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플] 의장님, 어디로 가시나이까? 이해진·김범석 향한 물음표

중앙일보

입력 2021.07.02 05:00

그래픽=정다운 인턴

그래픽=정다운 인턴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회사와 더 멀리 떨어지겠다”고 했다. 지난 5월 있었던 네이버 직원 사망 사건에 대해 30일 전 직원에 보낸 사과 이메일에서다. 지금도 회사와 거리는 꽤 멀다. 직함은 글로벌투자책임자(GIO)인데, 직급상으로는 네이버에 100명 넘게 있는 미등기임원 중 한 명이다.

국내 경영과 ‘거리 두기’ 중인 건 김범석 쿠팡 창업자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 5월 ㈜쿠팡 이사와 의장직을 사임했다. 이유는 ‘국내 경영 대신 글로벌에 집중하겠다’는 것. ㈜쿠팡의 모회사이자 뉴욕증시 상장사인 쿠팡 Inc.의 대표 및 이사회 의장직은 유지한다.

표면적으로 두 창업자는 국내 경영을 주관하지 않지만, 중요 사안일수록 다들 창업자를 바라본다. 여기서 짚어볼 점은.

#1. 욕심이 없나

IT 기업 창업자가 경영진에서 빠지는 건, ‘가진 지분은 적은데 과도한 경영권을 휘두른다’고 비판받아 온 기존 대기업들의 과거와 반대로 보이기도 한다.

이해진 창업자는 2004년 CEO직을 내놨고, 2017년에는 의장직을, 2018년엔 등기이사직을 그만뒀다. 현재 A홀딩스(네이버와 소프트뱅크 합작사) 대표 외에 계열사 겸직도 없다. 이 GIO의 네이버 지분은 3.73%로, 창업 1세대 치고 적은 편이다. 창업 초기부터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유망 기업을 주식교환 방식으로 인수해, 그때마다 본인 지분이 줄어든 것. 업계에선 “자기 지분 희석을 개의치 않고 사업적 결정을 내린다”는 데 높은 점수를 준다. 지분이 적다고 경영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이기도.

김범석 창업자의 쿠팡 Inc 지분은 10.2%. 최대주주인 소프트뱅크 지분(33.1%)의 3분의 1도 안 된다. 그러나 김범석의 경영권은 강력하다. 대주주들이 차등의결주식 보유를 동의해준 덕에 그는 76.5%(5월 기준)의 의결권을 가졌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좌),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우). 사진 중앙포토

김범석 쿠팡 창업자(좌),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우). 사진 중앙포토

#2. 책임이 없나

한 편으로는 ‘책임 회피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이들이 불편해하는 그룹 총수(동일인) 지정과 규제, 국정감사 출석, 각종 법적 책임에 대해서.

쿠팡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졌다. 물류센터 화재 발생 직후, 김범석 창업자의 ㈜쿠팡 의장직 사임이 알려졌기 때문. 쿠팡은 별도 자료까지 내서 ‘이사직 사임은 화재 발생(6.17) 전인 5월 31일 등기 완료됐고, 늦게 알려졌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민감한 노무·안전 문제에서 창업자가 거리를 둔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화재사고 입장문도 강한승 ㈜쿠팡 대표 명의로 냈다.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지난달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김범석 쿠팡 Inc 대표의 올해 기본급은 85만 달러(약 10억원). 지난해와 비슷하다. 다만 김범석 대표는 지난해 148억원의 주식 보상을 받았다. 쿠팡 매출은 올해도 대부분 한국에서 나올 텐데, 국내 경영에서 손 뗀 김범석 대표가 올해 주식 보상을 얼마 받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그간 이해진 GIO는 ‘네이버 총수’를 피하려 애썼다. 2017년 네이버가 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될 무렵, 직접 공정거래위원회를 찾아가 ‘나는 지분도 적고, 네이버를 지배하지 않는다’라고 호소했다. 2017~2018년 네이버 주식을 2300억원 규모 이상 팔아 개인 지분을 낮추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총수로 지정됐고, 2017·2018년 국회 국정감사에 2년 연속 증인으로 출석해 네이버 뉴스 편집과 드루킹 사태 등에 대해 곤란한 질문을 받았다. 이해진 GIO는 지난해 급여로 네이버 본사 C레벨 경영진보다 적은 20억원을 받았고, 스톡옵션은 받지 않았다.

