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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세계적인 작가들은 왜 자주 이사 다녔을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86)

온 몸이 검게 탄 바위가 물의 벽 앞에서 문두드리고 잘게 부수어졌다. [사진 pixabay]

온 몸이 검게 탄 바위가 물의 벽 앞에서 문두드리고 잘게 부수어졌다. [사진 pixabay]

몽돌들의 합창

가보지 못한 데를 향한 그리움으로
온 몸이 검게 탄 바위가
열기 식히려 달음질치다가
물의 벽 앞에서 문 두드리고
잘게 부수어졌다

세파에 길 잃고 지친 한숨들
가슴 뛰는 물꼬에 실컷 소리치고
오랜 친구인양 몽돌과 씨름하며 장난치다가
얼굴 그을리며 슬며시 떠나간다

여기저기 감추어 놓고 간 허물을
말없이 받아주고서
속아지 더욱 검게 갈아내는 몽돌들

어디서 왔는지 고마워 사랑을 새길 줄 아는
별빛 또렷한 여름밤이면 차르륵
합창하며 몸 닦는 소리 낸다

길 아닌 길 찾으러 나선
흑진주 알갱이 몽돌들과 어울려
소금바다에 몸 절여 보자
한판 씻김굿 치러보자

해설

우리는 자주 아이들에게 “네 꿈이 뭐니”하고 묻는다. 요즘 아이들은 대개 비슷한 답을 낸다. 시대가 원하고 지금 잘 팔리는 직업을 자기 꿈으로 답한다. 연예인, 만화가, 가수, 의사 아니면 AI전문가 등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면 이를 시답지않게 받아들인 부모는 “나중에 꿈을 이루고 성공하려면 지금 너에게 주어진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천편일률적으로 사족을 붙인다. 그러곤 속으로 자녀교육을 충실히 했다고 착각한다.

꿈은 지리적 공간에서 구체화한다고 알려졌다. 우리 아이들이 비슷한 꿈을 꾸는 이유가 나서 자라온 환경이 너무나 획일적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꿈을 꾸기 시작하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때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비슷한 평형대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닌다. 그러다가 아파트 크기가 조금이라도 차이가 나면 그걸 핑계로 차별하고 왕따를 시킨다. 아이들은 무언가 다름을 찾는 본능이 있는데 기껏 아파트 평수로 차이를 짓다 보니 호기심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편견을 갖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 이사를 하여도 결국은 비슷한 구조의 아파트 단지일 수밖에 없어 사고의 폭이 제한적이다.

내가 아파트 살이를 시작한 건 결혼하고 둘째를 낳고 나서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이 모두 다양한 형태의 가옥에서 살았다. 그래서 친구 집에 가서 공부하거나 놀 때 그 집의 위치와 구조에 눈길이 갔다. 한옥이라 해도 마당과 방이 들어선 구조가 다 달랐다. 집마다 김치의 맛이 다르듯이.

꿈은 지리적 공간에서 구체화한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이 비슷한 꿈을 꾸는 이유가 나서 자라온 환경이 너무나 획일적이라서 그런건 아닐까. [사진 pxhere]

꿈은 지리적 공간에서 구체화한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이 비슷한 꿈을 꾸는 이유가 나서 자라온 환경이 너무나 획일적이라서 그런건 아닐까. [사진 pxhere]

또 대문 위치와 향이 다르면 집의 분위기가 아주 달라졌다. 같은 골목 안에서도 비슷한 집이 한 채도 없었다. 그러니 집의 형태로 집단을 이루거나 다르다고 차별을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다른 분위기 속에서 지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무 때나 찾아가도 마다할 이웃이 없었다.

어머니들은 어느 한 집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아이들은 각자 여기저기 순례했다. 밥 때가 되면 알아서 숟가락만 얹어놓았다. 서로 숟가락 숫자를 안다는 의미가 여기서 유래했다. 식구 숫자만큼만 숟가락이 있을 거라 상상하는 거는 쉽다. 실제로는 어느 집이나 그보다 훨씬 많은 숟가락을 갖고 있다. 숟가락 숫자를 안다는 건 또 다른 정보가 소통하고 있다는 뜻이다. 많은 정보를 얻으려면 나와 다른 무엇을 체험해 봐야 한다. 정보량은 서로 다를 확률에 비례한다. 서로 달라야 호기심이 생기고 관심 있게 관찰하면서 새로운 앎이 발생한다.

