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해방군"이라는 김원웅…45년 조만식 "은행 터는 점령군"

중앙일보

입력 2021.07.01 16:48

업데이트 2021.07.12 08:07

1945년10월14일 평양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김일성 환영대회장 주석단. 소련 제25군 사령관 치스차코프 대장을 비롯한 북한 주둔 주요 소련군 지휘부가 자리 잡았다. [중앙포토]

1945년10월14일 평양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김일성 환영대회장 주석단. 소련 제25군 사령관 치스차코프 대장을 비롯한 북한 주둔 주요 소련군 지휘부가 자리 잡았다. [중앙포토]

고교생(경기도 양주백석고)을 대상으로 한 김원웅 광복회장의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중앙일보 7월 1일자 3면〉 1일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은 국회에서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유감을 나타냈고, 국민의힘은 “망언이 도를 넘었다”며 김 회장의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김원웅 “소련 해방군, 미군 점령군” 논란
보훈처장 “대단히 부적절” 유감 표명해
야당 “문재인 정부, 즉각 파면하라” 비판
소련군, 발전소·설비 뜯고 부녀자 겁탈해
전리품 소련으로 챙겨가 철도 운송 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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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는 보훈처 산하 법정단체다. 보훈처장이 광복회장의 발언을 두고 공적인 자리에서 유감을 표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런 가운데 광복회는 이날 “한국인을 개무시한 맥아더 포고령을 비판해야지, 포고령 내용을 밝힌 김원웅 회장을 비난한 것은 납득이 안 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지난 5월 21일 경기도 양주백석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영상 메시지에서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이라고 발언했다. 이 내용이 중앙일보 보도(6월 30일자 3면)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자, 1일 광복회는 “한국인을 개무시한 맥아더 포고령을 비판해야지, 포고령 내용을 밝힌 김원웅 회장을 비난한 것은 납득이 안 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사진은 해당 내용이 담긴 광복회 보도자료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지난 5월 21일 경기도 양주백석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영상 메시지에서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이라고 발언했다. 이 내용이 중앙일보 보도(6월 30일자 3면)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자, 1일 광복회는 “한국인을 개무시한 맥아더 포고령을 비판해야지, 포고령 내용을 밝힌 김원웅 회장을 비난한 것은 납득이 안 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사진은 해당 내용이 담긴 광복회 보도자료다.

김 회장의 주장과 달리 광복 직후 한반도에 들어온 소련군은 북한 지역 발전설비를 뜯어갔고 각종 곡물과 주민 재산도 약탈하며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의 행보를 보였다.

광복 직후인 1945년 8월 26일, 독립운동의 거두인 고당 조만식은 북한에 주둔한 소련 제25군 치스차코프 사령관을 만나 “소련군은 점령군이냐, 해방군이냐”고 따져물었다. 당시 소련군의 약탈 행위가 지나쳤기에 나왔던 말이다.

소련 기록물에도 당시 상황이 생생히 기록돼 있다. 그해 12월 29일 소련군 중좌 페드로프가 작성한 보고서에선 “밤에 총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고, 특히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범죄도 만연해 있다”고 적었다.

소련군 기록에도 약탈 상황 생생 

당시 소련군이 북한산업의 30∼40%를 철거해 소련으로 가져갔다는 분석도 있다. 소련군은 45년 9월 14일 ‘인민정부수립요강’을 발표하면서 “북한 주민의 재산은 소련군 보호 아래 있다”고 밝혔지만, 실상은 이와 달랐다.

소련군은 북한에 들어온 뒤 각 지역에 치안을 담당하는 경무사령부를 설치해 일본군 항복을 받고 무기를 접수했다. 이어 행정기관ㆍ경찰서ㆍ법원은 물론 일본인 소유 기업ㆍ철도ㆍ통신수단ㆍ은행 등을 접수했다.

광복 직후 민족지도자였던 고당 조만식선생(오른쪽 끝)을 회유하기 위해 마련한 술좌석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김일성(왼쪽 두번째). [중앙포토]

광복 직후 민족지도자였던 고당 조만식선생(오른쪽 끝)을 회유하기 위해 마련한 술좌석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김일성(왼쪽 두번째). [중앙포토]

북한 주재 소련 민정청 문서는 45년 8월과 9월에 발전설비를 비롯해 금속가공 공작기계, 기계제작 설비 등을 철거해 소련으로 반출했다고 기록했다. 평안북도 삭주군의 수풍발전소 발전기 3대를 비롯해 원산 석유회사, 청진 제철공장과 제련소의 기계, 함흥 화학회사의 6만kW 변압기를 뜯어 소련으로 가져갔다.

소련군 쌀·소·돼지 약탈, 은행도 털어

소련군은 북한에서 쌀 250만섬을 비롯한 각종 곡물과 소 15만 마리, 돼지 5만 마리도 약탈했고, 은행 금고를 열어 현찰도 꺼내 갔다. 소련 공업기사 수백명이 북한 지역 중공업 공장을 다니면서 소련에 가져갈 공업제품을 직접 생산하기도 했다.

소련 민정청 교통부 보고서는 “1946년 2월 말까지 북한의 철도운수는 공업설비와 전리품의 반출 및 군부대 수송에 전적으로 동원됐고, 북한 인민경제를 위한 화물 수송과 여객 수송은 전면 중단됐다”고 기록했다. 45년 말까지 북한 지역에서 빼앗아간 물품은 7억~8억 달러를 넘어선다는 학계의 평가도 있다.

광복 직후 북한 지역에 주둔한 소련군의 모습. [중앙포토]

광복 직후 북한 지역에 주둔한 소련군의 모습. [중앙포토]

이처럼 소련군은 점령군이 전리품 취급하듯 약탈했다. 45년 12월 소련 외무부 극동 제2국 참사관 수즈달레프가 작성한 보고서에선 “북조선의 군수중공업 공장들은 붉은 군대에 대항해 싸운 일본군을 위해 봉사했고, 또 붉은 군대의 엄청난 희생으로 쟁취한 것이므로 전리품으로 봐야 한다”고 규정했다.

야당 “문재인 정부, 즉각 파면하라”

이번 논란과 관련, 황 처장은 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광복)회장으로서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며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논란이 될 수 있고, 더욱이 고등학생들에게 그렇게 발언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어 “광복회에 사실 내용을 더 파악해 우려를 표명하든지 다른 방법이 있으면 강구해서 조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야당은 크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황보승희 수석대변인은 “(김 회장은) 애국가를 부정하고, 친일 프레임으로 국민을 편 가르며, 남북 분단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잘못된 역사관을 서슴없이 드러내던 분”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더는 침묵하지 말고, 즉각 파면하라”고 촉구했다.

광복 직후 소련군이 평양에 입성하고 있다. [중앙포토]

광복 직후 소련군이 평양에 입성하고 있다. [중앙포토]

같은 당의 대권 주자인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대한민국과 국민에 대한 모욕으로 치가 떨리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며 “미래세대인 고등학생들에게 소련군이 해방군이라며 냉전 시대 공산 진영의 거짓 선전선동을 그대로 주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제가 직접 양주백석고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리는 동영상을 찍어 보내겠다”고 했다.

한편 이날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최근 불거진 김 회장 부모의 ‘가짜 유공자’ 논란과 관련해 “김 회장을 형사 고발하고 10억여원의 유족 보상금을 회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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