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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연설비서’ 강원국 “노무현과 이재명, 직설적인데 성격 달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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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무슨 평생직장인가. 왜 안주하려고 하나. 여기(청와대)서 보고 배웠으면 총선이든 지자체장 선거든 나가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선거철만 되면 참모들에게 선거 출마를 권유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정치권엔 지금도 노무현 ‘키즈’가 많다. 선거철마다 봉하마을은 노무현의 후광을 좇는 이들로 문전성시다.

강원국 前 청와대 연설비서관 인터뷰

반대 경우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정치 하지 말라. 그럴 묵기(재목)가 아니다”라고 말한 사람.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이다. 대신 그에겐 “청와대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쓰라”는 조금 다른 주문이 들어왔다.

노 전 대통령 바람대로 강 전 비서관은 2014년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을 썼다. 책은 30만부 넘게 팔려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후 그는 ‘회장님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를 연달아 썼다. 최근엔 말하기 관련 책인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를 냈다. “글을 잘 쓰려면 말하기가 먼저 잘 돼야한다. 말 같은 글이 좋은 글”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달변에 필력 좋은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연설참모였던 베스트 셀러 작가는 요즘 한국 정치의 말과 글을 어떻게 볼까. “다신 정치 관련 일은 하기 싫다”는 그는 인터뷰 내내 현실 정치 이야기가 나올 때면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강원국 작가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수경PD

강원국 작가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수경PD

8년 걸려 4급 행정관→2급 비서관

기업에서 청와대로 이직, 흔한 일이 아니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았을 때, 그의 연설문을 썼다. 이후 2000년 김대중 정부 중반쯤 청와대를 갔다. 기업에서 청와대를 가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실전에서 바로 경제 연설을 쓸 사람이 필요했다. 나 말고 몇 명 더 지원했던 걸로 안다. 테스트 겸 광복절 경축사도 써서 냈다. 그렇게 청와대에 갔는데 회사(대우증권) 다닌 10년 경력을 아예 인정 못 받았다. 군대 경력만 쳐줬다. 월급이 회사원 시절 3분의 1도 안 됐다. 그렇게 8년 동안 4급 행정관에서 2급 비서관까지 올랐다.
그런데 왜 갔나.  
주변에서도 “(대통령) 임기 끝나면 붕 뜨지 않느냐”며 말렸는데, 아버지께서 “가문의 영광”이라고 좋아하셨다. 직장 다니는 아내도 “해보고 싶으면 가서 해보라고” 했고.
강원국 참여정부 연설비서관은 "김대중과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에게서 말과 글의 기본을 배웠다"고 했다.

강원국 참여정부 연설비서관은 "김대중과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에게서 말과 글의 기본을 배웠다"고 했다.

기업 회장님과 대통령 글의 차이는.
정치인 글은 전략적이다. 말과 글의 목표가 명확하다. 결과에 대한 고민도 깊다. 명분도 중요하다. 근데 기업인은 명분보다 실리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인이 “돈 벌려고 기업하는 것 아니다. 사회 기여를 위해서 기업한다”고 말해서 그걸 곧이곧대로 쓰면 잘린다. 맥락이 중요하다.
이제 본인 글 쓰는데, 마음가짐이 조금 다른가.
대우나 청와대 있을 땐 ‘제품’ 만들고 월급 받았다. 지금은 내 이름을 건 ‘작품’을 만들고 그 값을 받는다. 지금 나한테 글 쓰라고 강요하는 사람 없다. 불안함도 있지만, 예전보다 좋다.
글 말고 ‘말하기’ 책 냈는데, 정작 “토론은 앞으로 절대 안 나간다” 선언했다.
강연은 좋은데 토론이 나랑 잘 안 맞는다.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말에 개입된다. 사람과 말을 구분하는 게 내공 아닐까. 그 사람이 싫다고 그 사람 말까지 싫어하지 않는 것. 자신이 아는 걸 전부 드러내지 않고 절제하는 것. 자기 감정을 적당히 드러내는 것. 이런 내공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난 그게 잘 안된다.  

