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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내 몸 사랑’ 표현, 효리 배꼽티가 돌아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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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3호 18면

[서정민의 ‘찐’ 트렌드] 코로나시대 복고 패션 바람

리조트 룩으로 출시된 ‘럭키슈에뜨’ 스트라이프 크롭톱. [사진 각 브랜드]

리조트 룩으로 출시된 ‘럭키슈에뜨’ 스트라이프 크롭톱. [사진 각 브랜드]

‘크롭톱’이 돌아왔다. 배꼽이 드러날 만큼 상의 길이가 짧아 일명 ‘배꼽티’라고도 불리는 옷이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유행했으니 20년 만의 컴백이다. 당시 ‘핑클’의 멤버 이효리, ‘룰라’의 채리나 등이 유행을 주도했다. 움직임 많은 격렬한 댄스를 주로 선보였던 이들은 다리통이 넓고 긴 힙합 바지를 치골에 걸친 후 크롭톱을 매치했다.

여행 막혀 집 근처서 주로 활동 #가볍고 운동하기 편한 옷 선호 #피트니스클럽에서 금방 나온 듯 #레깅스·크롭톱 입고 거리 활보 #20년 만에 ‘Y2K 패션’ 다시 유행

요즘 MZ세대는 이런 20년 전 복고풍 스타일을 ‘세기말 패션’ ‘Y2K패션’이라 부른다. 이용자 2억 명을 넘어선 3차원 증강현실(AR) 아바타 서비스 ‘제페토’에선 통 넓은 와이드 팬츠에 크롭톱을 입은 차림을 “세기말 감성의 Y2K 패션 아이템”이라고 소개한다. 인스타그램에선 해시태그(#) y2k, y2kstyle, y2kfashion을 검색하면 20년 전 복고풍 차림을 한 글로벌 MZ세대 사진 300만장을 찾을 수 있다.

1990년대 말 ‘룰라’ 채리나.

1990년대 말 ‘룰라’ 채리나.

실제로 뉴밀레니엄이라 불리는 2000년대를 앞두고 전 인류는 세기말 특유의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품었다. 여러 가지 혼란도 있었는데, 특히 2000년이 되면 컴퓨터가 오류를 일으켜 핵폭탄이 발사되거나 은행 계좌가 마비될 것을 걱정했던 ‘Y2K’ 해프닝이 유명하다.

‘핑클’ 이효리 등은 크롭톱 유행을 이끌었다.

‘핑클’ 이효리 등은 크롭톱 유행을 이끌었다.

예로부터 경기가 어려워지면 치마 길이가 짧아진다는 속설이 있다. 패션 업체들이 원가 절감을 위해 원단을 아끼려고 옷의 길이를 줄인다는 주장이다. 물론 여성의 치마 길이와 경제 상황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나 이론은 정설이 없고 의견만 분분하다. 그러니 배꼽 길이까지 짧아진 티셔츠의 길이 또한 우울한 경기 상황과는 무관할 터다. 다만 뉴밀레니엄을 앞둔 젊은이들이 세기말적 향락 분위기에 편승해 과감하고 자극적인 패션을 선호했던 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렇다면 지금의 크롭톱 패션은? 요즘의 MZ세대도 20년 전 못지않게 우울하다. 코로나19 정국에서 사회·경제적으로 한껏 위축됐고, 여행은커녕 외부 활동 전체가 금지됐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젊은이들은 긍정적인 돌파구를 잘 찾아낸 듯 보인다. 요즘 MZ세대의 유행 신조어는 ‘원마일 웨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집 안에서 또는 근처 1마일(1.6km) 반경 안의 지역으로 가볍게 외출할 때, 산책·운동 나갈 때 입기 좋은 옷차림을 말한다. 격식을 갖출 필요가 없으니 컬러와 디자인은 심플하고 편안함과 활동성은 강조한 트레이닝 복, 레깅스, 니트 카디건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근교로의 여행·캠핑 등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는 ‘투마일 웨어’까지 유행하고 있다. 일상생활과 여가를 동시에 즐기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한 ‘애슬레저 룩(athletic과 leisure를 합친 가벼운 스포츠 웨어)’은 더욱 진일보했다.

