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장가계 안 부럽다, 두타산 베틀바위 산성길 7.3㎞ 전면개방

중앙일보

입력 2021.07.01 05:00

업데이트 2021.07.01 10:27

지난 6월 10일 '두타산 협곡 마천루'가 개방하면서 베틀바위 산성길 7.3km 전 구간을 걸어볼 수 있게 됐다. 협곡 마천루 전망대는 가파른 바위 중간에 나무데크를 설치해 만들었다. 사진 동해시

지난 6월 10일 '두타산 협곡 마천루'가 개방하면서 베틀바위 산성길 7.3km 전 구간을 걸어볼 수 있게 됐다. 협곡 마천루 전망대는 가파른 바위 중간에 나무데크를 설치해 만들었다. 사진 동해시

해외여행을 못 가는 시기가 길어져서일까. 외국 풍경을 닮은 국내 여행지를 찾아가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한국의 베네치아 ‘부산 장림포구’, 한국 속 하와이 ‘양양 서피비치’ 이런 식이다. 최근에는 중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장자제(張家界) 무릉원’에 버금가는 비경이 공개돼 화제다. 6월 10일 강원도 동해 두타산(1352m)에 7.3㎞에 이르는 ‘베틀바위 산성길’이 완성되면서다. 6월 25일 두타산을 다녀왔다. 걷는 내내 한국에도 이런 협곡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10개월 만에 70만 명 방문

베틀바위 산성길은 지난해 8월 부분 개방했다. 무릉계곡 관리사무소에서 베틀바위 전망대에 이르는 2.7㎞ 구간만 먼저 열었다. 산성길이 개방되자 전국에서 관광객이 모여들었다. 약 10개월 동안 70만 명이 방문했다. 주말이면 무릉계곡 관광지 3주차장까지 빈자리가 없어 발길을 돌리는 등산객이 있었을 정도다. 그러니 먼저 당부드린다. 다른 이와 거리를 유지하며 산행을 하고 싶다면 가급적 평일에 두타산을 찾으시라.

과거 옷감을 짤 때 썼던 베틀을 닮은 베틀바위. 지난해 8월 부분 개방한 뒤 이 풍광을 보기 위해 70만 명이 찾아왔다. 최승표 기자

과거 옷감을 짤 때 썼던 베틀을 닮은 베틀바위. 지난해 8월 부분 개방한 뒤 이 풍광을 보기 위해 70만 명이 찾아왔다. 최승표 기자

동해시와 동부지방산림청은 지난 6월 10일 두타산성에서 박달계곡을 거쳐 다시 무릉계곡으로 돌아오는 4.6㎞ 구간을 새로 공개했다. 낡은 옛길을 정비해 정식 등산로를 구축한 거다.

정식 등산로가 없던 시절에도 이 구간을 걷는 사람이 있었다. 일부 산꾼이 베틀바위를 보겠다며 험한 등반을 감행했고, 송이 캐는 주민도 있었다. 동해시시설관리공단 이상국 대리는 “길이 없었을뿐더러 가파른 절벽이 워낙 많아서 추락 사고가 빈번했다”며 “산성길을 조성했지만 여전히 위험한 구간이 많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릉계곡 관리사무소에서 30분 쯤 걸으면 닿는 삼공암. 삼화사 승려들이 좌선하던 곳이다. 최승표 기자

무릉계곡 관리사무소에서 30분 쯤 걸으면 닿는 삼공암. 삼화사 승려들이 좌선하던 곳이다. 최승표 기자

산성길 들머리, 금강소나무 군락지를 지나자마자 만만치 않은 경사가 이어졌다. 지그재그로 길을 냈는데도 금세 숨이 차올랐다. 30분 만에 삼공암에 도착했다. 예부터 삼화사 승려들이 좌선했던 자리란다. 멀찍이 동해안이 보였다. 숨을 고른 뒤 다시 30분을 걸었다. 전망대로 가는 마지막 계단은 전체 코스에서 가장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허벅지가 후들거렸다.

정선·삼척 넘나들던 길

“우와, 장가계다!”
계단을 다 오른 사람들이 일제히 탄성을 내질렀다. 호들갑이 아니었다. 전망대에 서서 동쪽으로 몸을 돌리자 여태 보이지 않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뾰족뾰족한 암봉이 사선으로 이어진 모습이 장관이었다. 하나 바위를 보고 베틀을 연상하려면 상상력을 꽤 발휘해야 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베틀바위. 등산객들은 중국 장자제를 보는 것 같다며 감탄했다. 최승표 기자

전망대에서 바라본 베틀바위. 등산객들은 중국 장자제를 보는 것 같다며 감탄했다. 최승표 기자

바위에 서린 전설도 있다. 천상의 질서를 위반한 선녀가 벌을 받아 두타산 골짜기에서 삼베를 짜며 죄를 뉘우친 뒤 승천했다는 이야기다. 다소 허무맹랑하다. 반면 베틀과 관련한 그럴싸한 이야기도 있다. 김미자 동해시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이다.

