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 충격, 긴장감 조성 유턴

중앙일보

입력 2021.07.02 00:34

업데이트 2021.08.2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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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정은 집권 10년의 기록

북한이 지난달 29일 개최한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정치국 성원을 해임했다. 이병철(오른쪽 원)과 박정천(왼쪽 원)이 선거를 뜻하는 손을 들지 않아 인사 대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달 29일 개최한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정치국 성원을 해임했다. 이병철(오른쪽 원)과 박정천(왼쪽 원)이 선거를 뜻하는 손을 들지 않아 인사 대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올해 집권 10년 차를 맞으며 홀로서기에 나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조함이 엿보인다. 1년에 1~2차례 여는 전원회의를 1월과 2월 그리고 지난달에 열었다. 또 회의를 열면 여지없이 정치국원(상무위원, 위원, 후보위원)을 교체했다. 지난 1월 임명한 당 경제부장(김두일)을 한 달 만에, 당 선전비서(박태성)를 임명 6개월도 안 돼 해임했다. 지난달 29일에도 최고위급 간부의 해임과 ‘조동’(이동)이 있었다.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았다. 한 달도, 여섯달도 기다리지 못하는 모양새다. 대외 정세가 녹록지 않은 탓인지, 이 기회에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당시 국가 비상경영을 하며 나타난 병폐의 청산, 즉 북한식 적폐청산인지 내부 단속에 고삐를 죈다. 고모부 장성택과 군부 핵심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각각 2013년, 2015년 처형하며 긴장을 조성했던 것과 유사하다. 집권 초기 보였던 통치술을 10년이 지난 뒤에도 되풀이하는 모양새다.

잦은 교체 인사와 긴장 조성으로 집권 초 모습 재현하고
하노이 회담 앞두고 당 국제부-외무성 격론 벌이기도
경제·대외관계 녹록지 않자 사상전 강화하며 내부 단속
‘홀로서기’ 추진 속 북 매체 “김정은, 영원히 한 길을 가리라”
김정일 방식대로 외부와 소통·개방으로 정상화로 나오길

김정은 정권이 출범한 직후 그를 따라 다녔던 수식어는 ‘파격’과 ‘이례적’이다. 부인 이설주 여사와 팔짱을 끼고 대중 앞에 나서는가 하면, 마이크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이 그랬다. 미국 프로농구계의 이단아로 불렸던 데니스 로드먼을 불러 만나고, 한국과 미국에 정상회담을 제안하는 등 거침없이 외교무대에 뛰어들었다. ‘은둔의 지도자’로 불리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랐다. 형식적으로나마 정상국가를 지향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런 그가 요즘 달라졌다. “우리(북한)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게 하지 않겠다”(2012년 4월)던 김정은의 자신감은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부강, 자력번영하여 나라의 존엄을 지키겠다”(2019년 12월)로 바뀌었다. 북한은 연일 사상전을 강조하며, 주민 동원에 총력전이다. 140㎏을 넘겼던 체중은 시곗줄과 옷이 헐거워 보일 정도로 줄었다.

전환점은 하노이에서 열린 2019년 2차 북·미 회담이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을 앞두고 노동당 통일전선부와 외무성이 ‘노선 투쟁’으로 불릴만큼 격론을 벌이며 치밀한 준비를 했다. 앞서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담판에서 새로운 북·미 관계 개선과 적대정책 철회라는 약속을 받아놓은 터라, 하노이 담판에서 제재 해제로 연결시키느냐가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는 공약의 성패를 가를 요소였다.

당시 논쟁에서 과거 “뒤통수를 맞은 적이 있다”는 외무성의 논리에 통전부는 싱가포르 1차 회담의 ‘성과론’으로 맞받았다고 한다. 통전부는 “과거 외무성의 협상은 1대 1이었지만 이번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도 있지 않느냐”는 취지의 주장도 펼쳤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보다 적극적인 협상을 주장했던 통전부의 손을 들어 줬고, 2019년 2월 하노이 담판에 나섰다. 하노이 멜리아 호텔의 김 위원장 숙소는 회담 전날 밤새 불을 밝혔다. 회담장에 나타난 김 위원장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그가 회담 준비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영변을 내놓을 테니 인민 생활과 관련한 제재 5개라도 풀라”며 접근했던 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의 ‘NO’로 결렬됐다.

