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동호의 시시각각

‘별의 순간’ 잡은 한국 기업들

중앙일보

입력 2021.07.0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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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삼성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삼성은 올해 1분기 디스플레이 비수기와 반도체 실적 감소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과 소비자가전 부문의 수익성 개선으로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올랐다. [뉴시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삼성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삼성은 올해 1분기 디스플레이 비수기와 반도체 실적 감소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과 소비자가전 부문의 수익성 개선으로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올랐다. [뉴시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퍼뜨린 ‘별의 순간’은 절묘하다. 무엇보다 표현이 직관적이고 압축적이다. 독일어 슈테른슈툰데(Sternstunde)의 번역으로 ‘미래를 결정하는 운명의 순간’이라는 의미다. 한마디로 큰 흐름을 타고 기회를 잡았다는 뜻이다. 차기 대권주자를 겨냥한 말이지만 우리 기업에 적용해도 좋을 것 같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 투자를 확대하고 나선 삼성전자·현대자동차·LG·SK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삼성·현대차·LG·SK 초국적 기업화
고슴도치처럼 코어 테크 가진 덕분
규제 풀어야 국내 투자도 늘어나

이 기업들은 20세기까지는 별 볼 일 없는 변방의 기업들이었다. 조잡한 제품을 만들고 미국·일본 같은 첨단시장에는 명함도 내밀지 못했던 로컬 기업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국경을 넘나드는 초국적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 코어 테크(핵심 기술)의 위력이 별처럼 빛을 발한 결과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를 쓴 짐 콜린스의 경영전략처럼 코어 테크를 확보한 고슴도치가 되면서다.

 미국에서 반도체 기업의 투자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 기업에는 글로벌 진출의 발판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 반도체 기업의 투자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 기업에는 글로벌 진출의 발판이 되고 있다.

한국은 자칫 고래 싸움에 낀 새우 처지로 보인다. 하지만 이 상황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삼성전자는 미국 내 파운드리 공장 건설에 17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미국이 견제에 나선 중국에도 이미 반도체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한국에는 수원·화성·평택을 거점으로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했다. 어느새 미·중 사이에서 절묘한 황금분할의 구도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할 만하다.

여기서 별의 순간을 잡는 반전이 펼쳐진다. 미국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 건설에 나서며 삼성전자는 어느 한 나라의 기업이 아니라 전 세계로 연결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게 되면서다. 이제 삼성전자는 어느 누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특히 수출 의존도와 북한 문제를 빌미로 한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중국의 압력은 어림도 없다. 삼성전자의 반도체는 미국·중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없어선 안 될 전략 자산이기 때문이다.

대만도 TSMC를 앞세워 이와 유사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6개나 건설하는 이유다. 대만에만 국한하지 않고 미국에 공장을 건설함으로써 중국의 압박을 완화하고 분산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일본에도 연구개발센터에 이어 파운드리 건설을 추진 중이다.

수소차로 개발된 현대차 넥쏘가 에너지 효율과 배출 가스량을 기준으로 차량을 평가하는 유럽의 독립 기구 '그린 앤캡'(Green NCAP)으로부터 최고등급인 별 5개를 획득했다. [연합뉴스]

수소차로 개발된 현대차 넥쏘가 에너지 효율과 배출 가스량을 기준으로 차량을 평가하는 유럽의 독립 기구 '그린 앤캡'(Green NCAP)으로부터 최고등급인 별 5개를 획득했다. [연합뉴스]

현대차는 세계 각지에서 자동차를 생산한다. LG·SK 역시 배터리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어차피 한국의 간판 기업들은 매출의 80% 안팎을 해외에서 올린다. 이미 글로벌 기업의 위상이다. 더 나아가 미·중 기술경쟁을 계기로 미국 내 생산 비중을 높이면 이 흐름이 가속한다. 미국에 깃발을 꽂으면 일본·독일계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선다. 무엇보다 한국을 넘어서려는 중국 기업의 추격을 뿌리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LG와 SK는 배터리를 앞세워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LG와 SK는 배터리를 앞세워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별의 순간을 잡았지만 그림자도 깊어지고 있다. 기업들로선 차라리 골치 아픈 한국 시장을 아예 외면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은 반(反)기업 정서를 앞세우는 운동권 세력과 민주노총 주도의 투쟁적인 노사 관계 때문에 국내 사업 비중을 줄곧 줄여 왔다. 현대차는 1996년 이후 25년간 국내 공장을 증설하지 않았다. 지난해 광주에 광주형 공장을 지었지만 자발적이 아니었고 소형 차량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결국 한국의 산업 공동화는 심각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7만2000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해외로 빠져나갔다. 2011~2020년 누적치로는 49만1000개에 달한다. 우리 국민은 별의 순간도 잡고 일자리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한국 정부도 미국 정부처럼 기업을 극진히 아끼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거나 일방적으로 노동조합의 힘을 키워주거나 경영권 유지가 어렵게 하는 규제는 과감하게 해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산업 공동화만 계속된다. 기업이 잡은 별의 순간을 국민 전체가 즐겨야 한다.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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