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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이길 수도, 질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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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전문기자

장혜수 스포츠전문기자

2020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0)가 열기를 더해간다. 지난해 열렸어야 할 대회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1년 미뤄져 열렸다. 더 기다려서일까, 팬데믹에 억눌린 욕망 때문일까. 선수도, 팬도 여느 때보다 뜨겁다.

스포츠 경기에서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오거나, 예상한 결과라도 그 과정이 손에 땀을 쥐게 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 있다. ‘극적인 승부’ 또는 ‘각본 없는 드라마’다. 클리셰 같지만, 더 나은 걸 찾기 쉽지 않다. 이번 대회에서 그런 승부를 꼽아보자.

먼저 지난달 22일 열린 덴마크와 러시아의 B조 조별리그 3차전이다. 덴마크는 13일 1차전에서 핀란드에 0-1로 졌다. 진 게 다가 아니다. 더 큰 일이 있었다. 팀의 에이스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경기 중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절명의 위기는 넘겼지만 더는 뛸 수 없었다. 덴마크는 18일 2차전에서 벨기에에 1-2로 또 졌다. 탈락이 유력했던 덴마크. 그러나 러시아를 4-1로 대파했다. 그 결과 골 득실로 조 2위가 됐고 16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27일 16강전에서 웨일스를 4-0으로 꺾고 8강에 진출했다. 와우. 유틀란드 반도의 황무지를 옥토로 일궈낸 엔리코 달가스의 후예답지 않은가.

모든 승부에는 환호와 비탄이 교차한다. [EPA=연합뉴스]

모든 승부에는 환호와 비탄이 교차한다. [EPA=연합뉴스]

토너먼트가 시작됐다. 단판 승부는 더욱 잔인하다. 지난달 29일 열린 프랑스와 스위스의 16강전. 프랑스가 어떤 팀인가. 킬리앙 음바페(파리 생제르맹), 앙투안 그리즈만(바르셀로나), 폴 포그바(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은골로 캉테(첼시), 카림 벤제마(레알 마드리드) 등 면면만 봐도 압도적이다. 게다가 2018 월드컵 챔피언이다. 절대 열세인 스위스는 경기를 승부차기까지 끌고 갔다. 스위스 골키퍼 얀 좀머가 프랑스 마지막 키커 음바페의 슛을 막았다. 프랑스 심장에 화살을 꽂은 윌리엄 텔의 후예들이라니. (정작 가극 ‘윌리엄 텔’은 이탈리아 작곡가 조아키노 로시니가 프랑스에 줬던 선물인데.)

‘축구 종가’ 잉글랜드는 지난달 30일 16강전에서 독일을 2-0으로 꺾었다. 더구나 그곳은 ‘축구의 성지’ 영국 런던 웸블리 경기장이었다. 응원가 ‘삼사자 군단(Three Lions)’ 합창이 울려 퍼졌다. 화제가 된 1990년대 잉글랜드 축구 스타 게리 리네커의 말 바꾸기는 이 승부의 정곡을 찌른다. 리네커는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4강전에서 잉글랜드가 독일(서독)에 지자 “축구는 단순한 게임이다. 90분 동안 22명이 공을 쫓는데, 결국은 독일이 늘 이긴다”고 자조했다. 당시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갔고 리네커는 골을 넣었지만 잉글랜드는 3-4로 졌다. 그런 그가 이번 승리 직후 “‘독일이 늘 이긴다’는 문구는 편히 잠들라”고 트윗을 날렸다.

몇 번 졌다고 끝은 아니며(덴마크), 강자가 늘 이기는 것도 아니다(프랑스). 결국 누구나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잉글랜드·독일). 스포츠 경기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 삶이 다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