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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혜련의 휴먼임팩트

선출직 후보자의 자격시험 성공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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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최근 공정성 이슈와 함께 능력주의에 대한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채용이나 승진에서 개인의 능력을 최우선시하는 것은 승자독식의 사회적 불평등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하지만 직무수행 본질과 관련 없는 출신학교, 인맥, 가족배경 같은 요소가 더 크게 작용하여 개인의 능력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여 좌절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시험으로 정당후보자 뽑아도 #최종 선출은 결국 유권자의 몫 #혁신적 실험이 성공하려면 #국민의 후보평가 안목도 중요

직무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은 민간기업이나 일반 공무원 채용에서는 보편적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5급, 7급 공무원 공채에도 ‘공직적격성시험’이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선출직 공무원 후보자 선별에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자격시험을 최초로 도입하겠다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제안은 혁신적 실험으로 보인다. 이 실험이 성공하여 우리나라 정치풍토를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몇 가지 이슈를 제기해 본다.

우선 인간의 능력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능력은 다양한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지능(IQ)이라 불리는 ‘인지적 능력’을 비롯하여 자신과 타인의 정서를 이해하고 대처하는 ‘정서적 능력’(EQ), 그리고 ‘신체적 능력’이 포함된다. 이준석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자격시험의 내용으로 독해력이나 자료 해석력 등을 언급했으므로 아마도 인지적 능력을 평가하려는 것으로 짐작된다.

지방선거에서 선출되는 자치단체장은 국민의 막대한 세금을 예산으로 편성하고 집행한다. 이들 단체장을 견제하고 감사하는 지방의회 기초·광역의원들의 기본 능력과 역량이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서울시만 하더라도 연간 40조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시의회가 얼마나 정당하게 심사하고 승인하는지 시민들은 잘 알지 못한다. 각 정당이 후보자의 능력 검증을 철저히 해준다면 국민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휴먼임팩트 7/2

휴먼임팩트 7/2

우리가 몸무게를 재기 위해 체중계에 올라가듯이 인간의 인지능력을 재는 기계가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많은 지원자의 인지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으로 지금까지는 시험(test)이 가장 효율적인 대안이므로, 이 대표의 제안은 나름 타당하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일이든 직무 성과는 능력과 함께 태도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여기서 태도란 개인의 적응 노력, 의지, 열정 등을 담아내는 지표다. 능력과 태도 모두 좋은 후보가 우수 인재이지만 둘 중 하나만 좋은 경우가 많기에 결정이 어려운 것이다. 일은 잘하지만 뺀질하거나 이기적인 사람과 매사에 성실하고 협조적이지만 성과는 다소 뒤지는 사람이 있다면 고민된다. 기업 CEO들에게 물으면 대개 후자를 택한다. 태도가 좋은 사람은 조직을 위해 양보나 희생을 감수하는데 능력만 좋은 사람은 불만이 생기면 쉽게 떠나기 때문이다. 기성 정치인들이 선출직 후보자 능력시험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것은 바로 이러한 태도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일 것이다.

지방선거에 나서는 출마자들의 기본자질을 검증하기 위해 1단계로 능력시험을 보고 합격자를 대상으로 2단계에서 면접을 본다고 가정하면 능력(시험점수)과 태도(면접점수)가 서로 상쇄될 가능성이 있다. 시험의 합격 여부를 결정할 커트라인 점수를 어떤 근거로 정할 것인지가 중요한데 과거 경험치가 없어 난감하다. 만일 깐깐하게 합격점수를 설정하면 시험점수는 낮아도 태도가 좋아 성공할 수 있을 후보자는 탈락한다. 반면 시험에 능숙한 지원자들은 대거 면접단계까지 진출하여 최종후보자가 될 수 있으나 조직에 대한 협조성이나 주민에 대한 공감능력은 1차 탈락자보다 부족할 수 있다. 이런 우려 때문에 합격점수를 대폭 낮춘다면 시험의 변별력이 사라지게 된다. 그런 경우라면 차라리 시험 대신 최종후보자 선정 후 교육·훈련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에 자격시험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더라도 정당의 역할은 후보자를 정하는 데에 그치고 결국 최종 선출 여부는 유권자의 몫이다. 기존 방식으로 후보자를 선정했을 때보다 더 많은 후보가 당선되는 지가 관건이다. 정치 소비자인 유권자가 자격시험을 통과한 신상품 후보에게 더 많은 지지를 보내려면 과거 후보들과는 다르고 더 매력적이라고 판단해야 한다. 기업들이 앞다투어 신상품을 시장에 내놓지만 소비자의 친숙한 입맛을 거슬러 낭패 보는 사례도 종종 있다. 이번 자격시험제도가 기대효과를 거두려면 선출직 후보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평가 안목을 높이는 노력도 함께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