#3. 사실은 오래된 질문

글로벌 스탠다드는 대표이사와 의장을 분리해 상호 견제하는 것이다. OECD ‘기업지배구조원칙’은 “동일인이 CEO와 의장직을 겸할 경우 기업은 그 이유를 공시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지난 2019년 국민연금(당시 대한항공 2대 주주)이 조양호 전 회장(대표이사 겸 의장) 연임에 반대표를 던져, 조 전 회장이 경영권을 잃었다. 주주 권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지난해 한진칼에 8000억원을 수혈한 산업은행도 대표이사/의장 분리를 정관에 못 박을 것을 회사에 요구했고, 반영됐다.

반면, 2019년 열린 SK 주주총회에서는 국민연금의 반대(당시 지분 8.4%)에도 불구하고 최태원 회장이 사내이사 연임에 성공했다. 출석 주주의 과반이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재계에서는 “장기적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오너의 경영을 원하는 주주도 많다”고 주장했다. SK는 이때부터 의장을 사외이사가 맡는다.

한국증권거래소 산하 기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매년 상장사 지배구조를 평가해 등급을 발표한다. 그런데 ‘오너=대표이사=의장’ 구조인 엔씨소프트와 현대자동차도 A 등급을 받았다. 기업지배구조원 측은 “오너의 겸직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지분 적은 창업자가 의사결정에 크게 관여해 주주-대리인(경영자)이 어긋날 때가 문제”라고 했다.

#4. IT업계 의장님은 상왕?

한국 IT업계는 그야말로 ‘창업자 의장님’ 전성시대다. 이해진 창업자가 도입한 모델을 너도나도 따른 것. 김범수(카카오), 장병규(크래프톤), 방준혁(넷마블), 김대일(펄어비스), 김봉진(우아한형제들), 최근에는 조만호(무신사) 의장까지.

의장이 되면 아무래도 법적·사회적 부담이 줄어든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는 책 ‘지속가능한 혁신공동체를 향한 실천전략’에서 “의장님이란 애매한 입지를 택함으로써, 정부 행사 참여 같은 번거로움이나 규제로 인한 대표이사의 법적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IT 업계 관계자는 “IT 창업자들은 직원이 좀 늘면 경영을 골치 아프게 여겨, 전문경영인에 넘기고 자신은 좋아하는 신산업 발굴 등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창업자의 사내 영향력은 여전하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관계자는 “형식적 이사회의 독립성보다도, 사외이사가 사업 내용을 파악하는 전문성을 갖췄는지, 창업자 의견에 반대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네이버 노조는 “이해진 GIO는 이사회에 없지만, 실상 네이버의 모든 것은 그가 결정한다”고 했다.

빅테크 창업자들

빅테크 창업자들

#5. 해외 빅테크는

많은 경우, 미국 창업자는 오래도록 현업에 남아 CEO로 재직하면서 의장까지 한다. 현역 중엔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퇴역 중엔 20년 이상 CEO로 재직한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MS)나 제프 베조스(아마존)가 대표적. 베조스는 7월부터 CEO직을 내려놓고 이사회 의장만 맡는다.

반면, 구글의 초기 투자자들은 대학원생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곁에 연륜 있는 에릭 슈미트를 붙여줬다. 전문경영인 슈미트는 10년간 구글 CEO를 맡아 회사를 키웠다. 현재 구글과 모회사 알파벳 CEO는 모두 순다 피차이가 맡고, 창업자 페이지와 브린은 알파벳 이사회 일원이다.

경영 능력에 문제가 있는 창업자를 이사회가 쫓아내기도 한다. 우버의 트래비스 캘러닉, 위워크의 아담 노이만 등이 그 사례. 스티브 잡스도 한때는 애플의 쫓겨난 창업자였다. 한편으로는 일만 잘한다면 겸직도 시킨다. MS는 지난달 사티아 나델라 CEO를 이사회 의장도 겸하도록 하면서 “사업에 대한 깊은 이해를 지렛대 삼아 이사회 의제 설정을 이끌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모바일 전환에 뒤처졌던 MS를 되살려놓은 능력을 인정한 것이다.

팩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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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6월 29일 팩플 뉴스레터로 구독자들에게 발송된 '의장님, 어디로 가시나이까'의 요약본입니다. 뉴스레터 전문을 읽고 싶으시면 이메일로 구독 신청하세요. 요즘 핫한 테크기업 소식을 입체적으로 뜯어보는 ‘기사 +α’가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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