하더군요.”

지난달 28일 데뷔 앨범 발매

2016년 샌프란시스코오페라 ‘홍루몽’ 초연에서 주인공 대옥 역을 맡았다. [사진 디지엔콤]

2016년 샌프란시스코오페라 ‘홍루몽’ 초연에서 주인공 대옥 역을 맡았다. [사진 디지엔콤]

미국에서 승승장구했지만 ‘본고장’에 대한 로망 때문에 유럽 진출을 준비했다. 그런데 독일 데뷔 직전 코로나19가 터져 별수 없이 돌아온 한국에서 “멘탈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가 되겠다며 조기유학을 떠난 지 15년 만에 미국인도 부러워할 커리어를 쌓고 돌아왔지만,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었다. “처음엔 자괴감이 들었어요. 미국에서 잘하고 왔어도 한국에서 커리어를 포장 못 한 저는 아무것도 아니더군요. 한국에서도 노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아직은 한국과 처음 미팅하는 느낌이라 설레요. 미국에선 더 이상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지만 여기선 마치 새로운 남자친구에게 나를 다시 얘기해주고 서로 알아가는 시간인 것 같아요.”

폭풍 성량과 비옥한 음색을 타고난 그는 4살 때 KBS ‘하나둘셋’에 발탁돼 노래에 입문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온갖 동요 대회와 성악 콩쿠르를 휩쓸었다니,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천서진과 오윤희 같은 라이벌 구도는 없었을까. “워낙 경쟁을 싫어해서 신경 쓰지 않고 살았는데, 비슷한 경우를 당한 적은 있어요. 미국에서 굉장히 중요한 오디션에 초청을 받았는데, 목을 풀러 간 화장실에 아는 언니가 따라 들어와 제 순서가 올 때까지 놔주지 않는 거예요. 목도 못 풀고 멘붕이 와서 결국 난생처음 오디션을 망쳤죠. 이후로도 그분이 비슷한 시도를 하셨지만, 저도 두 번 당하진 않았어요.(웃음)”

그의 한국 활동을 돕고 있는 건 팝페라테너 임형주다. 23년 차 가수인 그의 프로듀서 데뷔기도 한데,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인연이 있었단다. “예원학교 입시 때 저희 엄마가 학교 구경을 가서 예원 연주회 연습하는 걸 보고 오시더니 ‘임형주라는 남학생이 너무 잘하고 잘 생겼더라’고 하셨던 게 기억에 또렷하거든요. 그 후 입학해서 클래식 기타를 전공하는 아이와 절친이 됐는데, 알고 보니 그 친구의 오빠가 임형주라길래 너무 신기했죠. 이번에도 친구가 적극 다리를 놔서 도움을 받게 됐어요.”

인터뷰 현장에 동행한 임형주는 “동생이 1호 찐팬”이라고 소개했다. “동생이 자꾸 수아씨의 미국 활동을 소개하는데, 정말 잘하더군요. 만나보니 열정도 있고요. 좀 더 원숙해지면 앨범을 내고 싶다는 걸 ‘한국에선 젊음으로 어필해야 한다’고 설득했는데, 소니 클래시컬에서 수아씨의 노래를 들어보더니 파격적으로 3장을 계약하자고 역제안을 해왔죠. 오래 붙들어두고 싶은가 봐요.(웃음)”

스트라우스의 ‘살로메’가 꿈의 배역

2017년 미국 스폴레토 페스티벌 공연 모습. [사진 디지엔콤]

2017년 미국 스폴레토 페스티벌 공연 모습. [사진 디지엔콤]

바로크 컨셉트의 데뷔 앨범에는 헨델의‘Ombra mai fu(나무 그늘 아래서)’ 퍼셀의 ‘Music for a while(음악은 잠시동안)’ 카치니의 ‘Amarilli, mia bella(아름다운 나의 아마릴리)’ 등이 수록됐는데, 소위 ‘예원 실기시험 레퍼토리’ 란다. “사실 성악 시작할 때 부르는 가곡들이라, 오페라 가수가 가곡으로 데뷔 앨범을 내는 게 맞나 고민도 했어요. 하지만 바로크 음악이 마음이 지칠 때 힐링이 되는 노래기도 해서, 요즘 같은 시기에 성악도들에게나 청자에게나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중앙SUNDAY 유튜브 채널

중앙SUNDAY 유튜브 채널

미국의 소속사에서는 해외 활동 재개를 타진하고 있지만, 그는 올해 국내 활동에 전념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오직 오페라만 바라보고 살다가 한국에서 새로운 활동에 눈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다른 곳에 눈 돌릴 여유도 없었는데, 한국에 와보니 여러 분야에 관심이 가네요. 클래식뿐만 아니라 어떤 음악을 통해서든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아요.”

하지만 여전히 본업은 오페라 가수다. 천부적인 재능과 갈고닦은 내공을 발휘할 작품이 너무도 많다며 눈을 반짝인다. 그중에서도 첫손에 꼽는 게 리하르트 스트라우스의 ‘살로메’다. “미미나 토스카는 당연히 할 것이지만, 살로메는 테크닉도 연기도 난해한 역할이고 춤도 춰야 해요. ‘일곱 베일의 춤’이라고, 옷을 하나씩 벗다가 마지막에 다 벗는 춤인데 너무 매력적이죠. 한국에서 잘 공연되지 않는 이유도 소프라노를 구하기 힘들어서예요. 오케스트라가 너무 웅장해서 그걸 뚫어야 하는데, 제 목소리로 할 수 있거든요. 꼭 제 역할로 만들어 한국 관객에게 보여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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