“연설참모, 의견 피력보다 대통령 생각 잘 담는 게 중요”

대통령 연설문 쓸 때 가장 고민한 건 뭔가.
글쎄. 연설비서관은 자기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다. 가져서도 안 된다. 경제·외교·안보비서관은 정책 조언하고 연설 내용에 대해 자기 생각을 피력할 수 있는데, 연설비서관은 그렇지 않다. 대통령 생각과 하고 싶은 말을 잘 옮기는 게 연설비서관 역할이다. 내용을 왈가왈부하는 자리가 아니다.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대통령이 바뀌고도 청와대 남은 비결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에 파견 나갔다. 당선자 연설문을 50일 정도 썼는데 (대통령이) 아예 안 읽었다. 딱 한 번 한미 연합사 방문 연설문을 읽었다. 그 후 취임 당일 오찬사, 만찬사를 읽으셨다. 원래 밥 먹는 자리에서 절대 (연설문을) 안 읽는데, 그때 연설문을 찾으셨다. 그걸 읽곤 우리 방에 오셔서 “고맙다. 자네 덕분에 낭패를 면했다”고 했다. 그래서 (청와대에) 남게 됐다고 생각한다.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대통령 또 모셨다. 어려웠을 텐데.
취임 1년 지난 3·1절. 대통령은 일본의 역사 왜곡, 독도영유권 주장에 대해 강한 메시지를 내고 싶어했다. 그런데 전달자가 이걸 나름대로 (메시지 톤을) 누그러뜨려 내게 전했다. 나도 (톤을) 누그러트리며 연설문을 썼다. 대통령이 연설문 초안을 본 뒤 나를 “자르라”고 했다. 일개 연설 행정관이 말한 대로 안 쓰고 하나 마나 한 말을 대충 뭉개서 쓰니 항명했다고 판단한 거지. 민정 비서관실에서 조사 나오고, 경위서도 썼다. 이때 전화위복인지 ‘연설문 지시를 받고, 쓰는 사람이 같아야 한다’, ‘대통령과 직접 소통하려면 비서관이어야 한다’고 해서 승진도 했다. 연설비서관실이 본관 2층 집무실 옆 방으로 옮긴 것도 그 때다.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기념 단체 사진.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기념 단체 사진.

“(글이) 무슨 한정식 백반인가, 일품요리를 하라고”

김대중은 평면적, 노무현은 입체적인 글을 썼다고. 뭐가 더 잘 맞았나.  
지금 내 글은 김대중 대통령 스타일이다. 첫째, 둘째, 셋째 이렇게 정리해주는 글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경제·외교·문화적 측면을 다각도로 보셨다. 늘 위험한 상황에서 정치를 해와서 그런지 여러 면을 고려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다단계로 본다. 입체적이다. 사태 이유와 원인, 일이 미칠 파장과 영향을 따진다. 난 노 대통령 방식이 어렵더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면적이고 다각적인 스타일로 글을 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입체적이고 분석적인 글을 썼다. 필력 좋고 달변인 두 전직 대통령의 글쓰기 스타일은 많이 달랐다고 한다. 조은재PD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면적이고 다각적인 스타일로 글을 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입체적이고 분석적인 글을 썼다. 필력 좋고 달변인 두 전직 대통령의 글쓰기 스타일은 많이 달랐다고 한다. 조은재PD