회담 결렬의 후과는 컸다. 정권 안정화→경제 발전 전략 마련→대외 행보→제재 해제→인민생활 발전(단번도약)으로 연결지으려던 5단계 국정운영 구상은 3단계에서 멈췄다. 무엇보다 주민들에게 회담 결렬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김 위원장으로선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최고 지도자의 결정은 오류가 없기에 신조로 삼고,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40년 넘은 북한 작동 논리(유일사상 10대 원칙)가 치명상을 입을 처지였다. 평양 주민들의 ‘열렬한’ 환송을 받고 떠났지만, 빈손 귀국을 하게 됐다. ‘최고존엄의 영상(이미지)’은 흐려질 위기였다. 베트남 일정을 축소하고 귀국하는 기차 안에서 김 위원장은 “내가 이러려고 60시간 기차를 타고 왔냐”는 탄식을 했다는 후문이다. 김 위원장은 보름 뒤 초급 선전일꾼 대회에 서한을 보내 “수령을 신비화하지 말라”며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수령도 실수를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직후부터 북한이 남북관계를 차단하고 나섰다는 점을 고려하면 하노이 회담 결렬의 책임을 한국 탓으로 돌리기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중재인으로 각광받았던 청와대를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부부장이 대놓고 막말 공격을 한 게 방증이다. 손에 잡힐 듯한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은 ‘장기전’으로 미뤄졌다.

이런 와중에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개정한 당 규약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표현을 대거 삭제했다. 또 차기 지지세력인 청년 동맹의 이름도 김일성·김정일주의 청년동맹에서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으로 바꿨다. 집권 10년 만에 홀로서기에 나서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코로나19와 자연재해, 대북제재로 불리는 삼중고로 녹록지만은 않다. 지난해 4월 15일(북한은 태양절)과 당창건 기념일(10월 10일)까지 각각 완공을 지시했던 갈마휴양지와 평양종합병원의 공사를 끝내지 못했다. 김 위원장의 ‘인민사랑’을 보여주려던 야심찬 계획이 대북제재 등으로 차질을 빚고 있다. 대외 협상이 재개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달 28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과 관련한 장문의 특집 기사를 실었다. ‘승리와 영광으로 빛나는 위대한 혁명영도의 10년’이란 제목이다. 신문은 “기적의 세월을 안아온 우리 조국의 10년, 참으로 많은 것을 보았으며 체험했다”고 지난 10년을 정리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의 말을 실었다. “10년간 나의 사업을 총화(결산)해보면 위대한 수령님(김일성)과 위대한 장군님(김정일)께서 열어주신 주체의 한 길을 따라 걸어온 나날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영원히 한 길을 가리라’, 바로 이것이 나의 신념이고 의지”라고 밝혔다. 하노이의 충격 이후 김 위원장은 46년을 지도자로 있었던 할아버지와 후계자 생활을 포함해 37년간 권좌에 있었던 아버지의 경험을 반추해 본 듯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극도의 경제난에 처했던 1997년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를 바라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5년 뒤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통해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했다. 남북 정상회담을 갖고 소원했던 북중 관계도 복원했다. 결국 외부와의 소통이 정답이었던 셈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남측 언론사 사장단 방북 때 전주 김씨의 시조 묘소 방문 의사를 내비친 적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말한 ‘한 길’이 은둔의 길이 아닌, 외부와 소통하고 단번도약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개방의 길이 되길 기대해본다.

고개숙인 두 남자, 그들의 운명은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달 3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정치국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를 방영했다. 이날 오전 노동신문 등 활자 매체에 이어 회의 결과를 동영상으로 제작해 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다. 15분 3초 분량으로 편집된 영상에선 두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이병철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박정천 총참모장 등 김정은 시대의 핵심 군부 두 명은 회의 내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전 회의에서 김 위원장을 보거나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과 달랐다.

두 사람은 회의 막바지에 정책 결정 핵심기구인 정치국 성원을 선거하는 동안 각각 투표권이 있는 정치국 상무위원과 위원이었지만, 다른 이들과 달리 손을 들지 않았다. 정치국은 회의 안건을 표결에 부쳐 투표를 할 때 손을 들어 찬성을 표시한다. 북한 매체들이 그동안 정치국 회의 결과를 전하면서 만장일치 찬성이라고 전했던 점을 고려하면 대단히 이례적인 장면이다. 두 사람이 투표 안건에 반대했거나 이들이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내용 즉, 본인의 해임과 관련한 것일 수 있다는 짐작이 가능한 대목이다.

특히 영상에서 “정치국 상무위원과 위원을 해임하고 선거했다”는 설명의 자료화면으로 이 장면이 방영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날 두 사람의 신상에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 당국은 아직 누가 이날 인사 대상이었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각각 한 때 김 위원장과 맞담배를 피고, 군사 전술의 과외 교사로 알려지며 승승장구하던 이들이 실각한 것이라면 김 위원장의 공포정치가 재현될 신호탄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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