서로 다르다는 걸 가장 쉽게 느끼는 방법은 공간적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 탁 트인 곳으로, 주변 환경이 주는 냄새가 다른 곳으로 가보는 거다. 아니면 지도를 보고 지리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지리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내용을 그려보는 방법도 있다. 도표와 수식의 객관적 지식이 아닌 주관적 체험으로 이루어진 지리학이 요구되는 세상이 다가왔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지리 교육이 가장 부실하고 지리적 상상력이 빈약한 나라가 IT기술이 발달한 미국과 한국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가장 행복한 장소가 어디인지 물어보면 자기 방 아니면 PC방이라고 한다. 더욱이 세월호 사건 이후 수학여행과 체험학습이 제한되면서 색다른 장소에 대한 체험이 줄어들었다. 코로나19 사태로 다른 공간에 대한 직접 체험보다 가상체험이 확대되어 그 악영향이 점점 커질 것이다. 지도를 보면서 방향을 찾지 못하는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단다. 나만 해도 자동차 내비게이션으로 운전하면서 목적지를 찾는 공간적 상상력이 퇴보하고 있다. 자동차에 종이 지도 한장쯤은 누구나 구비하고 다녔던 기억이 아득하다.

세계적으로 지리교육이 활성화한 나라가 영국과 네덜란드라고 한다. 좁은 땅과 섬나라라는 약점을 극복하고자 오래전부터 지리적 상상력을 키웠다. 3차원 공간인 지구를 2차원 지도로 그리는 법을 만들어 내었고 그 안에 상세한 정보와 풍물을 담아내었다. 또 지도를 통해 위기 때 극복할 수 있는 재해예방도 배울 수 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작가들은 글쓰기를 위해 많은 도시를 찾아다닌다. 그들은 자신이 행복해야 좋은 글이 써진다고 말했다. [사진 pxhere]

세계적으로 이름난 작가들은 글쓰기를 위해 많은 도시를 찾아다닌다. 그들은 자신이 행복해야 좋은 글이 써진다고 말했다. [사진 pxhere]

무엇보다 지리적 상상력은 자신이 가장 행복하고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을 갖게 해준다. 해리포터 시리즈 작가인 조앤 K 롤링은 가난한 싱글 맘의 악조건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을 벌며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찾으려고 지리적 지식을 총동원했다. 영어 강사를 할 수 있고 생활비가 적게 들며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만한 곳을 찾아 포르투갈로 떠났다. 거기서 실패하자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로 이주해 작은 공공임대주택에서 살았다. 글을 쓰기 위한 공간을 찾아 헤매다 적당한 카페를 발견하였고 거기서 베스트셀러를 연속해 출간하였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작가들은 글쓰기를 위해 많은 도시를 찾아다닌다. 헤밍웨이도 카뮈도 무라카미 하루키도 자주 이사를 다니며 글을 썼다. 그들은 자신이 행복해야 좋은 글이 써진다고 말했다. 꼭 비싸고 편리한 곳만이 자신의 꿈과 희망을 이룰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물가가 저렴하면서도 개방적인 장소가 좋다고 한다.

빈민가를 잘 알았던 프란체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한 나이트클럽에서 불이 나자 구급차와 소방차가 오기도 전에 현장에 도착해 희생자들을 구했다고 한다. 그분의 활동무대가 그런 환락가였기에 누구보다 먼저 구조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교황이 되고 첫 방문지도 예사롭지 않았다. 아프리카 난민이 몰려드는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을 선택했다. 지도자로서 온 세상에 메시지를 몸소 보여준 지리적 행동이었다. “이곳에서 심장이 가시에 찔리는 듯 고통스러웠다”라고 고백했다.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중의 한 사람인 우루과이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 이야기도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 재임 시절 월급의 90%를 가난한 사람을 위해 기부하였고 대통령궁을 노숙자들에게 내어주기까지 했다. 퇴임 후 오두막집에서 꽃을 키우며 살고 있다. 식물조차도 햇볕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꽃과 잎을 움직이며 살듯이 사람은 누구나 늘 깨어서 적극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곳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인생은 놀라운 모험이니 스무 번쯤 다시 시작해도 된다고 젊은이를 다독여주기도 했다. 그도 젊은 시절 감옥에 갇혀 꿈을 키웠으며 주변 나라를 돌아다니며 우루과이의 미래를 설계하였다.

산속에 있던 커다란 바위가 바닷가에 내려와 꿈을 꾸다가 몽돌이 된 해안가. 그 검은 빛이 우리에게 무언가 말하는 게 있었다.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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