‘노무현식 글쓰기’에 적응하면서 뭐라고 혼났나.    
“자네 (글이) 왜 이렇게 평면적인가. 이렇게 무슨 한정식 백반이야, 잔뜩 상에다 반찬을 차려놓고 뭘 먹으라는 거야. 된장찌개 백반이야, 김치찌개 백반이야. 일품요리로 하라고. 일품요리를. 음식에 이름이 있어야지”라고 노 대통령은 혼내셨다. 연설에서 핵심 메시지 하나만 파고들라는 뜻이다.
盧 대통령, 도발적인 연설 많았다. 참모들이 말리기도 했나.  
대통령 연설은 국가원수의 공식적인 말이면서 또 대단히 사적인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통령이 보통 자기 뜻을 관철한다. 물론 참모들은 연설문 독회(讀會)하고 논쟁 벌이며 대통령을 말리기도 한다. 가령 취임 첫 국회 의정 연설에서 안희정씨 나라종금 로비 의혹 관련해 “내가 책임져야 한다. 그의 일은 내 일이다. 나를 위해서 일하다 그렇게 됐는데, 나 몰라라 할 수 없다”는 말을 대통령은 하려고 했다. 참모들이 “이런 얘기는 정말 하면 안 된다”고 말려서 결국 불발됐다. 대통령이 고집도 세고 주관도 센데, 똑같은 일로 (참모들이) 두 번 (반대) 얘기하면 그땐 또 반드시 듣는다. 아니 들어주는 시늉이라도 한다. 막상 연설 가선 자기가 확실히 (말)해야 된다고 생각한 이야기는 어떻게든 한다. 심지어 “(참모들이) 이렇게 말하면 안 되고, 저렇게 말하라고 했다”는 그 말까지 다 한다. 그게 신뢰와 진정성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생각과 말이 다르지 않고, 앞과 뒤가 같은 것들.    

盧 “내 말 중에 쓰레기 같은 말 있다…그것만 담으면 쓰레기통”

“盧 대통령 언행이 가볍다”는 비판도 있었다. 연설 참모 입장에선 어땠나. 
대통령 언어에 대한 기대 수준이 너무 달랐다. “대통령 못 해 먹을 것 같은 불안감 든다” 같은 애드립이 기사화 됐다. ‘청와대 안과 밖에서 아는 게 같은 게 정상이다. 문턱을 없애야 한다’는 게 대통령의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기자들 질문에 절대 숨기지 말라. 비밀 없다’라는 분위기였으니 (청와대) 회의 참석자들도 들은 얘기를 밖에서 다 했다. 그 전에 경험 못 한 일이다. 또 대통령이 과도하게 그런 면도 있다. ‘강남 불패면 노무현도 불패다’ 같은 말을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본인도 알았지만 그렇게 해야 기사가 되니 말이 점점 거칠어진 측면도 있다. “내 말 중에 쓰레기 같은 말 있다. 그런데 쓰레기만 담으면 그건 쓰레기통이다”라고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파격적인 언행은 ″가볍다″″즉흥적″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파격적인 언행은 ″가볍다″″즉흥적″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당시 “너무 즉흥적이다”라는 비판도 많았다.  
아니다. 정말 워딩 하나 고를 때도 숙고했다. 누구보다 말과 글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모르겠다.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란 말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걸까. 아무도 모르지만, 그분만의 어떤 노력과 스타일이 있다. 거칠더라도 울림이 있다. 말 하나로 대통령 간 것 아닌가.
요즘 정치권은 거친 독설이 난무한다.
막말·망언을 할수록 자기 진영에서 박수받고 몸값 높아진다. 안타깝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대연정 제안하며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만드는 게 시대적 과제”라면서 “정권을 양보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건 진심이었다. 그만큼 절박했던 일이다. 그때보다 지금 상황이 더 안 좋다.