“두타산과 청옥산 사이, 박달재를 지나면 정선 임계면과 삼척 하장면이 나옵니다. 옛날 삼을 많이 재배했던 지역인데, 농한기 때 아낙들이 옷감을 이고 동해 북평장으로 왔던 거죠. 그때 바위를 보고 베틀을 떠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산성터에서 발견된 자기 조각. 과거 이 깊은 산골에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다. 최승표 기자

산성터에서 발견된 자기 조각. 과거 이 깊은 산골에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다. 최승표 기자

인파로 북적이던 전망대를 뒤로하고 두타산성 방향으로 걸었다. 비교적 완만한 숲길이었다. 길섶엔 산수국이 피어 있었고, 백두대간에서 보기 힘들다는 회양목 군락도 보였다. 회양목에서 짙은 허브 향이 풍겼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미치광이풀, 백작약 같은 희귀식물도 많이 산단다.

조선 전기에 축조했다는 산성 일부가 아직 남아 있었다. 길을 내면서 복원한 숯 가마터도 보였다. 주변에는 자기 조각이 나뒹굴었다. 이 험한 산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간 사람이 있었다니,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대도시 고층빌딩 닮은 바위

산성길에는 베틀바위 말고도 멋진 바위가 많았다. 특히 산성 12폭포의 인상이 강렬했다. 열두 번 꺾이는 폭포와 큼직한 잿빛 바위, 바위 틈틈이 자란 소나무가 어우러진 모습이 거대한 수묵화 한 폭이었다. 너럭바위에 앉아 폭포를 감상하며 김밥을 먹었다. 진정한 ‘뷰 맛집’이었다.

열두번 꺾이며 흐르는 12폭포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풍광이 기막히다. 최승표 기자

열두번 꺾이며 흐르는 12폭포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풍광이 기막히다. 최승표 기자

점심 먹은 자리에서 20분을 걸으니 보름 전 개방한 ‘두타산 협곡 마천루’에 닿았다. 바위 중턱에 계단을 쌓아 만든 전망대에 서니 또 다른 바위 세상이 펼쳐졌다. 박달계곡 건너편으로 번쩍 솟은 번쩍바위가 보였고 3단 폭포인 용추폭포가 한눈에 담겼다. 그런데 왜 협곡 마천루일까. 동해시 신영선 관광과장의 설명이다.

“번쩍바위, 용추폭포는 전국 산에 흔하잖아요. 길을 내면서 조금 다르게 접근해보고 싶었어요. 협곡에서 바라본 웅장한 바위 형상이 대도시에 운집한 고층빌딩을 연상시킨다는 의견을 반영해 이름을 정했죠.”

전망대에 내려다본 두타산 협곡과 용추폭포. 최승표 기자

전망대에 내려다본 두타산 협곡과 용추폭포. 최승표 기자

전망대에서 내려와 박달계곡을 끼고 걸었다. 세찬 물소리가 따라붙었다. 쌍폭포, 용추폭포, 선녀탕을 감상했다. 바위 세상을 빠져나오니 물의 세상이었다. 너른 바위에 물이 완만하게 흐르는 무릉반석도 보였다. 무릉반석에는 시인 묵객 850명의 이름과 시구가 새겨져 있었다. 조선 중기 문인 김효원(1542~90)은 ‘두타산일기’에서 “영동지방에서 으뜸은 금강산이고 다음은 두타산”이라며 “골짜기의 기이함과 수석의 기이함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게 오래됐다”고 썼다. 길이 없던 시절, 시인 묵객들이 베틀바위와 협곡의 절경을 보긴 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산행 지도

서울시청에서 무릉계곡 관광지까지는 약 270㎞, 자동차로 3시간 30분 거리다. 무릉계곡 관리사무소에서 베틀바위 전망대를 다녀오면 왕복 2시간, 두타산 협곡 마천루를 거쳐 박달계곡 방향으로 순환하면 4~5시간 걸린다. 무릉계곡 관광지 입장료 어른 2000원, 소형차 주차비 2000원.

동해=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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