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직장내 괴롭힘 인정받자…보복의 지옥이 시작됐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01 05:00

“직장 내 괴롭힘을 노동청으로부터 인정받은 이후에 더 큰 고통이 시작될 줄은 몰랐다.”

건설업계 직장인 박모(48)씨의 씁쓸한 회고다. 박씨는 대기업, 중견기업을 거쳐 2017년 11월 외국계 중소건설업체에 입사했다. 15년 넘게 구매 업무를 해온 베테랑으로 자부했지만, 위기가 찾아왔다. 박씨의 주장에 따르면 2019년 3월 회사에 새로운 대표이사 A씨가 온 이후 자신의 직장생활이 꼬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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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없다”, “XXX 하러 다녔냐”

박씨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월 회식자리에서 “박 부장을 외주구매팀장으로 선임한 이유는 가장 싸가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팀원들 앞에서 면박을 줬다. A씨는 오후 10시쯤 박씨에게 전화를 걸어 “B상무와 사귀냐 XXX(성행위의 비속어)를 같이 하러 다녔다”는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고 한다.

박씨는 그해 10월 A씨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다. 우울증을 진단받은 진단서를 첨부해 회사에 휴직 신청을 했다. 회사 인사위원회는 대표 A씨에게 개선 권고 조치를 했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인정하지 않았다. 박씨의 휴직 신청 또한 거부됐다. 이후 박씨는 지난해 11월말 관할 노동청인 중부지방고용노동청 부천지청에 진정을 넣었다.

노동청이 박씨의 진정결과 인정한 대표이사의 직장 내 괴롭힘. 박씨 제공.

노동청이 박씨의 진정결과 인정한 대표이사의 직장 내 괴롭힘. 박씨 제공.

직장 내 괴롭힘 인정 이후 “보복 의심”

노동청은 조사 결과 지난 4월, A씨의 행위가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과 남녀고용평등법상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A씨의 부적절한 발언과 행동들이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정된 것이다.

노동청이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했지만, 박씨는 “이때부터 회사는 더 지옥이 됐다. 회사의 보복조치가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회사는 휴직이 끝난 박씨의 복직 출근을 거부했다. 박씨 측은 “회사가 취업규칙을 바꿔 나에게만 일반 소견서가 아닌 민감한 정보 등이 포함된 종합병원 소견서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또 회사는 지난 1월 박씨의 입사 이후부터 최근까지의 법인 카드 사용내역 225건 400여만원에 대해 전수 조사를 했다고 한다. 법인카드 사용내역 조사는 박씨가 입사한 이후 처음이었다고 한다. 이후 일부 개인적인 사용 내역에 대해 박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박씨는 “회사가 배임죄 고소를 취하하는 조건으로 퇴직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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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 주장, 괴롭힘 일부만 인정” 

회사 대표이사 A씨는 노동청의 직장 내 괴롭힘 인정 등에 대한 중앙일보의 문의에 대해 “박씨는 직원들과 원만하지 못했고 박씨가 일방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괴롭힘도 극히 일부만이 인정됐고 오히려 박씨가 법인카드 사용에 문제가 있어 수사를 받고 있다”고 30일 말했다.

이어 “건설업 자체가 터프한 면이 있다. 해당 상무와 제가 편한 사이라 박씨에게 그런 말을 한 사실은 있다.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 제기가 없다가 최근에 와서 이러는 게 당황스럽다”면서 “회사는 필요하면 산재 처리도 해줄 생각이다. 복직을 거부한 게 아니라 회사에 필요한 절차를 준수해달라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청 “불이익 처분 여부 조사 중” 

직장갑질119 회원들이 지난해 7월 ‘갑질금지법’ 개선을 촉구하는 모습. [뉴시스]

직장갑질119 회원들이 지난해 7월 ‘갑질금지법’ 개선을 촉구하는 모습. [뉴시스]

해당 사건을 맡은 근로감독관은 “박씨의 이전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일부 인정되어 개선 조치를 권고했다”면서 “최근 박씨가 ‘괴롭힘 신고 이후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면서 지난 5월 말 고소장을 제출해 현재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는 직장내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노동자와 피해노동자 등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 불이익 조치를 할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

직장갑질 119대표인 권두섭 변호사는 “노조가 없는 경우 개인이 신고를 이유로 불이익을 겪는 경우가 더 많다”며 “불이익을 주면 사용자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다. 불이익 처분을 한 사용자가 확인되면 경각심을 주는 차원에서라도 엄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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