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출마선언 첫날 이재명 경기지사의 일정은 ‘정면돌파’에 초점이 맞춰졌다. 야도(野都)이면서 자신의 고향인 TK(대구·경북)을 찾아 교두보를 마련함과 동시에, 이른바 폭언 사건 등 가족사 논란에 대해서도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지사는 이날 오후 5시 경북 안동의 경북유교문화회관에 있는 유림서원을 찾았다. 오전 현충원 참배, 공명선거 서약식 등 당 공식 행사를 제외하면 사실상의 첫 공개 일정이었다. 안동은 이 지사가 13세까지 유·소년기를 보낸 곳이다. 이후 경기 성남으로 이주해 ‘무수저 소년공’ 시절을 거쳐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대선 출마 선언 직후 자신의 뿌리부터 찾은 것이다.
이 지사는 이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제 어머님, 아버님, 조부모 증조부모님의 선영이 있는 고향이기도 하고, 제가 태어나서 어릴 적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제가 삶을 정리할 때 저 역시도 여기에 묻힐 가능성이 높다”고 방문 이유를 설명했다. 이 지사는 이 자리에서 지역 유림과 고향 어르신들을 만나 큰절을 올리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 지사는 이어 “과거 군사독재 정권이 영호남을 분할해 지배전략으로 차별을 했을 때 상대적으로 영남이 혜택받았는지 모르지만 이젠 세상도 바뀌고 정치구조로 바뀌어 오히려 영남이 역차별받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지사는 또 “정말 지역에 도움이 되는 정치인이 누군지 판단해 달라. 억울한 사람도, 지역도 없는 공정한 세상을 만든다는 측면에서 저보다 나은 정치인은 없다고 자부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어디에 속했는지 입은 옷 색깔이 뭐가 중요하냐. 국가와 국민 중심으로 판단해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현장에는 200여명가량의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이 지사를 환영했다. ‘이재명은 합니다’ ‘대동세상’ 등 팻말과 함께 파란 풍선을 손에 든 채였다. 거리에도 ‘이재명 지사의 고향 방문을 환영합니다’ ‘안동사람 이재명! 대통령 이재명!’ 같은 응원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나부꼈다. 이 지사 지지모임인 민주평화광장 소속으로 구미에서 찾아온 윤영철(56)씨는 “그동안 TK 대통령들이 여럿 나왔음에도 경북 북부는 항상 소외됐다. 지역에서는 이 지사가 이 문제를 해결해줄 거란 기대감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지지자는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이 TK에서 20% 득표를 못했다. 이 지사가 30% 이상 받으면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 지사는 이어 곧바로 인근에 있는 이육사문학관을 찾았다. “이 지사가 이육사의 꼿꼿한 삶을 언급하며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콕 집어 가겠다고 했다”는 게 이 지사 측 설명이다. 이육사 동상에 헌화한 이 지사는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인가 보다”란 구절로 유명한 시(詩) ‘절정(絶頂)’을 한참 동안 읽기도 했다. 방명록에는 “아름다운, 그러나 힘겨운 삶을 기억합니다”라고 썼다.
이어 이육사 시인의 생가를 복원한 육우당(六友堂)에선 권영세 안동시장(민주당 소속) 등 지역 인사들과 차담을 가졌다. 이 지사는 이 자리에서 “(해방 후) 미 점령군과 합작해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지 않나.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되지 못해서 이육사 시인 같은 경우도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나 예우를 했는지 의문”이라며 “나라가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다시 출발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고향에 왔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이후 비공개 일정으로 인근에 있는 선친의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이 지사의 이날 유림서원 방문과 선친 묘소 참배는 가족사와 관련한 논란을 초반부터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읽힌다.
이 지사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열린 ‘민주당 공명선거 실천 서약식’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가족사 논란과 관련 “세월도 10년 지났고 저도 많이 성숙했다. 앞으로 다신 그런 참혹한 일이 안 생길 것”이라며 “국민께서 제 부족한 점에 대해 용서를 바란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 지사 측 수도권 의원은 “이 지사는 가족사 논란을 자신의 미숙한 부분이라 여기고 많이 반성하고 있다. 유교의 상징인 유림서원과 선친 묘소를 찾는 것도 그와 관련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지사는 이날 안동에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을 지낸 박병기씨도 만났다. 이후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한 만큼 이 지사에게는 박씨가 마지막 은사다. 이 지사가 “어릴 때 맨날 고기 잡으러 다니고 자두밭에서 자두 줍다가 혼나고 그런 기억이 난다”며 과거를 회상하자, 박씨는 “학교에서는 이 지사를 크게 혼낸 일이 없는 것 같다”고 기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