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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시장 불났는데 정부 속수무책…가을 이사철이 더 불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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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3호 06면

악화하는 전세대란

“최근 59㎡(이하 전용면적)형 한 집이 전세로 나왔는데, 주말 끼고 한 주 새 15팀이 보고 갔어요. 기존 임차인이 살고 있는데, 집 보러 오는 손님이 많으니 임대인이 미안해하더라고요. 요즘은 원래 손님이 없을 때인데…. 다가올 가을 성수기가 심상치 않아요.”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요즘 전세 물건 자체가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임대차시장에선 요즘이 계절적 비수기다. 무더위에 장마까지 있어 전셋집을 보러 다니는 사람이 확연히 줄어든다. 그런 만큼 전세 물건이 쌓이면서 전셋값도 약세를 보이는 시기다.

25번 부동산 대책 중 전세대책 1번 #서울, 지난해 대비 물건 절반 이하 #비수기인데 공급 줄어 신고가 행진 #갭투자 늘어나 매매가 상승 우려 #금융·세제 혜택 등 방안 마련해야

지금까지는 대체로 그래왔다. 하지만 올해는 양상이 다르다. 수요가 준 건 맞지만, 전세 물건도 같이 줄었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인 아실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물건은 2만336가구로, 지난해 6월 말(4만2060가구)의 절반도 안 된다. 경기도 역시 2만1509가구로, 지난해 6월 말 3만8353가구의 56%에 그친다. 수요 또한 줄기는 했지만 전세 물건 자체가 확 줄면서 전셋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 특히 최근엔 지역을 막론하고 전셋값 ‘신고가’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신규 입주 물량 줄어 전세난 심화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84㎡형은 지난달 23억원(34층)에 계약됐다. 5월엔 같은 주택형 21층이 15억원에 나갔다.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아너힐즈 106㎡형 전셋집도 최근 25억원(6층)에 계약됐는데, 역대 최고가다. 금천구 독산동 롯데캐슬골드파크1차 84㎡형은 지난달 9억4300만원에 전세 신고가를 썼다. 이 아파트 전셋값은 3월만 해도 7억원 정도였다. 동작구 아크로태양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동작구 일대 84㎡형 아파트 전셋값은 최근 한 달 새 1억5000만원가량 뛰었다”며 “그나마 전세 물건이 없어 (집주인이) 갑자기 해외를 간다거나 지방으로 가는 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비수기인 데도 전세 물건이 없는 건 이른바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임대차신고제)과 정부의 주택 보유세 강화, 주택 공급 부족 등이 얽히고설킨 때문이다. 문제는 가을이다. 이사철이 다가온다고 해도 전세 물건이 늘어날 것 같지 않다. 전셋값이 오르면서 기존 전세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적극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규 수요는 있는데 기존 전세 물건 유통이 막힌 것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지난달 30일 하반기 전셋값은 임대차 3법으로 인한 매물 잠김 효과가 지속하면서 상반기와 유사한 수준인 2.3%(연 5%)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성환 건산연 부연구위원은 “통계는 2년 전 계약(계약갱신청구권)이 함께 집계되기 때문에 전망치보다 시민의 체감 상승률은 더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정부는 기존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 ‘수요-공급 총량’엔 변화가 없기 때문에 임대차시장이 불안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임대차시장엔 매년 새로운 수요가 생겨난다. 서울시에 따르면 3월 말 현재 서울의 가구 수(주민등록표 기준)는 440만여 가구로, 1년 전보다 5만여 가구 증가했다. 결혼·이직 등으로 분가를 했거나 지방에서 전입한 가구인데, 이 중 상당수는 새로 집을 얻어야 하는 신규 임대차 수요다. 정부 주장대로라면 전세 물건은 그대로인데 수요만 증가하는 셈이다. 10월 결혼 예정인 신모(30·경기도)씨는 “연초에 봐둔 지역에 전셋집을 구하려 갔는데 연초보다 1억5000만원을 더 달라고 해 포기했다”며 “부모님 도움을 받아 매수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기존 전세 물건이 시중에 나오지 않더라도 신규 입주 물량이 많으면 신혼부부와 같은 신규 임차인을 수용해 임대차시장이 안정세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부동산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하반기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2802가구로, 지난해 하반기 1만7182가구보다는 25.5% 줄어든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 실장은 “2019년 이후 신규 입주 물량이 계속 줄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값은 2019년 7월 첫째 주(1일 기준)부터 6월 넷째 주까지 103주 간 한 주도 쉬지 않고 올랐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25번의 부동산대책 중 전세대책은 지난해 11·19 대책 정도다.

