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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릴러 버무린 늪같은 소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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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3호 21면

이번 여름 이 책들과 독서피서

코로나로 인해 여전히 바깥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역시 더위를 잊는 데나 유익한 재충전을 위해서나 독서가 유력한 대안이다. 중앙SUNDAY 출판팀과 교보문고 마케터들이 무겁지 않고 의미 있는 8권을 선정했다. 15일부터 다음 달 14일까지 교보문고 전국 15개 매장에서도 만날 수 있다.

영혼의 미로 1·2

영혼의 미로 1·2

영혼의 미로 1·2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엄지영 옮김
문학동네

세상이, 가령 정치판 같은 곳이 워낙 흥미진진하다 보니 책이 손에 안 잡힌다. 그래도 이 정도 소설이라면 세상 재미에 맞설 만하지 않을까. 슬그머니 권하고 싶은 책이다.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스페인 소설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에 대한 문턱이 존재하는 것 같다. 해외에서는 물론 아니다. 그의 대표작인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이 세계적으로 50개 언어로 번역돼 5000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저자가 단명했고(1964년생인 사폰은 지난해 대장암으로 세상을 떴다), 해외에서는 뜨거운데 국내에서는 한산하다는 점에서, 어쩐지 밀레니엄 시리즈의 스티그 라르손을 연상시키는 작가가 사폰이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사진 Carlos Ruiz B.K]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사진 Carlos Ruiz B.K]

물론 둘의 소설은 작가의 국적만큼이나 다르다. 밀레니엄 시리즈가 현대 스웨덴을 배경으로 한 범죄소설이라면 사폰 4부작의 완결편인 『영혼의 미로』는 스페인의 암울한 현대사를 관통한다. 그렇다고 역사 소설은 아니다. 영국 가디언의 평가처럼 여러 색깔로 반짝인다. 범죄 스릴러이면서 메타소설이고(이 소설 안에서 작가의 다른 소설이 여러 차례 언급된다), 비블리오픽션(bibliofiction), 그러니까 책에 대한 책, 거대한 미로 같은 도서관이 등장하는 책이다. 가령 이번 완결편의 매력적이고 모호한 여주인공 알리시아는 어린이 고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의 스페인식 이름이다. 그러면서도 소설은 스페인 내전과 그 후유증, 가령 1950~60년대까지 만연했던 스페인 사회의 폭력과 부패상을 건드린다. 인간 본성이나 삶의 의미 같은 철학적 성찰도 빼놓지 않는다. 단순한 장르소설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1권을 펼치면 꿈인지 상상인지, 어디부터가 현실인지 경계가 헷갈리는 첫 번째 장 ‘다니엘의 책’을 만나게 된다. 두 번째 장부터 화끈하다. 스페인 내전이 한창인 1938년. 파시스트군의 공습으로 바르셀로나는 녹초가 된다. 시체가 나뒹굴고 살 타는 냄새가 진동한다. 알리시아와 그녀의 수호천사 격인 페르민 역시 이 공습에서 살이 찢기고 뼈가 부서진다.

미국으로 건너가 영화판에서 일한 적이 있는 작가 사폰은 독자를 압도하는 폭력 장면을 건조한 문장들의 결합만으로 능란하게 펼쳐 보이는 달인 같다. 연약한 듯 표독한 알리시아가 깨지고 짓뭉개지면서도 최악의 악당들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과정이 소설의 뼈대다. 그 과정과 맞물려 범죄의 비밀, 관련된 인물들의 사연과 진실이 정교하게, 남김없이 드러난다.

1·2권 합쳐 1400쪽 가까운 대작이다 보니 읽는 내내 즐거울 수는 없다. 얽히고설킨 여러 가닥의 이야기 실타래를 따라가다 보면 소설 제목처럼 미로에 빠져드는 기분이다. 그런 낭패감이 소설을 읽게 하는 힘이 되는지 모르겠다. 4부작의 나머지들에도 도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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