“盧, 좋은 기사는 바로 정책 반영…기자에 편지도 여러 번 썼다” 

“대통령 권위는 도덕적 권위에서 나온다”고 책에 썼다.
취임 1년 안 지나 최도술 총무비서관 비리 사건이 터졌다. 그때 노 대통령이 “(대통령) 재신임을 묻겠다. (최 비서관은) 오랫동안 같이 일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 잘못은 내 잘못이다. 유일한 밑천은 도덕적 권위인데. 그게 무너졌다”고 했다. 참모들은 ‘너무 과도하게 반응하는 거 아닌가. 오버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게 그분 진심이었다. 그냥 던진 말이 아니다. 도덕적 권위가 손상되고 흠집 나는 걸 용납 못 했다. ‘나를 내려놔야 그 대의를 지킬 수 있다. 내가 그 말을 욕되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지막에 몸을 던지신 것 아닌가. 일관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정부는 이런 도덕적 권위 잘 서 있다고 보나.
굉장히 위험한 질문이다(웃음). 얼마 전까지 라디오 방송을 진행했는데, 그만둔 것도 거기(정치권) 돌아가는 걸 봐야 돼서다. 너무 괴로웠다. 정말 극한 대립이다. 어느 쪽에 서도 욕을 먹는다. 상대 진영이 잘한 건 잘못했다고 하고, 우리가 잘못한 건 또 잘했다고 해야 한다.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 국민이 비슷하게 느끼고 그런 처지에 있지 않나 싶다. 정치가 한쪽을 선택하게 하고 그 한쪽에 서도 편하지 않다. 서로에게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감정을) 후벼 파는지 너무 잘 안다. 그게 점점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최도술 총무비서관 사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재신임~~

최도술 총무비서관 사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재신임~~

요즘 청와대 참모들 보면 SNS 같은 데서 개인적인 설전 잦다.
노무현 정부는 항상 공식 대응했다. 개인이 대응하는 게 아니라 청와대 브리핑을 매일 냈다. 왜곡 대응도 했지만 반대로 좋은 기사, 정책에 반영할 기사는 청와대가 부처에 직접 “반영하라”고 지시도 했다. 또 대통령이 직접 기자에게 편지도 썼다. 잘 안 알려져서 그렇지 대통령이 편지도 많이 썼다. 기자에게 “고맙다. 진짜 좋은 아이디어다”라고. “정부가 할 일을 어떻게 언론이 그렇게 깊이 들여다봤느냐”고 “어떻게 취재를 그렇게 잘했느냐”고 편지를 보냈다. 이런 대응이 물밑에서 암암리에 됐다. 대통령은 늘 “(청와대와 언론은) 긴장 관계에 있어야 된다. 영합하면 안 된다. 투쟁관계가 아니라 발전적인 방향을 찾는 긴장 관계가 돼서 서로 경쟁하자”고 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 그런 역할은 (하지) 않는다. 홍보수석실이 오보 대응도 했지만 좋은 기사는 수용하고 민첩하게 대응했는데, 이제 그런 건 없어진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책에 반영될만 한 좋은 기사를 쓴 기자들에겐 직접 편지를 여러 차례 썼다고 한다. 또 청와대와 언론의 건강한 긴장 관계를 강조하며 영합을 경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책에 반영될만 한 좋은 기사를 쓴 기자들에겐 직접 편지를 여러 차례 썼다고 한다. 또 청와대와 언론의 건강한 긴장 관계를 강조하며 영합을 경계했다.

盧 대통령 정치철학을 ‘억강부약’이라고 했다.  
대통령직 인수위 첫날. 노 대통령 일성이었다. “억강부약은 자신의 정치철학”이라고 했다. 강한 걸 무조건 누르는 게 아니고, 강자의 불의나 부정을 규제하고 통제하자는 것이다. 원래 정치가 그런 거 아닌가. 잘나가는 사람을 더 잘나가게 만들고, 어려운 사람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게 정치는 아니지 않나. 이게 평준화를 말하는 게 아니다. 약육강식이나 정글이 되는 걸 막겠다는 거다.
이재명 지사도 대선 출마하며 ‘억강부약’ 내세웠다. 노무현과 이재명은 비슷한가.
살아온 이력이나, 변호사를 거쳐 정치 입문한 과정은 비슷한데, 그 밖에 비슷한 점은 찾기 어려운 것 같다. 두 분 다 직설적인 편이지만 성격도 좀 다른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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