이후에도 임대차시장 불안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렇다 할 대책이 없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전·월세시장 안정을 위해 11·19 대책 등에서 발표한 신축 매입 약정, 공공전세주택 등 하반기까지 3만8000가구, 2022년까지 총 8만 가구를 차질 없이 확보하겠다”고 강조한 정도다. 전문가들은 집값을 잡기 위해서라도 임대차시장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가 집값 잡기에만 혈안이 돼 있는데 집값을 잡기 위해서라도 임대차시장을 우선 안정화해야 한다”며 “전셋값이 뛰면 2016년 불었던 갭투자(전세 끼고 아파트 매입) 바람이 다시 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동산 대책이 전셋값 밀어 올려”

당시 전국엔 갭투자가 성행하면서 아파트값이 급등했는데, 갭투자가 많았던 건 전셋값 상승으로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치솟은 때문이다. 2016년 말 아파트 전세가율은 서울 75.1%, 경기도 78.9%, 전국 평균 75.6%로 사상 최고였다. 10억원짜리 아파트라면 2억~2억5000만원의 현금만 있으면 집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신용대출 등을 활용하면 실제로는 1억원도 안 되는 현금으로 10억원짜리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 부동산 전문가는 “대출 규제, 임대차 3법, 보유세 강화 등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전셋값을 밀어 올리면서 갭투자에 유리한 환경이 돼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최근의 전세난을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11·19 대책은 지난해 발표 직후부터 실효성 논란이 일었다. 시장에선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월세 물건을 전세로 돌릴 수 있는 방안 등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월세를 전세로 돌리면 한시적으로 금융·세제 혜택을 주는 것도 방법”이라며 “어떤 식이 됐든 정부는 가을 이사철 전세난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호텔거지’ 논란 부른 전세형 공공임대, 실제 공급은 태부족

11·19 전세대책은 계획대로 잘 되고 있을까. 정부는 지난해 11월 2022년까지 전세형 공공임대 11만4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이 안에는 비어 있는 호텔 등 비주택 리모델링 방안이 포함돼 있는데, 호텔을 개조하면 주거환경이 열악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호텔거지’(호텔에 사는 거지)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며 11·19 대책 전체가 비웃음거리가 됐다. 특히 ‘불’이 붙은 곳은 ‘아파트’인데, 공급 대책 대부분이 소형 주택이어서 실효성 논란이 일었다.

어쨌든 그나마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어느 정도 도움은 되지 않을까. 그런데, 그 마저도 잘 안된다. 정부는 11·19 대책 때 올해 상반기까지 전국에 4만9000가구(서울·수도권 2만4000가구)를 공급한다는 계획이었다.

유형별로는 공공임대 공실 활용(월세에서 전세로 전환) 3만9100가구, 중형 공공전세 3000가구, 신축매입약정 7000가구 등이다. 공공임대 공실은 기존 물량을 활용하는 것으로 실제로 이미 시장에 공급한 상태다. 하지만 공공전세는 상반기 880가구, 신축매입약정은 1400가구 정도에 그쳤다. 이 물량도 실제로 시장에 공급한 물량이 아니라 대부분 약정 체결이나 건축 인·허가 물량이다. 전문가들은 “공급 물량을 입주가 아닌 인·허가 기준으로 잡으니 시장과 괴리감만 생긴다”고 지적했다. 호텔 등 비주택 리모델링 사업은 상반기 공고를 내고, 사업지 5곳을 선정했지만 실제 공급이 언제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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