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성폭행 유죄 판결···美 '국민 아버지' 빌 코스비 석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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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코미디언 빌 코스비가 성폭력 혐의로 2년 복역 후 30일 석방됐다. 코스비가 이날 펜실베이니아주 엘킨스파크에 있는 자택 앞에서 변호인, 대변인과 함께 섰다. [AP=연합뉴스]

미국 코미디언 빌 코스비가 성폭력 혐의로 2년 복역 후 30일 석방됐다. 코스비가 이날 펜실베이니아주 엘킨스파크에 있는 자택 앞에서 변호인, 대변인과 함께 섰다. [AP=연합뉴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대법원은 30일(현지시간) 성폭력 혐의로 복역 중인 코미디언 빌 코스비(83)에 대한 유죄 판결을 뒤집고 석방을 명령했다.

흑인 코미디언 대부 '미국의 아버지' 코스비 #2005년 검찰, 불기소 미끼로 성폭력 증언 유도 #주 대법원 "그 증언 토대로 기소·처벌은 부당" #법적 처벌 피해, 미투 운동 부정적 영향 우려

검찰이 코스비의 성폭력 진술을 근거로 형사처벌 하지 않기로 합의했으나 이를 저버리고 기소해 유죄 판단을 받은 것은 적법 절차를 위반하고 코스비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취지다.

2년 넘게 복역한 코스비는 판결이 나온 즉시 석방됐다고 뉴욕타임스(NYT)와 로이터통신, NPR 등이 보도했다. 코스비는 트위터를 통해 "나는 내 입장이나 이야기를 바꾼 적이 없다. 항상 내 결백을 주장해 왔다"고 밝혔다. 

주 대법원 결정은 코스비가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기소 과정에서 절차적 하자를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코스비가 처벌을 피하게 되면서 권력자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코스비, 2005년 민사 재판서 성범죄 진술

코스비는 2004년 필라델피아 교외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모교인 템플대학교 여자 농구부 담당 직원인 안드레아 콘스탠드에게 약물을 먹여 정신을 잃게 한 뒤 성폭력을 저지른 혐의를 받았다.

NPR에 따르면 브루스 캐스터 몽고메리 카운티 지방검사장은 2005년 콘스탠드 사건을 조사한 뒤 코스비를 형사 기소하기에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대신 콘스탠드가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 코스비 증언을 끌어내기 위해 그를 기소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코스비는 민사 재판에서 자신이 여성들과 성관계를 하기 위해 약물을 사용한 사실을 인정했다. 성관계 자체는 서로 합의하에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콘스탠드는 민사 소송에서 코스비와 338만 달러(약 40억원)에 합의했다.

미국 코미디언 빌 코스비가 성폭력 혐의로 2년 복역 후 30일 석방됐다. [AP=연합뉴스]

미국 코미디언 빌 코스비가 성폭력 혐의로 2년 복역 후 30일 석방됐다. [AP=연합뉴스]

10년 뒤 성폭력 혐의로 체포, 기소

펜실베이니아주 검찰은 공소시효(12년)가 끝나기 직전인 2015년 코스비를 전격 체포해 성폭력 혐의로 기소했다. 2005년 코스비의 증언을 기밀 해제하고, 이를 근거로 유죄를 주장했다. 코스비가 처벌되지 않을 것을 믿고 한 진술을 그에게 불리하게 사용한 것이다.

2018년 1심 법원은 징역 3∼10년 형을 선고했다. 2019년 항소법원은 항소를 기각했고, 코스비는 필라델피아 인근 교도소에서 복역해 왔다.

코스비는 기소 절차에 하자가 있고, 헌법 5조에 따른 묵비권을 침해당했다며 주 대법원에 이의를 제기했다. 주 대법원은 2005년 검찰과 코스비가 맺은 합의가 코스비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대법관들은 4대 3으로 코스비 손을 들어줬다. 코스비가 기소하지 않겠다는 검사장 약속을 믿고 묵비권을 포기하고 유죄를 인정하는 증언을 했으므로 이를 근거로 코스비를 형사 처벌한 것은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수 의견을 작성한 데이비드 웨흐트 대법관은 "정당한 법 절차 위반이 밝혀진 이상 코스비를 이전 상태로 완전히 되돌릴 수 있는 구제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유죄 선고 기각과 관련 혐의에 대해 어떠한 향후 기소도 금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 국민 아버지'에서 성폭력범 이미지 추락

코스비는 1984~92년대 시트콤 '코스비 가족'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미국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얻었다. 하지만 수많은 여성이 그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진술하면서 이미지가 추락했다.

수십 년 동안 60명이 넘는 여성이 코스비가 약물을 먹이고 성폭행 또는 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대부분 공소 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었고, 검찰은 대학 교직원 콘스탠드 사례에 대해서만 기소했다.

코스비를 기소하지 않기로 합의한 캐스터 전 검사장은 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두 번째 탄핵심판 때 변호인단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설득력 있는 변론을 펼치지 못해 공화당 의원들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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