‘젝시믹스’의 크롭톱 헤바는 총 10가지 색상으로 출시됐다. [사진 각 브랜드]

‘젝시믹스’의 크롭톱 헤바는 총 10가지 색상으로 출시됐다. [사진 각 브랜드]

이 모든 유행어의 공통 키워드는 ‘운동’이다. 코로나19로 촉발된 건강 염려증,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자 오히려 트렌드가 된 루틴 만들기가 ‘오하운(오늘 하루 운동)’ 같은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를 만들어냈고 더불어 패션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운동할 때 좋은 복장은 움직임이 편한 크고 헐렁한 옷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움직임은 자유롭고 근육은 잡아주는 탄력 소재다. 특히 필라테스·헬스·요가·바이크 등은 근육의 움직임을 잘 관찰할 필요가 있고, 이때 신축성 있는 레깅스와 티셔츠가 유용하다. 열심히 운동해서 만든 11자 복근을 살짝 노출할 수 있는 크롭톱은 최상의 아이템. MZ세대는 이 레깅스와 크롭톱을 일상복으로도 활용하며 원마일·투마일 웨어로 즐기고 있다.

2022년 봄·여름 펜디 남성복 패션쇼. [사진 각 브랜드]

2022년 봄·여름 펜디 남성복 패션쇼. [사진 각 브랜드]

실제로 액티비티 브랜드 젝시믹스의 올해 2분기 크롭톱 카테고리 판매율은 전년 동기대비 약 30% 증가했다. MZ세대 인기 온라인 쇼핑몰 무신사에서 ‘크롭티(크롭톱 티셔츠)’를 검색하면 약 4000개의 상품이 검색된다. 아이돌 연예인 패션으로도 인기다. 걸그룹 ‘블랙핑크’의 제니, 현아 등의 인스타그램에는 크롭톱을 매치한 평상복 사진들이 자주 올라온다. 열정적인 가수 제시는 방금 피트니스클럽에서 빠져나온 듯 레깅스와 크롭톱에 데님재킷만 걸친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한다.

레깅스&크롭톱에 데님 재킷을 걸쳐 일상복을 연출한 가수 제시. [중앙포토]

레깅스&크롭톱에 데님 재킷을 걸쳐 일상복을 연출한 가수 제시. [중앙포토]

지난해 프로젝트그룹 ‘환불원정대’에서 활약할 당시의 이효리. [중앙포토]

지난해 프로젝트그룹 ‘환불원정대’에서 활약할 당시의 이효리. [중앙포토]

이한욱 스타일리스트는 “최근 1~2년 사이 허리선이 높은 하이웨이스트 바지·스커트가 유행인 것도 크롭톱의 인기에 한몫한다”며 “바지 허리가 높이 올라올 때는 상의를 짧게 입어야 다리도 길어보이고 날씬해 보인다”고 했다. 그는 “운동복과 차이를 두려면 크롭톱의 길이가 너무 짧은 것보다 허리 벨트 위 길이 정도로 배가 슬쩍슬쩍 보이는 정도가 감각적”이라고 조언했다.

‘블랙핑크’ 멤버 제니는 무대의상부터 평상복까지 크롭톱을 가장 잘 입는 연예인이다. [중앙포토]

‘블랙핑크’ 멤버 제니는 무대의상부터 평상복까지 크롭톱을 가장 잘 입는 연예인이다. [중앙포토]

신체를 많이 드러낸다는 점에서 레깅스와 크롭톱의 유행을 외모지상주의의 한 단면이라고 비판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꼭 S자 곡선의 몸매를 가져야만 크롭톱을 입는 것도 아니다. 내 몸 그대로를 사랑하는 ‘내 몸 긍정주의’는 운동하는 내 모습 자체를 즐기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크롭톱을 입을 자유를 주었다. 패션의 완성은 자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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